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를 기다리고 있다. 신청은 끝났으니 약간의 교육과 실업인정 후 작지만 달콤한 나랏돈을 받게 된다. 근로장려금도 신청해 뒀고 지난 근무에 대한 종합소득세와 세금 환급 신청도 완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 마련은 끝났다는 이야기다. 퇴직금 대신 스스로 준비해 둔 카카오톡 26주 적금도 퇴사일과 동시에 만기였고, 얼추 마련해 놓은 목돈으로 현재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제 비로소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나 고민을 할 때가 됐다는 건데 우선 내가 그간 준비해 온 그 길이 맞는가 하는 질문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질문의 답은 여전히 내지 못했고 사람들이 묻는 “그래서 뭐 할 생각이야. 생각해 둔 건 있어?”라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라고 답하고 있긴 하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난 살면서 하고 싶은 게 모호했던 적이 없었다. 넌 커서 뭐가 될 거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항상 확신을 가지고 답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모습, 그 이유와 그렇게 만들기 위한 계획을
초등학생 때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겠다며 동물사육사, 화가, 소설가를 꿈꿨고 동물권 보장을 위한 동물원 철폐에 대한 기사를 읽거나 내게 재능이 없음을 깨달은 후 차차 접었다.
중고등학생 땐 기자가 되기 위해 관련학과로 대학을 가고 싶었고 언젠가 방송국 로고가 박힌 패딩을 입은 채 출입처를 뛰어다니고, 온마이크를 잡아 어디 뉴스 누구라고 내 이름 석자를 당당히 외칠 날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대학생 땐 그저 졸업이 하고 싶었고 졸업 후 유명하진 않아도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PD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꼭 직업적인 꿈이 아니더라도 난 모든 것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누가 좋고 누가 싫고, 내 기분이 어떻고 어떤 게 먹고 싶고 어딜 가고 싶은지 끝없이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현재 나는 쓰다 보니 날이 지나가버린 이 글을 2023년 5월 17일에 썼다 해야 할지 18일에 썼다 해야 할지 조차 말하기 애매해진 사람이 됐다.
그간 내가 해보고 싶던 건 결국 다 했던 것 같은데 왜 이룬 건 없어 보이고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것도 없는지
라고 말하기엔 또 너무 어린것 같은 나의 경험과 삶이 어이없다가도 ‘아 앞으로는 내가 무언가 하려면 좀 더 나의 부담이 필요하구나’ 깨닫게 된다.
그간 자연스럽게 나에게 주어졌던 경험의 기회들과 꿈꿀 시간. 그 기회와 시간을 이젠 내가 만들어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엔 책임과 투자가 따르는 법이다. 내게 점점 무거워지는 그 책임을 모른 척하다 보니 자연스레 하고픈 일들이 모호해지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꿈꾸던 삶은 일종의 뷔페였던 것 같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내 취향에 맞는 게 하나쯤은 있을 거라 가늠하며 이미 다 차려진 밥상에서 원하는 거 하나씩 골라먹다 배가 차는 그런 식사
근데 현실은 미쳐버릴 오마카세다.
난 인당 1만 원 정도의 출장뷔페로 맛만 보고 싶은데,
이 값도 비싸고 뭐가 나올지 예상조차 안 되는 오마카세는 냅다 주방장 마음대로 내가 씹어 소화시켜야 할 이름 모를 것들을 천천히 순서대로 나열한다.
아무튼간에
이번 오마카세의 순서는 ‘실업급여를 이용한 휴식기’라고 이름 붙여본다. 다음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정신 차리고 천천히 씹어 삼키다 보면 이 오마카세 가게의 별점을 매길 시간이 오겠지. 이왕 먹는 거 별점 오점짜리 식당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