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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VIP라고요?

헐....말도 안 돼!

by 수풀림

"VIP 입장하십니다!"

헉...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그저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회장 입구에 서있는 직원분들께, '몇 시부터 입장 가능한지' 물어봤을 뿐었다. 예약하셨냐고 물어보시길래, 브런치 앱에 저장되어 있던 초청장을 보여 드렸다. 그러자 직원분께서는 '잠시만 기다려달라' 말씀하시며 다른 직원분께 무전을 치시는 게 아닌가.

"수풀림 작가님 오셨습니다. VIP 입장."

잠시 후 다른 직원분께서 마중 나오시며,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작가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VIP 목걸이 받으시고요, 저희가 안내를 해 드릴게요."

당황 나만큼이나, 같이 온 가족들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어느 화창한 주말, 가족들에게 '평소 잘 못하는 서울 나들이'를 가자고 꼬드겨 여기까지 왔던 참이었다.

내 꿍꿍이는 물론 브런치 전시회였지만, 글에 관심없는 그들을 움직이려면 미끼가 필요했다. 딸아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경복궁도 가보고, 서촌에서 맛있는 것도 먹자 했다. 그 전의 첫 행선지로 브런치 전시회를 가는 조건으로 말이다.

런데 입구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VIP 대접을 받게 될 줄이야. 내가 VIP라니... 평소 내 글쓰기에 무관심을 넘어 조롱과 멸시를 일삼는 남편과 딸도, VIP라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날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헐, 엄마 VIP였어?", "여보, VIP야? 대박!"

나는 이 상황이 민망하고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으나, 가족들은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시회를 둘러보는 내내 브런치 직원분들께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시고, 글과 함께 사진도 찍어주셨기 때문이다. 심지어 딸에게는 이런 말도 해주셨다.

"엄마가 작가여서 좋겠다."


우리 집에서는 작가 대접은 커녕, 내가 무슨 글을 쓰는지도 모르는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마침 운 좋게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공모에 당첨되어 내 글이 전시회장 한 켠에 걸렸는데, 직원이 사인과 메시지를 부탁하자 가족들이 옆에서 더 난리였다. 빨리 쓰라고, 더 잘 쓰라고 말이다.

나에게 쏠리는 관심이 참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가족 앞에서 괜시리 우쭐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어딜가서 이런 대접을 받겠나 싶어 브런치 팀에게 무한 감사의 마음도 들었다. 가족들조차 무시하는 내 글을 전시까지 해주시다니. 작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시는 것 같아 울컥했다.

'글도 모르는 내가 무슨 작가라고. 이런 글을 누가 봐주기는 할까?'

그들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들의 이런 불안까지 전시에 녹여,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다. 세심하게 이번 전시를 기획한 브런치 직원분들의 배려에 감동을 받고, 깊은 위로를 받았다.


실은 VIP 자격으로 어떤 행사를 참가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회사 대표로 초청을 받아 참석했던 여러 행사들. 주요 고객들과의 만찬, 후원사 초대 파티 등등. 하지만 그 어떤 순간도 이렇게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자리는, 긴장되고 답답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호텔 연회장에 마련된 VIP 상석에 앉아, 비싼 코스 요리를 대접받고 고급 기념품까지 받았지만 말이다.

무엇이 차이었을까.

우선 그때의 나는 회사 명함 뒤에 숨어 있던, '회사 대표' 였다. 하지만 이번의 나는 오롯이 내 이름, 내 글로 초청받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쓴 글의 진정성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금두꺼비보다 더 소중한 첫 번째 진짜 VIP 경험이었다.


3년 전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을 소비할 줄만 알았지, 내가 쓰게 될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도 내가 결코 글을 잘 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쓸 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이게 맞나 싶다. 작가라는 호칭에는 발끝만큼도 못 미쳤고, 이제 겨우 일기장 수준에서 헤매고 있긴 하다. (초등학교 때 일기라도 잘 써볼걸...)

그러나 하얀 화면 앞에 깜빡거리는 커서만 쳐다보고 계시는 분들께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꼭 잘 쓰지 않아도 된다고. 수없이 망설이고, 지우고, 다시 쓰는 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말이다.


PS. VIP 자랑은 오늘까지만 할게요~ 여기 말고 자랑할 데도 없어서요 ㅎㅎ대나무숲이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1.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에 실린 글

https://brunch.co.kr/@rim38/943


2. VIP 합격 목걸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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