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적도 없는데 그냥 하라고요?

가혹한 경력직의 세계

by 수풀림

갈수록 신입사원 채용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정말 힘들겠다 싶다. 실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그 뉴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 회사의 신입 채용률은, 예나 지금이나 0-1% , 아니 1-2명 미만이다.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매년 100명 넘는 임직원을 채용하지만, 최소 3년, 많게는 15년 이상의 비슷한 업무 경험을 가진 분들이 입사한다. 나도 그렇고, 나의 팀원들이나 동료들도 다른 곳에서 경력을 쌓고 입사한 케이스다. 그야말로 같은 처지의 이직자 신분이랄까. 물론 엄청난 경쟁에 놓인 신규 입사자들에 비하겠냐마는, 경력직들에게도 나름의 애환이 있다. 전 직장에서 업무를 끝내주게 잘하고, 회사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았더라도, 이직하는 순간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종 업계로 이직하는 경우 업무 범위는 크게 다르지 않으나, 회사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큰 영향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력직을 어렵게 우리 회사로 모셔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사들은 경력직에 대해 그리 친절하지 않다. 신입 채용의 경우, 입사 후 회사와 업무에 대해 교육을 해주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알려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기에, 회사에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 상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다. 반면 경력직의 입사 교육은 참으로 형식적이다. 이것도 회사별로, 부서별로 다르겠지만 말이다. 입사 첫날 인사팀에서 입사 서류 안내받고, 노트북 수령하고, 돌아가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인사하는 게 교육의 끝인 경우도 있다. 어떤 회사는 입사하자마자 달랑 회사 카탈로그를 하나 던져놓고, 알아서 제품 숙지하라 말하기도 한다. 전임자가 있던 자리라면 인수인계 파일을 주면서 교육 다 해줬다고 하기도 한다. 간혹 상냥한 동료들을 만나 자세한 업무 소개를 받기도 하지만, 절대 일반화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로또와 같이 운이 무진장 좋은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회사에는 안 바쁜 사람 없고, 모두들 자기 업무로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이다.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베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러니 경력자들은 어디로 이직했던지 간에, 알아서 눈치껏 생존해야 하는 게 오피스 게임 국룰이다.


도대체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나한테 맡겨진 업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여본 경험에 따르면, 가장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 학생때와 달리 직장인의 공부는 먹고살기 위한 생존용이다. 대학 전공과도 크게 상관없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회사는 여기에 발맞추어 진화한다. 나는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요구되는 자질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꼭 이직자가 아니라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들다.

이 중에서도, 입사 후 가장 공을 들여야 할 공부는 '회사 공부'라고 생각한다. 회사 공부란, 우리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션이나 기업 문화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개념이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로, 회사 구조, 매출 추이, 성장률, 주요 제품 등에 대한 것이다. 회사 홈페이지나 공시자료를 통해 볼 수 있으며, 가장 좋은 건 회사 내부 문서로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필수적인 공부이다. 두 번째는 회사 운영이나 문화에 관련된 보다 '소프트'한 것들이다. 쉽게 말해 회사에서 많이 쓰이는 이 회사만의 용어, 약자, 회사 내에서 돌아가는 분위기 감지 등이다. 사실 첫 번째는 여러 자료를 통해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으나, 두 번째는 조금 어렵다. 아무리 동종 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해서 시장, 고객, 경쟁사를 빠삭하게 안다고 해도, 이직한 회사에서 비즈니스 접근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걸 결정하는 것이 바로 회사 문화이다. 이 추상적인 개념은 문서화되지 않아, 그 안에서 직접 느끼며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공부는, 회사와 상사의 업무 기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회사마다 다르다. 전 직장에서 프리패스로 승진을 쭉쭉해나갔더라도, 이직한 회사에서 인정을 못 받고 좌절하는 동료들을 많이 봤다. 결국 그 회사만의 기준을 파악해야, 여기에 맞는 업무를 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 매출 목표 달성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소리다.


회사 공부와 같이 병행해야 할 공부는 당연히 '업무'에 대한 지식 습득이다.

한 분야에서 경력을 오랫동안 쌓고, 같은 분야로 이직을 하더라도 회사마다 '실무'는 다를 수 있다. 회사마다 비즈니스의 방향성과 핵심 제품군은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무 방식도,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다르다. 회사원의 공부가 학창 시절의 공부와 다른 점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공부만' 할 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공부만 할 여유는 주지 않는다. 내가 판매해야 할 제품을 잘 몰라도, 일단 고객을 만나며 부딪혀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바로 일할 사람을 뽑은 거지, 가르칠 학생을 뽑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냉혹한 현실이랄까. 이직한 경험이 있는 동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 중 하나는,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허허벌판에 내쳐진다는 것이다.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고객의 컴플레인을 처리한 경험이 있던 전 직장 동료는, 눈앞이 깜깜했다고 한다. 제품도 아직 잘 모르고, 고객의 판매 히스토리도 모르고, 왜 이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자기가 해당 제품의 담당자로 경력 이직을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맡아서 했단다. 고객은 전화 너머로 손해배상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무려 두 달 동안 고객의 현장에 방문해서 컴플레인을 결국 해결해 냈는데, 이때 배운 교훈을 들려줬다.

"노트북 화면으로 공부해 봤자 아무 소용없더라. 그냥 부딪혀 봐야지 정신이 확 들던걸."

자조 섞인 말투로 얘기했지만, 여기에 오히려 답이 있을 수 있다. 경력직의 공부는 엉덩이 힘이 아닌, 회사의 실무를 직접 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공부하고, 동료에게 물어보며 해결해야 한다.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위험요소가 없다면, 일단 업무를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실무 앞에서는 그야말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바이오를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를 한다. 대부분 같은 분야 전공자들이 고객과 과학적인 상담을 하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영업이나 마케팅 직군으로 문과 전공자 분들도 입사하는데, 그분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낀다. 전공보다, 회사에서의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직 후 자신만의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전공자인 나보다 빠삭하게 제품과 기술을 이해하는 분도 봤다. 그분들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한 나보다 훨씬 나았다. 나는 얼마나 노력을 안 한 건가에 대한 메타 인지가 작동해, 얼굴이 화끈거린 순간이었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 한 가지를 덧붙여 본다. 그렇다면 이직해서 혼자 공부를 하면서 막히는 순간에는 어떻게 해야 되나. 가장 좋은 것은, 경험자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회사 공부에는 교과서가 없기에 경험으로 구전되는 경우가 많다. 경력자라 눈치 보이고 뻘쭘해서 우물쭈물거리다가는, 시간 다 가버리고 나한테 남는 게 없다. 다만 무턱대고 계속 물어보면 안 된다. 실무를 하면서 스스로 업무를 파악해 나가다가, 이해되지 않는 것 10% 정도를 정리한 후 질문해야 한다. 질문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물어봐야, 답을 해주는 동료나 상사들도 답해줄 가치를 느낀다. 안 그러면 오히려 짜증 섞인 표정과 말투가 돌아올지도 모르기에.


오늘의 이야기는, 어쩌면 나 자신에게 쓰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부서로 이동한 지 이제 두 달째.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주변 눈치가 보여 잘 물어보지도 못하겠다. 18년이나 일했으니 알아서 척척 뭐라도 해내야 될 것 같은 압박감도 크다. 비슷한 경력을 가진 동료들을 보니, 다 엄청 잘나 보인다. 그런데 어쩌랴. 오래된 중고이지만 나 역시 신입인걸. 무언가 당장 해야 된다는 초조함을 살짝 내려놓고, 오랜만에 진정한 회사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먹어 본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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