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작년 여름 이사를 했고, 당시 6학년이었던 딸아이는 졸업 한 학기를 남긴 채 전학을 해야 했다. 친구를 못 사귀고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 비슷한 시기에 전학한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학교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며 재미나게 다녔다. 그러나 딱 하나 끝까지 힘들어하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급식'이었다. 오늘 학교에서 별일 없었냐고 물어보면, 엉뚱하게도 '밥이 맛없다'는 대답을 계속했다. 전학오기 전 다니던 곳은, 아이가 1학년 때 개교한 신생 학교였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도, 내부 시설도 다 새것이었고, 급식도 잘 나왔다. 가끔은 엄마 밥보다 급식이 맛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특히나 매주 수요일 '잔반 없는 날(?), 다 먹는 날'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입맛을 저격하는 떡볶이, 파스타, 돈가스, 탕수육 등의 특식이 나와 집에 와서 자랑하기 일쑤였다. 여기에 초콜릿 케이크나 수박, 그릭 요구르트 같은 후식 메뉴까지 나오면 난리가 났다. 그러나 그렇게 맛있다던 급식을,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량 조리하는 급식의 특성상 이 학교나 저 학교나 맛이 비슷할 것 같은데, 아이는 예전 학교의 급식 맛과 비교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먹는 낙 하나가 줄어들었다고 말하는데 살짝 웃기면서도, 공감이 갔다. 회사원인 나도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인데, 그때마다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면 얼마나 끔찍할까 싶어서다.
어느 토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밥을 먹던 중, 갑자기 급식 찬반 토론이 펼쳐졌다.
발단은 아마 나의 질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번 주 먹었던 급식 메뉴 중에, 가장 맛있었던 건 뭐야?"
급식을 사랑하는 나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거의 매주 이 질문을 아이에게 한다. 그러나 아이는 매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급식은 다 별로라고 대답한다. 특히나 이번 주 언젠가 배추 된장국이 나왔는데 진짜 맛없었다고 덧붙였다. 된장국도 안 좋아하지만, 흐물거리는 배추 식감이 더 싫었단다. 이 대답을 들으며 나는 반대의 상상을 했다. 따뜻하게 갓 끓여져 나온 구수한 된장 국물과, 부드럽게 익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배추를 같이 떠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여기에 밥을 살짝 말아, 겉절이 김치를 올려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힐 것 같았다. 된장국과 잘 어울리는 달걀말이가 반찬으로 나왔다면 금상첨화겠지. 밥의 반은 국에 말아먹고, 나머지 반은 같이 나온 취나물 무침과 오징어젓갈로 먹으면 짭짤하니 딱 좋겠다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반면 남편은 자신이 군대에서 먹어왔던 최악의 급식을 얘기하며, 아이와 의견을 같이 했다. 일단 식판에 나오면 음식이 다 맛없게 느껴지는 데다가, 메인 메뉴인 제육볶음은 항상 양이 적고, 달걀 프라이는 마지막에 오면 먹지도 못했다고 한다. 다시는 급식은 먹고 싶지 않다며, 딸과 함께 급식 반대를 외쳤다.
사실 나는 급식의 광팬이다.
왜 사람들이, 우리 가족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긴 한다. 급식이 참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왜 모를까 싶다.
우선, 매일매일 다른 메뉴가 나오는 것이 급식의 최고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집에서 밥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매번 다른 반찬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어제 먹지 않은 다른 메뉴를 구상하는 것이 얼마나 머리 아픈지 말이다. 시어가는 김치가 아까워 기껏 찌개를 끓여놨더니, 지난주에 먹은 걸 왜 또 주냐는 남편의 말에 분노가 치미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예전 어머니들이 며칠씩 집을 비울 때마다 곰탕을 끓여놓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러나 급식은 어떤가. 국도 나오고, 반찬은 무려 서너 개씩, 가끔씩 후식까지 딸려 주는 데다가, 매번 그 종류가 바뀌는 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이의 일주일치 식단표를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온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양한 음식을 줄 수 있지 싶다. 집에서는 차마 따라 하기도 힘든, 급식만이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이다.
두 번째 급식의 장점은 탄단지 골고루 섞인 균형 있는 식사 제공이다.
집에서 먹는 밥은, 직장인의 점심은,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대부분 생존과 즐거움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나 급식이 주는 음식의 균형은 완벽하다. 영양사분들이 제철 식재료와 영양, 조리법, 그리고 건강까지 생각하여 식단을 짜주시니 황송할 다름이다. 음식 하나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준다는 것 자체에, 나는 종종 감동을 받는다. 평소에 챙겨 먹기 힘든 나물을 일일이 다듬고 손질해서 무침으로 만들고, 단백질 보충을 위한 닭고기, 생선, 달걀등도 집에서 시도하지 못한 다양한 조리법으로 선보인다. 가장 기본인 밥은 어떻고. 어떤 날은 기장을 넣은 밥, 검은콩이나 퀴노아를 섞은 밥, 흑미밥 등 건강을 생각한 다양한 종류의 밥을 선보인다. 또한 색감도 참 밸런스가 좋다. 하얀 밥에, 주황색 육개장, 검은색 간장찜닭, 노란색 계란찜, 초록색 호박나물 등 보고 있으면 도화지에 펼쳐진 알록달록한 그림이 떠오른다. 매일의 식사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만들고 건강도 챙길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으면, 이런 조화가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이유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급식을 차려 주시는 분들과의 교감 때문이다.
학교에서 거의 자고 먹고살다시피 했던 대학원 시절, 급식 아주머님은 나의 이모님과도 같은 존재였다. 얼굴을 매일 보던 사이라 그런지 살갑게 말을 많이 붙여 주셨다. 특히 1번 관문인 밥을, 매번 산더미처럼 풀 때마다 아주머님은 나를 보며 통쾌하게 웃으셨다. 뭘 그리 많이 먹냐고 놀라시며 말이다. 나는 농지거리로 많이 먹어야 머리도 잘 돌아갈뿐더러 잘 싸고 잘 잘 수 있다 대답했던 것 같다. 가끔씩 내가 아플 때면 얼굴이 왜 반쪽이 됐냐고 걱정도 해주시고, 그날 나온 특식을 한두 개씩 더 얹어주시기도 했다. 밥을 먹을 때마다 그분들이 살갑게 건네시는 말들이, 자취생인 나에게는 그렇게 정겨울 수 없었다. 따뜻한 건 급식으로 나온 국물뿐만이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과 인사였다. 덕분에 나는 포동포동 얼굴에 살도 붙었고, 대학원도 무사하게 졸업할 수 있었다. 매일 차려주시던 급식과 아주머님들의 친절이 없었다면, 한겨울같이 차갑기만 한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이번 흑백요리사에서 급식대가님이 끝까지 경연에서 살아남으시길 누구보다도 응원했다. 얼마나 노력하셨으면 급식이라는 표준의 영역에서, 맛이라는 궁극의 영역까지 도달하셨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분 덕분에 급식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급식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라도 버릴 수 있어 너무나 다행이다 싶었다. 비단 급식대가뿐 아니라, 급식을 만드시는 모든 분들께 급식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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