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18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은
목소리가 크면 자기 말이 맞아진다고 믿는다.
말을 세게 하면 논리가 생기고
표정을 굳히면 권위가 생기고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면
자기가 우위에 선 것처럼 느낀다.
그런데 사실은 다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주변이 지쳐서 더 이상 대응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래서 더 문제다.
본인은 내가 눌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자기 승리처럼 보일 뿐이다.
이 구조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반복된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특정인 한 사람 때문에
회의 공기가 달라지고
팀 분위기가 가라앉고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업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 한 명의 말투 때문에 기분이 무거워지고
괜히 눈치를 보게 되고 멀쩡한 의견도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스스로 접어버리게 된다.
한 사람의 무례는
한 사람만 상처 주고 끝나지 않는다.
공간 전체의 공기를 바꾼다.
그래서 회사를 망치는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일 때가 많다.
정확히는
함부로 말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 하나일 때가 많다.
더 이상한 건
이런 사람이 대개
자기 무례를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인이 장난칠 때는 장난이고
남이 같은 방식으로 치면 기분이 나쁘다.
본인이 선을 넘을 때는 친근함이고
남이 넘으면 버릇없음이 된다.
본인이 사람들 앞에서 핀잔 줄 때는 분위기 풀자는 거고 남이 한마디 받아치면 예의가 없다고 한다.
이건 단순한 이중잣대가 아니다.
자기감정만 기준이 된 사람의 전형이다.
내가 하면 장난이고 남이 하면 무례인 관계에서는
이미 상식이 아니라 힘의 논리만 남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말만 거친 게 아니다.
태도 전체가 비슷하다.
자기는 밥 한 번, 커피 한 번 잘 사지 않으면서
입버릇처럼 밥 사달라 하고 커피 사달라 하고
술 사달라 한다.
늘 얻어먹는 쪽에 서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그걸 미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냐는 얼굴을 한다.
그러면서 또
“무슨 일 있어?”
“힘든 일 있으면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이런 말은 쉽게 한다.
그런데 막상 마음을 꺼내면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내일이면
동네방네 모르는 사람이 없고
내가 조심해서 꺼낸 고민은
누군가의 입에서 가벼운 이야기처럼 흘러 다닌다.
그 순간 사람은 안다.
아, 이 사람은 호의도 신뢰도
자기 쪽으로만 당겨 쓰는 사람이구나.
무례한 사람은 말만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
호의와 신뢰까지 자기 몫처럼 쓰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말을 아끼게 된다.
틀릴까 봐서가 아니다.
똑같이 대응해도 결국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구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리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그냥 잘못했다고 해야 하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선을 넘는 말까지 견뎌야 하나.
이 질문이 생기는 순간
이미 그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나이는 존중의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무례의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경험이 많다는 건
더 함부로 말할 자격이 아니라
더 조심해서 말할 책임에 가깝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걸 정반대로 쓴다.
내가 더 오래 살았으니
내가 더 많이 봤으니
내가 더 많이 겪었으니
네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건
경험이 아니라 서열을 휘두르는 태도다.
존중받는 어른과
나이를 무기처럼 쓰는 사람은 다르다.
전자는 말하지 않아도 존중이 생기고
후자는 억지로 눌러야만 침묵이 생긴다.
이 둘을 헷갈리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기 성격을 핑계로 자주 말한다.
“나는 원래 다혈질이야.”
그 말은 설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면책에 가깝다.
나는 원래 성격이 급해.
나는 원래 욱해.
나는 원래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왜 그 ‘원래’는
항상 남이 견뎌야 하는 방식으로만 나타날까.
왜 그 성격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더 크고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 앞에서 더 쉽게 드러날까.
정말 다혈질인 게 아니라
자기감정을 남에게 비용처럼 떠넘기는 데
익숙한 사람일 수도 있다.
다혈질은 성격일 수 있다.
하지만 무례는 선택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화를 남에게 쏟아낼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다.
감정은 이해의 대상일 수 있지만
태도는 책임의 대상이다.
이건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문제는 그 사람이 화를 잘 내는가가 아니다.
그 감정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자주 쏟아내는 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뒤에 책임질 줄 아는 가다.
대부분의 경우
무례한 사람은
자기감정에는 솔직하지만
자기 책임에는 무심하다.
본인은 순간적으로 풀렸을지 몰라도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계속 그 말을 곱씹는다.
그날 하루가 망가지고
기분이 눌리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혼자 되짚고 다음엔 그냥 피하자고 결심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람 곁에서는
일보다 사람이 먼저 소모된다.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보다 그 사람 옆에 있으면 에너지가 빠진다는 감각이 먼저 생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생각보다 정확하다.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건 항상 큰 악의가 아니다.
작고 반복되는 무례다.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것도
대개 한 번의 폭언이 아니다.
계속해서 선을 넘고도
아무 일 아니었던 것처럼 넘어가는 태도,
상대가 불편해해도
그걸 예민함으로 돌려버리는 태도,
자기 말투가 누군가의 하루를 망쳤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끝내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진짜 위험한 사람은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화를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기 무례를 솔직함이라고 부르고
자기 폭압을 카리스마라고 믿고
자기 이중잣대를 원래 성격이라고 정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주변을 힘들게 하면서도
늘 본인이 피해자라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자기는 늘 ‘할 말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할 말이 있다는 것과
함부로 말할 권리가 있다는 건 전혀 다르다.
솔직함은 책임이 따라올 때만 솔직함이고,
책임 없는 솔직함은 대부분 폭력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은 예민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무례한 사람이 계속 허용되기 때문에 커진다.
팀을 무너뜨리는 건 능력이 부족한 사람보다
말로 사람을 깎아도 된다고 믿는 사람일 때가 많다.
그리고 관계를 병들게 하는 건
실수보다 반복되는 이중잣대와 책임지지 않는 태도다.
내가 하면 장난이고 남이 하면 버릇없는 것.
내가 하면 솔직한 거고 남이 하면 선 넘는 것.
내가 화내면 성격이고
남이 불편해하면 예민한 것.
이 말도 안 되는 구조 안에서
가장 빨리 소모되는 건 늘 참고 넘기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때로는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목소리가 크다고 말이 맞아지는 건 아니라고.
나이가 많다고 무례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라고.
원래 다혈질이라는 말이
타인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면허는 아니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기분 나쁜 말 한마디가 아니라
그 말을 해놓고도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고 믿는 태도라고.
당신의 그 태도와 행동은 강한 게 아니라,
무식함이 예의 위에 올라탄 모습이라고.
말은 지나가도 태도는 남는다.
그리고 사람은 결국
남은 태도로 누군가를 기억한다.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건 큰소리가 아니라,
그 큰소리를 정당하다고 믿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