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소, 피카츄 테슬라?!

확실한 차별화

by 수풀림

우리 아파트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멋진 정원도 널찍한 헬스장도 아닌, 지하 주차장에서 매일 볼 수 있다. 꼬마부터 어르신까지, 이걸 한 번 보는 순간 누구나 발길을 멈추게 된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킥킥거리기도 하고, 어른들은 놀란 토끼눈이 되어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 물건의 정체는 바로, 샛노란 피카츄 캐릭터로 랩핑한 테슬라 모델 Y이다.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잘 안 되신다면, 위의 사진을 참고하시면 된다. 미래의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고급 테슬라에, 아이들의 영원한 친구 피카츄를 새기다니.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조합이다. 심지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고 있는 표정이라, 더 깜찍하게 보인다. 자동반사로 '가라, 피카츄!'를 외치다가, 아니지 '가라, 테슬라?'라고 해야 되나 순간 헷갈린다.


차주분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차를 움직이는 피카츄로 만들었을까 짐작해 본다.

피카츄를 너무나 사랑하는 덕후일까. 아니면 무대 위 연예인처럼 남들로부터 주목받는 것을 원래 좋아하는 분일까. 알고 보니 이 궁금증은 나만 갖고 있던 게 아니었나 보다. 남편이 아파트 카페에서도 보고, 자신도 직접 확인했다며 고급(?) 정보를 알려준다. 이 차의 정체는 바로 본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아하!'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으로서, 주변의 개인 브랜딩에서 참으로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니, 단순 미용실 홍보만으로 차량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더라. 미용실 원장님은 예전에 외국에서 마사지를 예약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마사지샵에서 픽업차량을 보내준 것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의 미용실을 차리고 예약 고객을 직접 피카츄 테슬라로 마중 나간다고 한다. 물론 별도의 예약금이 들거나 미용 금액이 다른 곳보다는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발상 자체로 보면 정말 기발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미용실 중 이런 서비스를 하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길에서 누구나 보면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노오란 빛깔 피카츄라니. 고객에게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인상을 남길 것이라 확신한다.


노란색 테슬라를 보니, 마케팅의 구루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떠오른다.

이는 2003년 세스 고딘이 발표한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으로 처음 소개된 개념으로,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수많은 소가 풀을 뜯고 있는 초원에, 보랏빛 소가 나타난다. 보랏빛 소는 그 존재만으로도 '리마커블(주목할만한)' 존재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띈다. 일반적인 다른 소가 초원 위에서 펄쩍펄쩍 날뛰더라도, 보랏빛 소가 여전히 더 눈에 잘 들어올 것이다. 보랏빛 소는 그 자체로 별나고 재미있고 독창적인 존재이다.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나에겐 피카츄 테슬라가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얼마 전 흑백요리사에 나와 왕의 옷을 입고 비빔밥 노래를 부르던 참가자도 마찬가지다. 주위에서 찾아보면, 내 기억에 남는 음식점 메뉴나 물건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새로운 부서로 옮기고 처음으로 무거운 숙제를 받았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마케팅 프로모션을 만들라는 상사의 요청. 경쟁사가 범접하지 못할만한 이벤트를 창의적으로 기획해보라 한다. 듣는데, 막막하기만 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가다, 뜬금없이 unique라는 영단어가 생각난다. Unique를 사전에서 찾으면 '유일무이한, 고유한, 특별한'이라는 뜻이 나온다. 뜻을 보고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나는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명색이 마케팅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인데, 이 '유니크함'은 유니콘처럼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보랏빛 소를, 노란색 피카츄를 만들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봐도, 내가 낸 아이디어는 늘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번개같이 좋은 생각이 스쳐 기획서 초안을 쓰다 보면, 지난번 자료에서도 우려먹은 내용들이 태반이다. 그렇다고 통통 튄답시고, 온통 빨간색으로 도배한 홍보 계획안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인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외형만 보랏빛 소인, 반쪽자리 기획이기 때문이다.


피카츄 테슬라가 내 마음을 움직였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샛노란 색깔. 그리고 비싼 자동차 위에 귀염뽀짝한 피카츄 얼굴이 그려져 있다는 반전. 하지만 여기까지였다면, 기발하고 재미난 아이디어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단순히 피카츄를 붙인 것이 아니라, 미용실 경영자로서 고객을 향한 깊은 생각을 한 것이 다른 점이다. 미용실을 찾아오는 고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서비스. 이런 서비스를 미용실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경험이 시작되는, '미용실로 찾아오는 과정'에서부터 시도한 것이 차별화를 이루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좋은 스토리로서 힘을 발휘해 나에게까지 영향을 끼쳤으리라. 표면적인 차별화뿐 아니라, 본질적인 차별화도 이룬 것이다.


이 예시를 보며, 영향력 있는 차별화에는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적어본다.

우선 차별화의 목적을 분명히 하기. '왜'에 대한 나만의 답이 있어야 한다. 이 차별화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나, 그것이 왜 꼭 필요한가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는 분석이다. 흔히 마케팅에서 3C 분석이라고 불리는, Customer, Competitor, Company 이 세 가지 요소의 분석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부터 어떤 제품을, 서비스를 제공받으면 좋을지 생각해야 한다. 시작점이 고객이어야, 좋은 기획이 나온다. 여기에 우리 회사가, 그리고 내가 가진 강점을 입힌다면, 본질에 보다 깊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글로 쓰기만 하면 뭐 하나. 내가 기획해야 할 프로모션에 대한 아이디어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데. 하하하. 깊은 고민을 한 만큼, 더 좋은 기획이 나오는 건 알기에, 머리가 벌써부터 지끈거리는 월요일 아침이다.


#몹글#몹시쓸모있는글쓰기#피카츄#테슬라#보랏빛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