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마음을 놓지 말기
최근 만 서른일곱이 지나며 서른 후반에 진입했다. 서른 후반이 되면 안정적이고 삶이 어떤 궤도에 이미 올라가 있어 계획 대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나이인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20대 초반만큼 30대 초반만큼 불안하기 짝이 없는,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존재일 뿐이었다. 가끔 나는 내가 너무나 미세한 존재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갑자기 나 스스로가 너무 작은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들 말이다.
나는 아직도 2030 청년임을 믿고 싶으면서도 청년들의 도전정신이나 패기 같은 건 반 이상 꺾여 사라져 버린, 이제 막 시들기 시작한 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서른여섯까지는 서른 중반에 애 둘 맘 정도면 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딱히 개인적으로 이뤄놓은 것은 없어도 내 눈엔 아름답기만 한 소중한 아이들이 있으니, 이 정도면 잘하고 있고, 인생을 잘 꾸려 나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딱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종종 두려움이 엄습한다. 나이에 대한 두려움이 원래 없었는 데다 되려 나이가 빨리 들고 싶기도 했었는데... 20대 때는 30대가 되고 싶었고, 30대 때는 30대가 되어 너무 좋았으며 멋진 40대를 꿈꿨다. 아마도 서른일곱이 되면서 3년 뒤면 40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미룰 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이제는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렇게 불안하고 두려운 서른 후반에 진입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의 나와 비교를 해 보면 확실히 세월과 함께 얻은 것이 있다. 이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쉽게 가질 수 없는 엄청난 기술이다. 내가 아무리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설명해 줘도 이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으니까. 이렇게나 빨리 서른 후반이라는 나이가 다가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어린 시절엔 경험자의 말들은 가끔씩 꼰대의 오지랖 훈계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으니까. 이런 기술은 오로지 시간과 경험이 쌓여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를 좋아할 수 있다. 그 수많은 걱정들과 고민들 속에서도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가 있다.
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 어떤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지 알고 있다. 바로 감사하는 것이다. 나의 20대와 30대 중반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스스로의 두려운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은, 내 삶에 감사하는 것이다.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외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외치다 보면 내 머릿속에 하나씩 떠오른다. 정말 감사한 것들이.
그중 건강에 대해 생각하면 이 세상에 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 우리 가족, 양가 부모님과 양가 동생들 가족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내 머릿속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가득 차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 것인지 잊어버리고 생활할 때가 많다.
건강 다음에 감사할 것은 행복함이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것에 감사. 내가 행복했던 작은 순간들을 생각하며 그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사실 행복했던 순간에 물질적인 것들은 크게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인지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순간, 내가 아이들을 찾았을 때 까르르 웃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 우리 큰 아들이 축구를 하면서 친구들과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 나 지금 행복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만으로 한 살밖에 안된 작은 아들이 우리가 키우는 미니 푸들을 만지며 뽀뽀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 너무 사랑스럽다. 남편과 사이좋게 커피 한잔 마시러 드라이브 나갈 때, 큰 아이가 학교에 있고 작은 아이가 낮잠을 자는 그 순간 이렇게 노트북을 켜고 짧은 일기를 쓸 때 등. 나의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다 보면, 내가 떠올리는 행복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소소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무엇에 감사해야 할지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필요한 순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인지하고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른 후반의 나는 꽤나 괜찮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만족할 수 있다. 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니까.
한 달에 한 번 마법이 찾아오는 그날이 되면 이유 없이 울적해지고, 오늘 같이 구름이 많고 바람이 불며 비가 내리는 5월엔 호르몬 때문인지 날씨 때문인지 마냥 우울해진다. 이 우울한 기분에 빠지다 보면 한 없이 내 삶에 대한 불만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오늘 떠오른 것들은 다음과 같다. 아 왜 나는 자유시간이 이렇게 부족할까. 나도 매일 운동하고 자기계발하고 내 꿈을 찾아가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 이렇게 살이 찐 걸까. 왜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몇 달이 되었는데 늘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할까 등. 수많은 불만과 자책과 내 삶의 부족한 것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잠시 눈을 감고 외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만큼 살아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런 불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큰일이 없다는 것일 테니 지금에 감사합니다. 현재에 감사합니다. 아직도 너무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아이 둘의 엄마 사람, 나. 그럼에도 당당히 나이에 걸맞은 서른 후반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