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과일을 예쁘게 깎는 법쯤은 쉽게 터득할 줄 알았다. 부드러운 손목 스냅으로 왼손엔 큼지막한 과일을, 오른손에는 과도를 쥐고 껍질을 얇게 깎아 정갈하게 조각내어 아름답게 세팅하는 것. 일상 속 흔하디 흔한 이 행위를 어른이 되면 당연하게 해낼 줄 알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건장한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과일이 한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손이 작고, 여전히 정갈하게 과일을 깎을 줄 모른다. 잘려나간 껍질은 앞니로 갉아먹어도 될 만큼 두툼하고, 껍질을 벗은 과일은 자르기도 전에 크기가 이미 절반으로 줄어있다. 접시에 올려진 조각난 과일은 뭉텅뭉텅 아무렇게나 잘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려한 접시로 못난 솜씨를 가려보고자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손님 테이블에 과일 접시를 내어갈 때면 꼭 말이 길어진다.
“제가 정말 못하는 것 중 하나가 과일 깎는 거거든요. 보시다시피 손도 작고 어째 영 손재주가 없네요. 이게 장난으로 이렇게 자른 것이 아니구요. 나름 최선을 다했어요. 맛은 괜찮으니 한번 드셔보세요.” 어휴 구차하다 정말로. 과일 깎기는 요리하기와 더불어 나를 참으로 구차하게 만든다. 아주 작은 일에 구차해지는 것. 누구나 어려워하거나 누구에게나 공감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어려움이 아닌 정말 별것 아닌 일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구차함은 참 볼품없고 견디기가 힘들다.
누군가는 쉽게 터득하는 기술을 나는 심혈의 노력을 기울어야지만 익힐 수 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과일을 깎으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상 속 모든 사소한 행위들은 강도만 다를 뿐 일련의 노력을 곁들여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정말 피곤한 세상.
타고나길 게으르고 놀고먹으며 그냥 얻어걸리는 삶을 살고 싶은 나는 이런 사실에 좌절을 해야 하나 좀 더 뻔뻔해지는 연습을 해야 하나 고민 끝에 뻔뻔함을 택하기로 했다. 어울리지도 않게 뻔뻔함을 장착한 나의 모습은 필시 이럴 것이다.
나 : (입꼬리를 어색하게 살짝 끌어올리며) “그 말이죠, 과일에 묻어있는 각종 농약 때문에 껍질을 두껍게 깎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상대방 : “아, 요즘 농약은 물에 다 씻긴다던데, 굳이 껍질을 굵게 깎을 이유가 있나요? “
나 : (눈은 웃고 있으나 광대와 입술은 경직되어) “앗 그래요? 아 그렇구나...”
으이그.
굉장히 정성을 들였지만 보기에는 얼렁뚱땅으로 자른 것 같은 모양의 과일을 우걱우걱 씹으며 이 글을 쓴다. 그리고 뻔뻔해지기로 결심한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남들은 다 잘해도 나는 여전히 못하는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기.
그따위 과일 깎기에 연연하지 않고, 과일 조각보다는 덩어리에 가까운 과일도 당당하게 내어놓기.
‘별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별거 아닌’ 걸로 생각하고 내려놓기.
그리고 모든 일을 다 아름답고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