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그리고 학장

탄생지에 대한 기억: 언니 '림'의 이야기

by 림다림다

부모님의 신혼시절부터 내 돌잔치가 끝날 적까지 살았던 곳은 부산 학장이었다. 당시 머물던 집은 열쇠를 넣고 돌리면 그 소리가 내가 자고 있던 방까지 들릴 만큼 작았다.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아빠는 위생 문제를 이유로 귀가하고나선 손부터 씻곤 했는데, 다른 것에는 다 괜찮았지만 잠만큼은 예민한 아기였던 나는 그 소리에 까무룩 잠에서 깨어 뒤척거리곤 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기는 잠깐 깼다고 아주 깬 게 아니다. 애가 뒤척거리면 그 자리에서 행위를 멈추거나 소리를 죽이려는 시도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다지 조심스럽지 못했던 아빠는 애가 깼구나 싶어 되려 집안을 활보하곤 했다. 그탓에 나를 재우는 데 굉장한 수고를 들였던 엄마는 역정을 내며 말했다. 니가 재워! 엄마는 그렇게 부산 억양이 가득 묻어나는 말투로, 일을 마치고 막 귀가한 아빠에게 나를 안겨주고 쫓아내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아빠는 근처의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빠는 그렇게 어린 내가 다시 잠에 들 때까지 운동장을 몇 바퀴고 돌곤 하셨다. 전화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상황이니 엄마는 시간이 늦어질 수록 걱정스레 베란다에서 1층을 내려다 보았고, 너무 오래 찬 바람을 쐰 날에는 엄마가 앓아눕기도 했다.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운동장을 돌았던 아빠와 포대기에 싸여 있었던 나를 제외하고, 얇은 옷 하나로 계속 바깥바람을 쐬었던 엄마가 되려 감기에 걸리는 것이었다.


돌도 되지 못했을 적의 일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까닭은 매년 이 이야기를 다섯 번 정도 듣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무용담이다. 양산 할머니 댁에 갔다가 웬 구렁이가 나를 잡아먹으려 내려 왔었다가, 엄마에게 머리를 맞아 죽어 나무에 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연 평균 세 번 정도는 들었다. 어릴 적의 내가 만화를 보다 경기를 두 번이나 해 매번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다는 건 내가 영상물을 보고 두통을 호소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다. 내가 네 살일 적, 이사하기 전의 아파트에서 흰 색 헛것을 몇 번이고 보았다고 했다는 것도. (영적인 것에 열린 집안이라 그런지, 내게도 아빠처럼 ‘뻥쟁이’라는 별명이 붙지는 않았다.) 엄마가 아빠에게 내게 나비를 그려달라고 했다가 싸운 일화도 가족들끼리 함께 있을 때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들 중 하나다.


내 어린 시절은 그렇게 전해들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몇 가지는 여태 몸이 기억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나를 만들기도 하였다. 일례로, 나는 초등학교의 흙 운동장을 유독 좋아했다. 넘어지면 까끌한 모래가 상처에 따갑게 달라붙고, 뛰다보면 입 안에서 건조한 모래 맛이 나고, 눈에는 모래가 서걱거리는 곳이었음에도 그랬다.


나는 달리기가 무척 느린 아이였다. 그럼에도 부산의 습한 여름 기운을 조금 잠재워주는 운동장에서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당연하게도 축구였다. 초등학교에서 축구부가 생겼을 무렵에는 축구부에 가입했던 것은 물론이며, 많은 친구들이 기피했던 체육 시간에 여자아이들에게 피구공을 주고 운동장의 한 귀퉁이를 내어줄 때에도 무리에서 이탈해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곤 했다. 달리기가 빠르지 않아도 공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만은 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에 닿지 못할지언정, 끈질기게 따라붙어 걸리적거리게 만들기. 내가 공을 제대로 찰 수 없다면 상대방도 공을 제대로 차지 못하게 만들기. 그게 내 특기였다.


하루종일 운동장에서 바보 같이 웃으면서 뛰어놀면 피부가 금세 까맣게 탔다. 나는 부산의 더위를 무척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강당보다는 운동장에서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아빠가 나를 업고 한밤중에 달렸던 것을 본능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의 학교에는 흙 운동장이 없다. 잔디가 깔려 있고 운동장 옆으로는 딱딱한 크림슨 색의 트랙이 깔려 있는 곳에서는 흙먼지 서걱거리고 모래 알갱이 흩날리는 바닥이 없다. 기숙사에 살 때는 취침시간 전에 운동장에서 밤공기를 쐬며 별을 맞았다. 그러다가도 몇 번만에 그만둔 것은 영 다른 구석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잔디가 폭신하게 깔린 운동장도 그를 둘러싼 딱딱한 주홍색 육상트랙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지는 별도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떠나온지 7년째가 되어가지만, 부산은 여전히 나를 이룬 하나의 공간이다. 부산에서의 나날은 내게 언젠가의 아빠 등처럼 남아있는 기억이고, 젊은 날의 엄마 아빠가 뒷자석에서 자고 있던 우리를 두고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티격태격거리던 기억과도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