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정체길에서
내가 빨리 간다고 좋아하면 다시 느려질 거니 그런 말 절대 하지 말라고.
그리고는 갑자기 번뜩이는 시상이 떠올랐다며 나보고 꼭 브런치에 쓰라고 한다.
정작 자기는 내 글을 한 번도 읽은 적 없으면서...
평소 나의 글쓰기를 돌 보듯 하는 남편이 얄밉긴 하지만, 혼자 리듬에 맞춰 낄낄대며 읊었던 그의 랩(?)은 나름 재미있어 옮겨본다.
- 원작자: 남편/ 장르 : 미상 -
차가 잘 나간다고 좋아하지 마라
조금 더 가면 바로 막히는 구간 나온다
차가 막힌다고 슬퍼하지 마라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뻥뻥 뚫려있을 것이다
아이 돌보기 힘들다고 우울해하지 마라
사춘기 되면 얼굴 보는 게 더 힘들다
아이가 다 컸다고 뿌듯해하지 마라
다 크면 너랑 절대 안 놀아준다
비싼 장어 점심으로 먹었다고 즐거워하지 마라
먹은 장어 다 뱃살로 간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고 들떠하지 마라
너 나이 한 살 더 먹은 것이다
일희일비하지 마라
인생사 새옹지마 아모르파티
정체길 지루하기만 한 차 안에서 진지한 얼굴로 내뱉는 시인지 랩인지 장르 불분명한 남편의 문장에, 나도 같이 깔깔댈 수밖에 없었다.
주제도 어쩜, 다 나를 향한 이야기인지.
차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교통 체증, 친구들의 어린 자녀 양육, 올라오는 길에 먹었던 장어 등등-을 함축해서 이렇게 풀어내는데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에 나름 사자성어를 쓰며 일희일비하지 말라 하다가, 끝은 아모르파티라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긴 하다.
인생에서 일희일비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슬프기만 했던 일도 어느새 기쁨으로 바뀌기도 하고 또 그 반대도 있더라.
나는 그때마다 흔들리며 신나서 방방 뛰다가도 우울해하지 않았나.
2024년 새해에는 나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 순간적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가진 인생을 살고 싶다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