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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Oct 23. 2024

잘 끼우기만 하면 되는, 꼬치구이

같이 어우러지는 또 다른 방법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염병의 기세는, 누그러질 기미가 안 보였다.

회사 출퇴근을 제외하고 외출을 최대한 자제한 채 코로나를 피해 살던 시절, 어이없게도 코로나 대신 다른 병에 걸렸다. 일명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가벼운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극 외향형인 남편 덕에 주말만 되면 집 앞 공원으로, 동네 산으로, 가까운 바다로 싸돌아다니기 바빴는데, 집에만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토요일 아침 실컷 자고 일어나 나갈 곳 없이 집에 처박혀 있노라면, 지루함을 넘어 인생무상까지 생각이 흘러갔다.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남편과 붙어 있으니, 별 것 아닌 일에도 서로 잔소리를 하고 목청을 높이게 되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 저녁마다 하던 가족 외식이 전면 금지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배달음식은 시켜 먹기 싫은데 또 밥 하기도 싫은 토요일이 올 때마다, 오늘 뭐해먹어야 될지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외출은 차를 타고 멀리 나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걷다가 오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먹는 문제만큼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주말마다 매번 김치찌개, 제육볶음, 계란말이 등 비슷비슷한 메뉴를 돌려 막기 하는 것도 지겹다 못해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었다.

이런 나를 구원해 준 건, 누군가 유튜브에 올린 집안에 꾸민 포장마차 인테리어와 술상의 콘텐츠였다. 그걸 보니 머릿속에 스치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홈술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구나라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특히 술집을 집안으로 통째로 들여와 매번 다른 술과 안주를 먹는다는 컨셉에 현혹되었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근처에 사는 친구도 없으니, 조촐하게 우리 식구 셋이서라도 파티 기분을 내보면 어떨까.


이런 결심을 하니 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경쾌하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바쁘게 안주를 구상하고, 어울리는 술도 떠올린다. 밖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사 먹을 수 있지만, 집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요리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바로 꼬치구이.

투다리를 가거나 캠핑을 가지 않는 한, 잘 먹기 힘든 음식이다. 아니지, 집에서 꼬치구이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두어 번 있긴 하다. 설날과 추석 차례상에 올라가는 알록달록 꼬치 전. 하지만, 그건 계란옷을 입혀 굽는 거라 반찬에 가깝다. 이번에 도전해 볼 음식은,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 그대로가 느껴지는 진짜 꼬치구이다. 사실 말이 거창하지, 꼬치에 아무거나 꽂아서 구워도 '꼬치구이'라는 멋진 요리가 탄생한다. 단백질로는 닭고기, 돼지고기, 새우 등이 있고, 채소류는 마늘, 은행, 버섯 등 내 마음대로 아무거나 조합하면 된다. 미리 밑간 한 붉은 고기와 푸릇푸릇한 파를 번갈아가면서 끼우다가, 맨 위에 노오란 파인애플을 꽂기도 하고, 재료가 떨어지면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파프리카 조각을 끼우기도 한다. 부담 없이 내 마음대로 기다란 꼬치에 재료들을 꽂다 보면, 마치 학창 시절 미술시간 조물 거리며 무언가를 창작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끼운 재료들은, 불맛을 입히면 그 맛이 극대화된다.

후라이팬에 구워도 되고, 오븐에 넣어 익혀도 된다. 처음에는 센 불로 겉면을 살짝 그슬리고, 약불로 줄여 속까지 골고루 익게 해주면 완성이다. 더 맛나게 먹으려면, 꼬치에 열심히 데리야끼 소스(간장, 설탕, 물 등)를 발라 타지 않게 뒤집어가며 익힌다. 물론 꼬치를 구울 때도 훨씬 맛있어지는 '비법, 킥'은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꼬치집 사장님이 아니니, 열심히 끼우고, 적당히 구워내면 된다. 더 중요한 건 맛있게 먹는 과정이니 말이다.

이번 우리 집 꼬치 메뉴는 총 세 가지. 첫째는 노릇노릇하게 익은 닭다리살과, 달큰하게 씹히는 대파의 맛이 일품인, 닭꼬치다. 파라면 기겁하는 딸을 생각해, 고기로만 이루어진 꼬치도 같이 만들었다. '이런 엄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라며, 엎드려 절 받고 싶은 날이다.

두 번째는 소금 후추 살짝 뿌린 새우를 버터에 앞뒤로 구워낸 새우꼬치, 그리고 마지막은 과일 꼬치다. 사실 과일 꼬치는, '꼬치구이'라 부를 수는 없다. 다만 더 이상 단백질 재료도 없고, 혼자 꼬치를 끼우기 힘들어진 내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꼼수다. 아무리 간단하다지만, 혼자서 꼬치에 이것저것 계속 끼우자니 팔도 아프고 심심해졌다. 그래서 소설 속 톰소여처럼 꾀를 내봤다. 톰소여는 원치 않던 담장 페인트칠을 친구들에게 떠넘기기 위해 재밌어 죽겠다는 연기를 했다면, 나는 새우를 하나씩 꽂으며 과장된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이거 대박인데? 슬라임보다 백배 천배 재미난걸~~"

닭꼬치 냄새에 끌려 부엌으로 슬금슬금 나오던 딸내미가 딱 걸렸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나도 해보고 싶다 한다. 집에 있던 과일을 몽땅 꺼내, 직접 썰고 꼬치에 끼우게 하니 금세 과일꼬치 4개가 만들어졌다.


평소 밥상과 다르게, 꼬치구이 술안주로 식탁이 가득 찼다.

새로운 메뉴 앞에, 김치찌개가 아닌 알록달록 꼬치구이 앞에, 모두들 설레는 눈치다. 게다가 눈대중으로 대충 섞어 만든 얼그레이 하이볼도 곁들이니, 포차 분위기가 물씬 났다. 다 같이 술잔, 물 잔을 들고 '짠'을 외쳤다. 딸은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때부터 3년간 엄마, 아빠가 매주 토요일마다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될 거라는 것을. 술안주로 차리는 주말 식탁의 즐거움을 알아차리게 되었음을 말이다.

아무튼 오늘의 주인공이자 새롭게 도전한 꼬치구이는, 대만족이다. 개성 강한 각각의 재료를 꼬치에 줄줄이 끼우면, 서로가 가진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삐뚤빼뚤 잘린 상태로 여기저기 널브러진 재료들은, 비로소 꼬치라는 중심 뼈대를 만나 잘 정리된 요리로 재탄생한다.  잘 끼우기만 하면, 반은 성공이다. 간단하지만 술맛 돋우는 술안주를, 코로나 블루 치료제를 발견한 셈이다. 빈 꼬치는 쌓여가고, 흥겨운 저녁이 이어지는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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