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7시,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이 있다.
이것 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것은 나를,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충분히 깨어 있고 기분이 좋은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게 해 준다. 온도, 향기, 소리, 맛, 분위기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제 막 시작한 하루를 마구 기대되게 만든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회사에서 멘탈 꽉 부여잡고 버틸 에너지가 바닥나 금세 백기를 들 것 같다. 회의 시간 내내 멍하게 있다가 그냥 나올 수도 있고, 오늘의 해야 할 일을 평소의 반밖에 못 끝낼 수도 있다. 기분은 축 처져 다시 올라오기 힘들 것이며, 동태눈으로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 없이는, 브런치에 꾸준히 올리는 글도 애초에 시도조차 안 했을 것 같다.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 주세요"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이것은 바로, '카페라떼'다. 요즘은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일주일 전과 달리 따뜻한 라떼부터 찾게 된다. 사실 차갑던 따뜻하던 상관없다. 카페라떼는 내 영혼의 음료이자 신성한 각성의 음료이기 때문에. 카페인에 취약해 함부로 커피를 못 마시지만, 카페라떼가 날 유혹한다면 기꺼이 넘어가주곤 한다. 회사 커피머신에서 버튼을 눌러 뽑아 먹는 카페라떼도 훌륭하지만, 바리스타가 정성껏 내려주시는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아침 출근길 가끔 카페에 들러 라떼를 시키곤 하는데, 그때마다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아, 내가 이거 마시려고 오늘 출근한 거지!'
행복이 별 건가 뭐. 커피를 받아든 그 순간만큼은 여기가 이탈리아 본고장이다. 향긋한 커피 향이 내 주위를 감싸고 스팀 소리가 들리면, 잠시 상상 속에서 여행을 다녀온다.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채 3분도 안돼서 나온 커피를 들고 사무실을 가는 길은, 마치 전투에 나가기 전 짱짱한 무기를 챙겨 떠나는 길과도 비슷한 것 같다.
카페라떼는, 특유의 끌리는 매력이 있다.
우유의 고소함과 달큼함, 그리고 커피의 쌉싸름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조화를 선사한다. 마치 인생과도 같다. 마냥 쓰거나 또 마냥 달거나 크리미 하지만은 않은 삶의 모습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모든 것들이 섞여 또 다른 맛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나는 가장 끌린다. 라떼의 묘미는 바로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고, 그 하모니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유와 커피의 경계선이 선명했다가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연한 갈색으로 어우러지면서, 각자 도드라졌던 맛들이 하나로 섞인다. 여기에 라떼 아트까지 더해지면, 더 이상 커피가 아닌 예술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에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넣어 맛의 변주가 가능하다. 바닐라 라떼, 모카라떼, 캐러멜 라떼, 토피넛 라떼 등등. 공복에 먹어도 속이 쓰리지 않고, 아침에 마시면 점심 전까지 속이 든든해지는 효과도 있다.
날이 무더울 땐 사각얼음 동동 띄운 아이스 라떼로, 추운 날에는 거품 가득한 따뜻한 라떼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풍부한 우유 거품이 처음 입에 닿는 순간, 이 세상에 태어나기 잘했다는 마음까지 드는 걸 보면, 나는 라떼의 매력에 퐁당 빠진 것 같다.
강릉의 유명한 로스터리 카페에 가서 전문 바리스타님이 내려주신 핸드드립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커피의 향을 맛고 한 입 맛을 본 남편의 눈은 만화처럼 휘둥그레졌다. 이런 커피는 머리털나고 처음 마신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마시는 게 커피인지, 꽃차인지 구별 못할 만큼 압도적인 향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계속 마실수록 카페라떼가 생각났다. 아침 9시 오픈런으로 와서 그런지 커피 몇 모금에 속이 쓰리고, 쓴맛만 더 느껴졌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혀를 끌끌 찼지만, 이미 라떼에 길들여진 입맛이라 어쩔 수 없었다.
가끔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은 후, 커피 내기 가위바위보를 한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하는 거라, 한 사람이 지더라도 회사 근처 가장 저렴한 카페에 가서 가장 저렴한 음료인 '아아'로 통일해서 시킨다. 이때 만약 내가 졌다면 상관없지만, 얻어먹는 입장이라면 엄청 눈치를 봐야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1500원이라면, 내가 주문하려고 하는 아이스 라떼는 무려 3500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차액은 입금시켜 주겠다고 당당히 얘기하고 라떼를 시키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그러나 어쩌겠나, 아아는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는걸~~~
민망함을 이기려고 내가 커피를 사는 날에는, 라떼가 무지 맛있는 에스프레소 바에 간다. 일단 내가 비싼 걸 시키면 다들 쭈뼜대다가도 각자 취향대로 시키곤 한다. 이 에스프레소 바는, 좋은 우유를 써 라떼 맛을 확 끌어올렸다. 라떼 홍보대사처럼 동료들에게 권하지만, 아직까지 영업이 잘 안 되었다.
쓰다 보니 라떼 예찬론이 돼버렸다.
만약 오늘 글에서, '라떼는 말이야'의 꼰대 이야기를 기대하고 오신 분들이 계신다면 죄송하다. 아마도 그건 다음 글에서 풀어드리리라.
이 글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그냥 덮어 버린다. 라떼로 시작한 아침이 행복하면 그만이기에, 커피향기와 글로 하루를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