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기 너무 어렵다 어려워
"헉, 벌써 4시라고?"
퇴근 전까지 제출해야 할 PPT 자료는 아직 멀었는데, 큰일이다. 만들어야 하는 슬라이드 10장 중, 두 번째 장에서 진도가 딱 멈췄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다간 오늘 내로 퇴근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스쳐간다. 그래도 지금부터 초집중하면 끝낼 수 있다고 되새기며 스스로 불안을 잠재워본다. 눈으로는 모니터를 쳐다본 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막 돌려본다.
'각 슬라이드 장표마다 우선 대략적인 제목을 먼저 써보자. 제목과 방향성만 확실하면, 내용은 금방 채울 있으니까. 내용은 줄글로 써보고, 마지막에 보기 좋게 축약하면 되겠다!'
3번 슬라이드로 넘어가, 그 장표에서 말하고 싶은 제목을 고민한다. 하지만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이 정리가 잘 안 된다. 검색창을 켜고 이것저것 단어를 입력해 본다. 스크롤을 채 다 내리기도 전에, 이미지들이 먼저 나오며 내 시선을 빼앗는다. 머릿속에 번쩍 다른 생각이 스친다.
'오, 이런 좋은 그림이 있네! 먼저 슬라이드 장표에 들어갈 이미지부터 찾아야겠다'
그때부터는 검색의 원래 목적도 잊은 채, 세련되고 깔끔하며 멋진 그림들을 마구 찾기 시작한다. 퇴근은 언제 하려고 그러니~~라고, 마음속 다른 목소리가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이 예시가 왠지 남일 같지 않게 들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맞다.
우리는 집중이 필요한 결정적 순간에도, 괜히 아무런 메시지도 오지 않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이메일에 회신을 보내고 있다.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 져, 책상을 자주 벗어나기 일쑤다. 동료가 보낸 사내 메신저 채팅에 답을 하며, 속으로는 한숨만 푹푹 내쉰다.
'아... 빨리 이거부터 끝내야 되는데.'
고백하자면, 나는 이 모든 사례들을 다 해본 사람이다. 아니, 과거형이 아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러고 있다. 갑자기 카톡 메시지를 보다가, 동료의 생일이라는 게 생각나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더 심하면 심했지, 절대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종종 심각하게 성인 ADHD를 의심한다. 학창 시절부터 원래 이랬다. 집에서 공부를 할라치면, 괜스레 창밖이 눈에 들어오며 공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재택근무도 마찬가지다. 노트북을 열었다 눈앞에 보이는 책상 위 전선이 거슬려, 전선 정리 도구를 검색하며 30분을 쓴 적도 있다.
사실 나같이 집중 못하는 성향 말고도, 우리네 직장인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잡히는 회의, 고객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갑자기 호출하는 상사, 어디선가 들려오는 회사의 흉흉한 소식 등. 이것과 상관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은 복리이자처럼 늘어나고, 마감시한은 늘 정해져 있다. 직장인에게 일처리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소중한 월급을 받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집중하기 힘들다. 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진다.
그래서 오늘은 18년 회사생활을 바탕으로, 집중을 위해 내가 시도해 본 방법과 도구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우선, 집중을 위한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셀프컨트롤과 외부 컨트롤. 셀프컨트롤은 쉽게 말해 자기 스스로 자기를 혼내고 달래 가며 집중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먼저 이를 위해 잠시 책상 정리를 한다. 리츄얼의 시작 같은 것이다. 쓰레기, 먹다 남은 음식물 등의 방해 요소를 제거한다. 주의할 점은, 딱 5분 내로 끝내는 것이다. 갑자기 대청소로 들어가면 답이 없다. 이렇게 물리적인 환경을 갖추었다면, 이제 내 정신을 초집중 모드로 바꾼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알람 시계를 놓는다. 남은 시간이 시각적으로 한눈에 보이는 타임타이머나, 스마트폰 알람을 추천한다. 아래 사진에서 내가 쓰는 알람시계는, 요즘 핫하다는 '넬나'의 타이머이다. 광고글이 아니다 보니 적극적으로 추천을 못하겠지만, 디자인도 아름답고 stop 기능도 있어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너 저거 오늘 꼭 해야 된다!'
확실히 효과가 있다. 잠깐 자리를 뜨려다가도, 그 메시지를 보고 잠시 찔리는 마음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다음 방해요소는 바로 스마트폰인데, 요즘은 집중을 돕는 앱이 참 잘 나와있다. 나는 강제로 시간을 제한하는 게 싫어 조금 더 평화적인(?) 앱을 깔았다. Forest라는 앱으로, 내가 정해놓은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열지 않고 집중을 잘하면 가상의 나무가 생기는 것이다. 게임의 리워드 방식이라, 나무를 심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기껏 스마트폰을 잠가 놓아도, 사내 메신저에 답하다 보면 끝도 없다. 메신저를 방해모드로 해놓거나 보지 않아야 한다. 만약 30분을 초집중 시간으로 설정했다면, 이메일도 그 기간 동안에는 알람을 꺼놓으면 좋다.
이 밖에도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끼거나, 집중이 잘되는 사무실의 공간으로 잠시 환경을 옮겨주는 등 셀프컨트롤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 나가면 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집중력에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외부 컨트롤이다. 상사가 당장 가져오라고 하면, 내일까지 자료를 내야 하면 어쩔 수 없이 당장 하게 되어 있다. 집중력을 위해 셀프컨트롤 할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닥치면 어떻게든 한다'랄까. 만약 지금 집중을 해야 되는데 셀프컨트롤이 잘 안 통한다면, 이런 방법도 써볼 수 있다. 스스로 상사와 중간보고 날짜를 조금 일찍 잡는 것이다. 상사가 자료를 보고하라는 시한이 다음 주 수요일이라면, 일부러 이번 주 금요일에 상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냐 하면서 뜨악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와 상사를 위해 사실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나는 닥쳐오는 마감시한 덕분에 강제로 초집중을 할 수 있고(물론 힘들겠지만), 자료의 방향성을 점검받아 보완해 나갈 수 있다. 상사는 중간보고를 하는 나를 보며,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다. 상사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주의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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