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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Oct 02. 2024

우럭젓국 맛을 아시나요

진국 국물 맛이 쥑여줍니다~

가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불자 엉덩이가 들썩인다.

남편은 이럴 줄 알고 진즉부터 캠핑장을 예약해 놓았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충남 서산이다. 한 번 가보고 마음에 쏙 들어, 벌써 네 번째 예약이다. 사이트도 널찍널찍하고, 관광농원이라 여기저기 잘 가꾸어 놓아 보는 맛도 있다. 어쨌든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기 위해서는 우선 잘 먹어 놓아야 한다. 먹어야 배가 든든하고 기분도 좋아져, 남편과 서로 안 싸우고 2박 3일 동안 머물 집을 짓고 잘 지낼 수 있다.

우리는 서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점심 메뉴를 찾아봤다. 요즘은 대하와 꽃게의 계절이라 수없이 많은 제철음식 전문점들이 검색된다. 꽃게장도 맛있겠고, 낙지볶음 생각만 해도 침이 줄줄 흐르지만,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향토 음식에 도전했다. 그것은 바로 '우럭젓국'. 서산이나 서해 바닷가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허영만 작가님의 식객이라는 만화책에서 처음 접하고 그 맛이 궁금했었다.


우럭젓국이란 어떤 음식인가.

주로 회로 먹는 우럭이 넘쳐 나는 서산에서는, 우럭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배를 가르고 바닷바람에 잘 말려 포로 만든다고 한다. 꾸덕꾸덕 잘 말려진 우럭을 가지고 다양한 요리를 하는데, 우럭 젓국도 한 종류이다. 우럭포를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내고, 무를 넣은 후 뽀얀 쌀뜨물을 넣고 끓인다. 젓국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간은 잘 발효된 새우젓으로 맞춘다. 여기에 두툼하게 썬 두부와 칼칼한 청양고추까지 넣어 한소끔 팔팔 끓이면 완성이다. 말린 생선으로 끓이는 황탯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이미 끓여 나온 우럭젓국이지만, 파와 버섯 같은 부재료는 조금 더 익혀 먹으라고 한다. 나는 잠깐인 그새를 참지 못하고 국자를 가져가 끓고 있는 국물만 쏙 덜어 내 그릇에 조금 옮겼다. 식객 만화에서 그려진 대로 과연 한 입맛 먹고도 진한 국물맛이 여운처럼 남을 것일지 온갖 기대에 부풀었다.


"음~~~.~~~~ 응???"

한 숟갈 국물을 마신 내 반응이다. 응당 맛있을 줄 알았던 우럭젓국은, 후추의 매운맛과 청양고추의 칼칼한 맛으로 강렬하게 들어왔을 뿐, 기대했던 감칠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은 실망한 마음으로, 국물이 조금 더 우러나길 기다리다 남편과 함께 다시 도전했다. 한두 숟갈 먹을 때까지만 해도 잘못 시켰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는데, 잘 익은 우럭을 맛본 남편이 외친다.

"우와, 이거 찐인데?"

평소 말린 생선이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남편이, 우럭포가 맛나다며 살을 발라 나에게도 건네준다. 그동안 시어머니가 주신 귀한 반건조 가자미며 조기는, 비린내가 난다며 식탁에 올려도 코를 찡그리기 일쑤였다. 나 역시 말린 생선이 국에 우러나봤자 뭐 얼마나 맛있겠나 싶어 심드렁하게 받아 오물오물 씹는데, 오호라, 유레카! 씹을수록 짭조롬하고 달큼한 맛이 느껴진다. 적당히 말라 살짝 단단해진 살은, 오래 끓여도 부서지지 않고 그대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소금을 뿌려 말렸기에 우럭만 먹어도 간이 알맞고, 염장 발효 식품 특유의 굼굼한 향도 구수하게 느껴진다. 우럭을 한 입 먹다 보면, 국물이 생각나고, 또 국물만 먹다 보면 입이 심심해져 우럭을 찾게 되는 무한 루프.


제대로 된 우럭젓국 먹방은, 우럭포의 맛을 본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첫입에는 매운맛만 훅 치고 들어와 잘 몰랐는데, 우럭과 재료가 잘 어우러져 기대보다 풍부한 감칠맛이 느껴진다. 나박나박 썬 무는 푹 익어 우럭포와 함께 먹으니 더 맛나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서는 바다 내음이 나는 것 같다. 우럭에 새우젓까지 합쳐지니, 바다 음식이 맞기는 하다. 둘 다 감칠맛을 내는데 일등 공신이리라.

우리는 머리를 파묻고 연신 숟가락질을 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했다.

"크어~~~ 요거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 딱이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캬하는 소리가 나온다. 후루룩후루룩 그 많던 국물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게 된다. 국이 끓기 전까지 리필까지 하며 먹었던 맛깔난 밑반찬과 밥에는 손이 가지 않고, 자꾸만 국물이 먹고 싶어졌다. 이제까지 이토록 매력적인 음식 맛을 모르고 살았다니, 아쉽기까지 했다. 서산 시장에 가서 우럭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되나 고민할 정도로, 그 맛에 푹 빠져 버렸달까. 우럭포가 듬뿍 담긴 국물은, 정말 진국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우럭젓국을 맛나게 먹으며 감탄하다가, 문득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한 입 먹어보고는 그 진가를 알기 힘든 우럭젓국처럼, 이 세상에는 첫인상이 비호감인 사람과 첫 만남으로는 도저히 매력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거칠거나 소박한 외양, 조금 느리거나 투박한 말투, 무표정의 사람들이 종종 그러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들이야말로 만나면 만날수록, 알면 알수록, 진국인 경우도 많다. 즐겨보는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나 연애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등에서 만나는 주인공들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특히 연애 프로그램에서 첫인상 선택은 번번이 고배를 마시다가, 후반전에 드러난 반전 매력을 누가 귀신같이 알아차려 매칭이 되는 걸 보게 된다. 반대로 첫인상은 화려하고 훈훈하지만, 알수록 매력이 감소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고...


우럭젓국 같은 매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대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호감을 가질만한 외모나 태도를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이 꽉 차있어 만나면 만날수록 상대방에게 더 깊은 믿음과 배려를 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지 않겠는가. 내가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우럭젓국 같은 상대방을 만날 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PS. 아쉽게도 코를 박고 먹기만 하느냐, 우럭젓국의 사진은 담지 못했다. 아마도 사진이 아니라 맛으로 기억하는 것이 더 나아 그랬을지도....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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