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쓸만한 곳에 쓰지 않은 탓

by 림미

퇴사하면 어떻게 살 건가 고민을 좀 해봤다

생각해 보니 퇴사라는 말도 웃겨

어 그래 계약만료되면 ,,




계약만료 후 계획이라 하면 사실 실업급여 밖에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근데 그 실업급여가 180만 원에서 135만 원으로 한층 더 작고 귀여워져버린 순간 또다시 세상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받지도 못한 내 돈이 증발해버리다니.


난 정말 실업자다. 국장이 총무과까지 찾아가서 계약연장을 요청했지만 본사에 의해 막혔고 결국 11개월 계약은 오늘 만료된다.


‘11개월 계약’

이게 얼마나 졸렬한 개념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부득부득 1년을 채우지 않는 치사한 계약서에 다른 방법이 없던 나는 싸인을 했고, 그렇게 11개월을 보냈다.


부장과 국장이 그리고 다른 정규직들이 못내 얄미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잘못이 아님은 안다.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소설 제목을 아는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그래. 잘못된 건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일 뿐이다.


그 거지같음을 들숨에 부당함을 날숨에 내쉬며 지낸 11개월도 결국은 내 사랑스런 인생의 일부였기에 ‘그럼에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잘못의 주체가 아닌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썼고, 함께해야 하는 동료에게 정을 줬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때때로 내가 초라해지는 이곳에서도 드디어 마지막이 보일 때쯤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보통 어딘가에 이별을 고하고 떠날 때 드는 감정이 뭘까 생각해 보니 아쉬움이었다.


아쉬움? 내가 지금 여길 아쉬워한다고?

절대 아쉬움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 어느 정도 아쉬움과 비슷한 냄새를 가진 이 정서를 대체 뭐라 이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운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이건 억울함이다.


내 능력과 노동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곳에서 그 수많은 부당함에도 애쓰고 정 주고 목소릴 높였던 나의 열정. 그니까 돌려받지 못한 내 마음. 내 그 마음에 대한 미련이다.


잘못된 건 잘못될 뿐이며 켜켜이 그리고 층층이 쌓여버린 이 수많은 부당의 겹들을 내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적 분노̵와 남아있는 이들 또한 그러리라 하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이해와 덕분에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길을 잃어버린 내 분노가 맞닥뜨린 당황스러움.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헝클이고 흔든다.


쓸만한 곳에 쓰이지 못한 내 마음은 결국 돌려받지 못한다. 굳이 탓을 하자면, 잘못된 것에 온전히 체념하지 못하는 내 어림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이건 아니라’ 외치지 못한 내 늙음의 탓이다. 어리고 늙은 내 마음은 그렇게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언젠가 젊고 성숙해진 내 마음이 붙을 수 있는 그런 곳이 한켠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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