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Dec 02. 2024

리더의 달콤한 말 한마디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

"중장기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2박 3일 워크숍을 갑시다!"

사장님의 말 한마디로, 졸지에 워크숍이 잡혔다. 11월 첫째 주에도 갔다 왔는데, 채 3주가 되지 않아 다시 가야 한다. 그것도 사장님과 함께, 무려 3일이나 말이다. 사장님은 내년 계획뿐 아니라 앞으로 몇 년 동안 다 같이 먹고살 수 있는 계획도 갖고 오란다. 서로 가기 싫다 난리였지만, 어쩔 수 없다. 팀원들을 적장에 내보낼 수는 없으니, 이번에도 팀장들만 선발되어 워크숍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어찌나 눈이 많이 내리던지, 수도 없이 집에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쩌면 다들 눈길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사장님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긴장되었으리라. 


상사가 만약 '같이 논의해 봅시다'라는 말을 한다면, 절대로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이번 워크숍도 마찬가지였다. 중장기 계획을 논의해 보자고 했지만, 그건 곧 '너네가 세운 계획을 가져와봐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 준비도 없이, 백지상태의 뇌를 장착한 채 워크숍 장소에 도착한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상사의 일그러진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정도는 너무 약한가? 최소 불호령으로 모든 사람의 졸음도 깨우고, 경각심도 크게 일깨워줄 것이다. 따라서 이럴 때는 눈치껏 상사의 의도를 사전에 파악하여, 최소 80-90%의 계획을 다 세운 상태로 참가해야 한다. 늘 시간이 모자란 상사가, 2박 3일이라는 시간을 냈다는 소리는 곧 '좋은 계획을 지금부터 발표해서, 내 시간을 의미 있게 쓰게 만들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워크숍 준비를 한답시고 동료 팀장들은 전날까지 잠도 잘 못 자고 자료를 만들고 끊임없이 수정하고 있었다.


어찌어찌 첫날의 발표가 무사히 끝났다.

우여곡절이야 있었지만, 그래도 끝났다는 사실에 다들 안도했다. 발표 중간중간 사장님을 비롯한 같이 참석한 다른 팀 상사들이 어찌나 질문을 많이 하던지. 이러다가 저녁을 8시 넘어서 먹으러 가는 건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다행히도 저녁시간 앞에서 다들 한마음 한뜻이 되어, 6시가 넘어가니 서로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서로 눈치게임을 하다가, 사장님의 '고생했고, 잘했다'라는 말을 끝으로 드디어 저녁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우리는 눈앞에 놓여 있는 삼겹살을 허겁지겁 구워 먹었다. 배를 조금 채우고 나서는,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못다 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많이 했다. 사장님은 고기를 드신 후 여기저기를 살피며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순찰하셨다. 직원들과 잔을 부딪히며, 이런 구호를 외치셨다.

"OOOO 억 원 매출 목표 달성을 위하여!"

기존에 하도 많이 들었던 단어라 이제는 익숙하지만, 오늘 처음 이 말을 듣는 직원들의 눈은 동그래진다. 올해 매출의 10배쯤 되려나? 잔을 부딪히면 모두 그 목표를 해야 된다고 하는데, 다들 피하는 눈치다.


사장님은 우리 부서의 리더와 제법 진지하게 얘기를 이어가신다.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부서에서 원하는 곳으로 'incentive trip'을 보내주시겠다고 한다. OOOO 억 원의 높은 목표에 놀랐던 직원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친다. 

"여러분, 매출 목표 달성하면 어디 가고 싶어요?"

제주도, 울릉도, 푸껫, 호주 등 유명 관광지 이름이 직원들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온다. 아까와는 달라진 분위기에, 저녁식사 자리가 술렁이는 것이 느껴진다. 잔을 부딪히기도 싫어하는 직원들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자발적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분위기를 타고 더 물어보셨다. 어떻게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냐고, 필요한 지원이 뭐냐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답이 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절대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목표 달성을 위해 무엇을 할까에 대해 더 생각하는 눈치다.


나도 순진하게 사장님이나 리더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이었나... 당시 회사 사장님은 매출을 순조롭게 달성하면, 회사 내 교육기관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가 진행하고자 했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우리 회사는 교육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국내 바이오 인력 양성 차원에서 생각했던 아이디어였다. 이 얘기를 듣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나도 그 교육기관에서 세팅 멤버로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위해 회사를 다녀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이 더욱 내 가슴에 와닿았다.

또 언젠가는 그런 말도 들었던 적이 있다. 이번에 출시한 10억짜리 장비를 올해 2대 팔면, 우리 팀 전원 하와이를 보내주겠다는 리더의 공약이었다. 당시에는 비전보드가 유행이라, 모두의 책상 앞에 잡지에서 오린 하와이 사진이 붙어 있었다. 물론 옆에는 회사 신제품 2대 판매 달성이라는 목표도 적혀 있었고. 다 같이 하와이에 가서 뭘 하면 좋을까 행복한 상상을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교육 사업도 없었고, 하와이 여행도 무산되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던 것 같다.


리더의 말은 얼마나 파급력이 높은가.

리더의 달콤한 말 한마디에, 모두가 즐거운 꿈을 꾸기도 하고, 반대로 날카로운 말 한마디에 가슴이 베이는듯한 통증도 느낀다. 그리고 이 둘 모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감히 달성한다는 생각도 못할 어마무시한 매출 목표가, 인센티브 트립이라는 보상이 붙으면 긍정적 동기가 된다. 반대로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당신의 자리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뉘앙스의 대화도 반대급부의 부정적 동기이다. 

그래서 리더의 말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의 입장에서 직원들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내뱉었으면 좋겠다. 자신도 모르는 채로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문장들이, 직원들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지 모를 것이다. 리더가 별생각 없이 던지는 한 마디가,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더욱 신나게 일하게 만들기도, 혹은 의지를 정말 꺾게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갑자기 우리 부서 직원들이, 사장님이 말씀하신 인센티브 트립을 위해서 미친 듯이 달려갈까 봐 말이다. 나는 리더 되기 글렀다. 매출목표 달성 말고, 마음 편하게 일하는 게 더 좋기에...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