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린 Oct 04. 2022

다소 사적인 클럽을 졸업하며

나를 찾는 8주간의 여정

성수 르타리


8주간의 독서 모임이 마무리됐다. 사실 다음 기수도 신청하려고 했었지만, 점점 많아지는 과제량 때문에 신청을 번복해야 하나 오랜 고민을 했고, 결국은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여지자는 마음으로 신청 취소를 했다. 신청 취소를 하겠다고 호스트님께 메시지를 전송할 당시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대학생이라는 틀에 얽매여 학기 중이라는 이유로, 과제와 수업 때문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할 수 없는 나의 상황을 원망했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한 결정이니까 번복하지 말고 오기로라도 버텨볼까 싶었지만 이러다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결국은 본업을 택했다.

독서 모임을 신청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모집 공고가 올라왔을 당시, 나는 한창 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어느 주제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그것들을 전해 듣다가 드는 내 생각이 결국 내가 아닐까, 하며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전 다. 사. 클의 브랜딩 워크숍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내가 이 모임에 들어가면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싶었다. ​


모임은 8월 10일, 여름 방학 중에 시작됐다. 초반에는 동아리 브랜딩 회의를 하다가 모임에 갔고, 중반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모임을 병행했다. 개강한 뒤로는 강의가 끝나고 난 뒤에 곧바로 성수로 이동했다. 성수는 내게 꽤 낯선 동네였다. 아는 카페나 식당들을 카카오 맵에 저장해두긴 했어도, 그렇게 많이 방문한 동네는 아니었다. 다행히도 학교에서 성수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고, 개강하고 나서 오히려 더 편하게 왔다 갔다 했다. 매주 성수에 적응해보려고 구석구석 돌아다녀서 이젠 성수가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열정의 흔적들

지금 현재는 인생에 별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아 너무나도 안정된 상태지만, 한창 모임을 나가기 중반쯤 나는 너무나도 위태로웠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원망이 가득했다. 모임에서는 나이와 직업을 밝히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고, 그 규칙 덕에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색안경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린 이십 대 초반의 대학생이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 대우받았다. 그곳에서 나는 어디 가서 얘기하기 어려운 나의 깊은 내면 이야기를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수요일마다 숨통이 트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집에 가는 길엔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고 그게 일주일 내내 지속이 됐다. 점점 무거워지는 마음의 무게가 너무 괴로워, 모임이 끝나고 엉엉 울면서 집에 간 기억도 난다.


​8주 차 마지막 모임에서는 책 교환식을 가졌다. 나는 곧바로 책장에 있는 <쇼코의 미소>를 챙겼다. 첫 모임 때 각자의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그때도 <쇼코의 미소>를 가져갔었다. (독서모임을 신청할 때 커리큘럼을 보고 처음과 끝을 <쇼코의 미소>로 장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쇼코의 미소>는 상처 그 자체였다. 작년 여름에 한창 대인관계로 큰 상실감을 겪었고, 그때 만난 소설이 <쇼코의 미소> 속에 수록된 한지와 영주였다. 짝사랑할 때, 또는 이별했을 때 즐겨 듣던 음악이 기억이 그 자체가 되어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그 노래를 다시 꺼내 들으면 그 당시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처럼, 내게는 쇼코의 미소가 그랬다. 그 소설을 읽던 나의 상황과 주인공이 너무나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감정이입을 하고, 괴롭게 울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한지와 영주 中>​

단절되어 남겨진 사람은 수없이 생각하게 된다. 지난날 저지른 행동에 대한 반성과 후회, 자책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던 내게 이 소설은 마치 신이 그 당시의 나를 보고 적은 소설 같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지와 영주>를 재정 독하면 그때의 감정이 상기되어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을 교환식에 가져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작년의 기억을 흘려보내겠다는 다짐. 그것뿐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같은 문제로 괴로워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약속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한지를 떠올리며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

​​​​​​

나는 내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 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도 용기를 내줘서,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2022.9.28. 수요일


작가의 이전글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혼자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