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16
사람은 너무 생각보다 쉽게 확신한다.
한 번 느낀 감정, 한 번 들은 말,
한 번 본 태도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정리하고 관계의 방향까지 정해버린다. 문제는 그 확신이 생각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오래간다는 데 있다.
정보는 부족한데 확신은 단단하다.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방식이다.
사람은 사실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판단을 먼저 내리고 그에 맞는 사실을 끌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했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이해를 멈춘 상태가 된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
“이건 분명 그런 의미야.”
“이건 나를 무시한 거야.”
이 문장들은 생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론이다.
그리고 그 결론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보기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이미 정해놓은 의미에 맞는 장면만. 맞았던 기억은 더 크게 남고, 맞지 않았던 순간은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설명이 되지 않는 장면은 예외가 되고, 확신과 맞아떨어지는 장면만 남는다.
그래서 확신은 점점 더 단단해진다.
정확해서가 아니라, 반복해서 믿기 때문이다.
이 지점부터는 틀린 지 맞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미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은 틀린 판단보다, 틀렸다는 감각을 더 견디지 못한다.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무너지는 건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 위에 쌓아온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실을 바꾸기보다 해석을 바꾼다.
“그건 예외야.”
“그건 특별한 상황이었어.”
“그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야.”
그렇게 현실을 수정해서라도 확신을 지켜낸다.
그래서 문제는 확신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다음 단계가 있다. 판단이다. 확신은 머릿속에 머물지만, 판단은 사람을 향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이미 정리해 버린다.
몇 번의 모습으로 그 사람 전체를 결정하고,
몇 번의 반응으로 그 사람의 의도까지 확정한다.
그래서 관계는 사실로 무너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확신 위에 쌓인 판단으로 무너진다.
나는 나를 설명하고 있지만 상대는 이미 나를 안다고 믿고 있고, 상대는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미 그 의도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대화는 길어지는데 이해는 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별일 아닌 걸로 멀어진다. 사건이 커서가 아니라 해석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굳어진 해석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는다.
사람은 틀린 판단을 하는 것보다, 틀린 판단을 유지하는 데 더 능숙하다.
여기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정말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는 단지, 충분히 보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을 판단한다는 건 그 사람을 이해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전제에 도달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판단한다. 왜냐하면 판단은 이해보다 쉽고, 확신은 의심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려고 한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얼마나 빠르게 정리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려고 한다.
내가 본 게 전부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느낀 감정이 사실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왜냐하면 사람은 틀려서 관계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틀린 확신으로 상대를 계속 판단할 때 관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