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저에게 필요한 선생님이에요
"수풀림님, T(사고형)에요 F(감정형)에요?"
이런이런, 아직도 MBTI의 열풍이 끝나지 않았나 보다. 직장에서도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때 물어보는 사람의 의도가 빤히 보인다면, 그냥 멋쩍게 웃는 것으로 무마한다. 마치 '당신은 공감 잘 못하고 해결책만 내세우는 T 맞잖아'라고 몰아세우는 느낌일 때다. 만약 상대방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묻는 경우에는 솔직히 대답한다.
"저는 T로 타고났는데요, F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말 그대로이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이성이 먼저 작동해, 해결책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엄마가 되면서, 팀장의 옷을 입으며, 세상은 논리로만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울고 있는 상황, 나는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기보다는 눈물을 그치게 할 방법부터 찾았다. 팀원이 힘들다 얘기할 때도 당장의 문제 처리 방식을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상대방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 논리적인 얘기를 덧붙여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것도.
지금도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상황과 관계를 대하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고 있다.
이들을 MBTI에 따라 크게 T와 F 선생님으로 분류해 본다. 우선 F 선생님들. 나와 다른 이들은 생각보다 주위에 많았다. 대표적인 예시가 나와 버디 코칭을 같이 진행하고 있는 도반 두 명이다. 우리는 전문 코치가 되기 위해 실습을 하다가 만난 사이로, 연을 이어가며 지금도 코칭 연습을 같이 하고 있다. 번갈아가며 30-40분씩 유선으로 코칭을 하는데, 이들과 나의 대화법이 다르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F인 그들은 내가 코칭 질문에 대답을 할 때마다, 각종 감정적인 반응을 건넨다.
"우와, 정말요? 대단하시다! 감동적인걸요? 제가 다 뭉클해져요."
막상 나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F 선생님의 리액션 덕분에 심장이 말랑해지는 기분이다. 차가운 내 마음에 훈풍이 돈 달까.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건넨 이야기라 더 와닿는다. 누군에게 나 그대로를 인정받은 느낌이다. 반면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해 귀 기울이지만, 이런 반응을 흉내내기조차 힘들다. 계속 이성과 논리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기 대문이다. 감정을 잘 다뤄본 적이 없어, 미숙하기 짝이 없다. 설령 시도하더라도, 이런 로봇 같은 멘트만 나온다.
"어... 많이 힘드셨겠다. (그다음 말이 안 나와 버퍼링 걸림) "
요즘 가장 선호하는 유형이 F라지만, 역시나 세상에는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하다. 그래서 냉철한 머리를 가진 T 선생님이 인생에 도움이 될 때도 많다. 나도 만만치 않은 찐 T 성향이지만, 상대적으로 나를 월등히 능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먼저 남편. 내 감정과 치부를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가족이기에, 힘들 때마다 징징거렸다. 몸살이라 아프다, 야근하니 죽을 것 같다 등등. 그는 나에게 즉각적이고 논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다줬고, 일이랑 조금 멀어지라고 여행 계획도 세운다.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어 화도 났지만, 막상 해보니 그의 방법이 나쁘지 않았다.
또 다른 T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만나는 영어 강사님이다. 대기업 임원과 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은퇴하신 강사님께, 영어보다는 인생을 더 배우고 있다. 작년 말 사표를 던진 사실을 뒤늦게 강사님께 말씀드렸더니, 강사님은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그리고 뼈 때리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You should know that your emotional decision can significantly impact the direction of your future. (너의 감정적인 결정이, 앞으로 너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지난 6개월 동안 내 감정의 기복이 얼마나 컸는지 아셨던 터라, 더욱 맞는 말만 골라하셨다. 이성적으로 날 일깨워주셨달까.
주위의 여러 T, F 성향의 사람들은, 사실은 여러분의 선생님일 수도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려는 나의 감정과 이성을 잡아주고, 더욱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 말이다. 누구는 나와 반대라 별로다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 앞서,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자. 그리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배울 점은 없는지 찾아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이들의 강점이, 비로소 내 인생에 들어오는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