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과 편집의 힘
지난주에는 회사에서 외부 연자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신제품 론칭, 영업 전략 등에 대한 교육이었는데, 강사로 대학교 교수님이 초빙되었다. 그분은 주제와 관련해 신선한 접근으로 강의를 해주셔서, 오랜만에 뇌가 리프레시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오늘 쓰려고 하는 글은, 강의 중심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강의 중간에 강사분의 멘트 하나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와, 글로 남기려고 생각했기에. 지금은 대학교 교수가 직업이지만, 가장 오랫동안 했던 일은 컨설팅이라고 했다. 그것도 전 세계 3대 컨설팅 회사 중 2개 회사를 경험해 본 분이었다. 컨설턴트는 젊은 나이에 고액 연봉을 받지만, 그만큼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평일에도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건 기본이고, 프로젝트가 돌아가면 주말도 없다. 워라밸은커녕, 일만 죽어라 하다가 돈 쓸 시간도 없다는 슬픈 농담이 떠돈다. 하지만 이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에, 일요일만큼은 꼭 교회 갈 시간을 내고 싶었다고 했다.
"저는 목숨을 걸고, 빼야 할 일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주일을 지키는 방법을 찾았죠."
몇 년간에 걸쳐, 어떻게 하면 주어진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업무를 마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셨다. 도대체 '어떻게' 일에서 빼기를 하며 효율을 추구하셨는지 궁금증이 마구 올라왔지만,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 현장에서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과연 강사분이 목숨까지 걸면서 생각한 빼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일을 잘하는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아닌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책인지 강의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 문장을 접하고 크게 공감을 했던 적이 있다. 보통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일잘러로 인정받기 위해서 어떤 일을 더 많이, 더 잘해야 되나 고민한다. 이번에 승진한 이 과장을 보니 백날천날 야근하던데, 그때 같이 야근하던 최부장이 예쁘게 본 건 아닐까. 아니지, 나는 이과장보다 더 열심히 하면 되겠네. 뭐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무한 경쟁 사회인 회사에서, 남들보다 잘 나가기 위해서는 발에 땀이 나도록 뛰는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있다가는 도태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 자리가 언젠가는 없어지고 대체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종종 엄습하면, 일에서 손을 놓기 더욱 힘들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을 '뺀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무언가는 반드시 빼야, 무언가를 더할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회사에서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려면, 덜 중요한 일들은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부서를 총괄하는 상무가 된 직장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승진했으니 좋겠다고 부러움 섞인 축하를 건넸지만, 그녀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부서에서 해결해야 될 일들은 산적해 있었고, 이 와중에 위에서 하라는 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도무지 뭐부터 해야 될지 모르겠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느냐 새벽에 집에 간지 벌써 두 달째라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부서의 업무에 대해 듣는 나조차도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왔다.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잔소리가 될까 봐 얘기는 차마 못했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니 '빼지 않으면 큰일 난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걸 다 해내려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도 결코 이 명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다.
밥 먹듯 야근을 하고, 제 시간 동안 일을 끝내지 못한다. 조금만 더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게 일의 양이던, 일에 쏟는 시간이든 간에 말이다. 잘못된 믿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안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일에서의 생략은 필수불가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 대한 20장 내외의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낸 보고서가, 상사를 통과해 그 윗분에게까지 제출한 원문 그대로 갈 확률은 아주 낮다. 대부분은 상사가 보고 튜닝(?)에 들어간다. 20장짜리를 다시 10장으로 요약해 오라고 지시하는 경우이다. 피 땀 눈물을 들여 20장이나 만들어냈는데, 그걸 10장으로 줄이려니 너무 아깝다. 오히려 30장을 쓰라면 늘려서 쓸 수 있겠지만, 10장으로 잘라내라니 말도 안 되는 주문이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을 간신히 내려놓고 줄이다 보면, 비로소 핵심이 보인다. 10장이라는 제한된 지면에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야 하기에, 요점만 골라 쓰게 된다. 더하고 싶은 욕심은 강제로 내려놔지고, 무엇을 뺄 것인가에 집중하게 된다. 오히려 20장보다 10장짜리 보고서가 눈에 더 잘 들어오고, 내용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10장이 아닌 1장의 요약 보고서 작성도 가능해진다. 빼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비록 그 과정은 아까움의 연속에, 머리도 아파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직장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하다.
이 시간 동안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업무 효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사무실에 앉아 오늘의 할 일을 체크하고 있다면, '빼야 할 일' 목록도 같이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마치 여행자의 가방처럼, 우리 일에도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오래 걸을 수 있고 멀리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삶에서 빼야 할 것은 거추장스러운 살뿐만이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해 보는 월요일 아침이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