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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Nov 11. 2024

프랑스 중산층으로 살고 싶다

사는 곳은 한국이지만

남편과 함께한 주말 산책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뜬금없이 묻는다.

"너의 판타지(fantasy)는 뭐야?"

발단은 해리포터였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아침 호숫가를 걷는데, 마치 해리포터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 해리포터를 봤냐고 물었는데, 그는 자신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는 자기 타입이 아니라 답했다. 그러나 이대로 진지하게만 대화를 끝낼 남편이 아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갑자기 나보고, 너의 판타지가 뭐냐며 농지거리를 던진다. 대화 주제가 판타지 영화에서 갑자기 인생 판타지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음, 나는 프랑스 중산층처럼 사는 거야."

나는 남편에게 질세라 엉뚱한 대답을 했다. 


사실 이날 아침 우리는, 중산층에 대한 라디오 사연을 같이 들었더랬다.

언젠가 유행처럼 회자되었던, 나라별 중산층의 기준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으로 살려면 부채 없는 30평대 아파트 소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2000cc급 중형차 소유, 예금잔고 1억 원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 번 이상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한다. 이런 물질적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만 중산층이라는데, 과연 우리나라에 중산층은 몇% 나 있을까. 마치 육각형 인간처럼 중산층이야말로 현실에서 별로 보기 힘든 유니콘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중산층은 '재산의 소유 정도가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의 중간에 놓인 계급'이라는 뜻이라는데, 과연 이런 조건의 중산층은 가당키나 한 것인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사람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상대적 박탈감과 허무함을 호소했다.

.

반면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은, 우리나라와 현저히 달랐다.

외국어를 하나 정도 할 수 있다.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다

남들과는 다른 요리를 할 줄 안다

공분에 의연히 참여한다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한다

우리나라의 중산층 조건이 '돈, 물질'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프랑스 중산층의 조건은 대부분 '삶의 질, 생각과 행동'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재산의 가치를 금전으로만 보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물론 외국어를 하고, 스포츠 즐기며, 남을 도울 수 있는 삶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반박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삶의 기준 자체가 돈이 아닌, 가치관과 그에 따른 행동이라면 꽤나 다른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이 나에게 더 와닿았던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을 맞추려면 어떤 일이든 해서 '돈'을 벌면 가능하다. 수단과 방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반면 프랑스 중산층이 되려면 계속 배움을 이어가야 한다. 배움 그 자체를 권장하는 것이다. 외국어, 스포츠, 악기, 요리 등은 배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배움에서도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산층 기준이 '숫자'로 나오는 결과라면, 프랑스 중산층 기준은 '행동'으로 표현되는 과정이 그 중심에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의 경우에도, 우리나라라면 '태권도 1단' 등의 증명 가능한 숫자가 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프랑스는 '즐긴다'라는 표현 외에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는다. 악기 역시 마찬가지다. 잘하던 못하던 상관없이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다는 것 자체로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바이올린으로 '학교종이 땡땡땡'을 연주하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던 상관없다. 기준은 '나'이고, 얼마나 잘하는지가 아닌 배움을 즐기며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편에게 나의 판타지를 말하고 나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당신이 벌어온 돈으로,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사는 게 꿈이야."

남편은 진심으로 겁먹은 얼굴로, 질색팔색을 한다.

"어우, 너 진짜 그러고 살까 봐 무섭다."

안 그래도 요즘, 퇴사를 하고 새로운 걸 배우겠다고 선언했기에 내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나 보다. 뭐, 나도 마냥 우스갯소리를 한 건 아니었다. 평생 배우고 살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근사한 인생일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늘 마음속에 품기만 했던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손놓았던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며,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필라테스에 도전해 보는 그런 상상 말이다. 조금 더 나아가 르꼬르동 블루는 아니더라도 근처 요리 클래스에 등록하고, 심리상담을 배운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인생이 더 흥미진진 해지겠지? 


앞으로 닥칠 생계 걱정은 남편에게 미뤄둔 채, 혼자 신나서 휘파람을 불었던 일요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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