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한번 해본적없는나, 영국 유학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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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어중간한 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늦은 건지도 적당한 거지도 이른 건지도 모른 채로 덜컥 영국으로의 석사를 선택했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보면 다들 유럽여행 정도는 20대 때 잘만 다녀오는 것 같은데 나는 열심히 배에만 투자 한덕에 두터워진 허벅지만 나이를 따라 챙겨 왔다.
그런 나를 보면 부모님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쟤가 혼자서 런던 히드로 공항의 입국심사는 통과할 수 있는지, 스탑오버는 잘할 수 있는지, 짐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숙소에 갈 수 있는지, 그 숙소에서 학교는 잘 갈 수 있는지, 학교 등록은 잘할 수 있는지,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는지, 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건 아닌지... 무튼 이 글에 옮기기엔 힘들 정도로 부모님의 걱정은 어마 무시했지만 또 얼떨결에 잘 도착한 나를 보고 어벙 벙하신 건 부모님이셨다. 물론 나도 나 스스로 영국에 덜컥 입성한 게 얼떨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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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떠나기 전 날부터 나는 펑펑 울었다.
전날 징하게 붙여 다녔던 대학 동기들을 급하게 만났는데 '너 또 엄청 우는 거 아니냐.'하고 놀리기 바빴다. 팀별 과제를 하다 프리 라이딩하려는 사람이랑 같이 하는 게 분해서 운 거가 지고 아직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나의 울음보. 근데 얘네들은 그런 거 말고도 내가 잘 우는 사람이란 걸 알았나 보다.
맞다. 정확히 이틀 전부터 나는 펑펑 울었다.
이틀 전에는 방에서 울고 전날에는 남자 친구를 만난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아주 펑펑 울었다.
동생이랑 남자 친구와 같이 만났는데 동생은 그런 나를 보고 어디 몇 년 동안 파병 가냐고 실컷 놀려댔다. 놀려댈수록 화나야 하는데 뭐가 그리 서러운지 아주 펑펑 울었다. 내가 아주 적극적이고-처절하게-울어서인지 남자 친구 우는 것도 처음 봤다.(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영화 이후로 나 때문에 우는 건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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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일 년이 짧은 기간인데 뭐가 그리 서러워서 우냐고 한다.
나는 시간의 상대성이 그 사람의 친밀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한시 한 초라도 아쉬운 건 끈끈하게 연결된 사람과의 관계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무심한 채로 있다가 간신히 생사를 확인하는 정도라면 일 년이 매우 짧지만 너의 하루와 너의 세계가 궁금한 관계에게 일 년은 견우와 직녀가 그렇게 닿기를 바랐던 거리만큼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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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항상 모든 상황에서 씩씩해야 하는가? 의문이 든다.
나는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고 싶다. 그게 덜 성숙하고 일차원적이라 해도 오래 묵혀놓아서 고인물이 되느니 잠깐 멈췄다 흐르는 작은 개울이 되고 싶다. 그런 나라도 감정을 숨겨야 할 때는 정말 폭발하지 않고 부글거리는 화산처럼 가슴이 뜨거워진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나를 마중 나온 인천공항에서 나는 안 울고 잘 버틴다 생각하다가 캐리어 검색대에서 나와 같아 보이는 유학생의 붉은 얼굴과 충혈된 눈가를 보고 같이 검색대를 지나자마자 터지고 말았다. 이럴 때일수록 포옹하지 말고 씩씩하게 갔다 오라고 한 엄마의 말이 더 씩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 뒤에 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학생과 우리는 무언의 위로를 주고받고 한껏 뜨거워진 얼굴로 탑승구를 향했다.
무거운 짐을 끌고 탑승구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나는 인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처절한 고독을 느껴보았다. 남자 친구가 없어도 부모님이 며칠간 집에 안 계셔도 친구를 며칠 동안 못 만나도 그런 고독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글로 형용하기 어려운 쓰라린 무엇이었다. 정말 나 혼자 온전히 헤쳐나가야 한다는 무서움, 외로움, 설렘 그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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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탑승구 앞에서 잘 기다리고 있는지 화상통화까지 걸었다. 이렇게 퉁퉁 부은 얼굴을 결국 화상통화를 통해 공개하고 말았다. 이제는 둥지에서 떠날 때라면서 누구보다 엄격하게 말했던 엄마가 우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도 막상 그렇게 말하고 제일 친한 친구 같던 딸이 떠나려니 복잡한 감정이 드는 거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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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항공에 입성하자마자 압박되는 강한 영국 악센트의 영국항공 스튜어디스 언니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뭘 먹을 거냐는 물음에도 계속 벙쩌있으니깐 너 괜찮냐고 와인 먹을래 한다.
아침이라도 먹고 출발하라는 가족의 권유도 뿌리친 상태로 빈속에 와인을 먹으니 12시간 비행에 정말 내내 매운 불닭을 먹은 듯이 속이 쓰라렸다. 옆에 앉으신 교환교수로 계속 영국을 오간다는 한국 아저씨는 내가 영국은 처음이라니깐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시고 싶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피곤한 상태고 속이 쓰렸지만 또 도움이 되는 얘기여서 끊을 수도 없고 조언은 듣는데 가족 생각은 계속 생각나서 미치겠고 정말 12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짧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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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두 발을 조금이나마 뻗어보고자 도착했던 애플하우스 게스트하우스.
'웰컴, 웰컴'을 연발하며 웃통을 벚어젖히신 영국 아저씨를 보고 잘못 찾아왔다고 하고 노숙을 해야 하는가 하고 순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공항 근처 작은 마을 이어 서그런지 덥다고 앞을 풀 어제 끼거나 벗고 다니신 분들이 많으셨다. 뭐야, 신사의 나라라며...! 이렇게 없던 환상 1차 깨졌으나 주인아저씨가 첫인상과는 다르게 친절하셔서 작은 싱글룸에서 영화를 틀어놓고 그대로 자버렸다. 내가 영국에 있는지도 되샘길질 하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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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를 나서며 본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말 한 마리.
학교 운동장에 어떻게 말이 있지-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웃기게도 내가 영국에 왔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어디인지 모를, 학교였는지도 모르는 정보 없는 대지에서 홀로 풀을 뜯고 있는 말에 왠지 모르게 이입이 돼서 나도 이제 열심히 혼자 풀 뜯어먹고 밥 챙겨 먹고 이 곳이 어디인지 홀로 대지를 가로질러야겠지-하는 생각에 울음을 이제는 그만 멈추고 (영국에서도 계속 울면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여) 15kg가 훨씬 넘는 캐리어와 무거운 백팩을 들쳐 매고 다시 환승하기 위해 열심히 히드로 공항으로 더 힘찬 걸음으로 나아갔다.
나도 이 낯선 땅에 곧 익숙해진다면,
이 곳이 어디인지 즐기면서 햇살도 보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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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운데 멈춰 서서 울었던 나를 지금 영국에 온 일주일째 돌아보니.
불쌍했다기보다는 받은 게 많아 그만큼의 후회와 아쉬움에 대한 미안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이렇게 회상해봤자 소용이 없지만 주변을 살피고 한 번이라도 따듯한 포옹과 따듯한 말 한마디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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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영국에 가기 전에 정말 중요한 준비물은.
떠나기 전 사랑하는 이들에게 말해줄 따듯한 말과 뜨거운 포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