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린 May 24. 2023

종오소호 (從吾所好)



1.

요 근래의 삶은 너무나도 소란스러웠다. 주기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나는 스케줄과 밀린 과제를 해치우기 위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사람들 틈에 부대끼며 살아갔다. 환기시키지 못한 채로 마음속 불순물은 점차 누적되고 있었고, 마음의 여유는 점차 바닥이 나게 되었다. 고민을 나누고자 하는 타인의 이야기가 어느샌가 버겁게 느껴지고, 자신의 처지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소리를 들으면 나에게도 그들의 감정이 옮을까 봐 귀를 틀어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은 타인의 고민 하나 들어주지 못할 만큼 난장판이 되었다. 구슬이 목에 꽉 낀 것만 같이,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 이야기를 듣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내 불순한 마음을 주변에게 번지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이 지옥 같을 땐 티끌 같은 말 하나에도 인생 혼자구나 싶지만, 내가 누군가의 지옥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미안하고 속상한 게 아니라. 인생이 나한테 쓴맛이면 옆 사람도 쓰다. 누가 더 쓴 지 겨루어보면 뭐 할 건데. 서로에게 시럽이나 넣어주면 그만인걸.


우리는 앞으로 남은 여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만의 감정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인해 화병이 나서 쓰러질 것 같다가도 모든 걸 때려 부쉬고 싶어질 때는 퇴근길에 제과점에 들어가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을 사서 마음을 다스렸었고, 한낱 알바인 저에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단단히 한 아저씨가 저의 멱살을 붙잡았던 그날은 아무도 없는 단지 내 놀이터에서 수많은 눈물을 털어내야지만 집으로 돌아가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모든 생이 전부 부질없다고 느껴졌을 때는 아무도 없는 자연을 찾아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추운지도 모르고 제자리에서 한참이나 못난 마음을 비워냈고, 더 이상 증오와 미움의 대상이 타인이 아닌 저에게 모든 화살이 돌아왔을 때는 잠이 오지 않더라도, 질끈 눈을 감아 잠을 청한 뒤 어지러워진 집을 치우면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저는 지금, 시간이 다소 소요될지라도 성난 파도처럼 요동치는 저의 마음을 잔잔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화를, 내가 만들어낸 독은 저를 넘어서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더군요. 그 독은 전염이 빨라서 제 몸 밖으로 퍼지기 직전에 잡아야 합니다. 청소로도 게워내지 못했다면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 볼까요. 가능한 초록이 넘실대는 곳으로, 사람이 적은 곳으로 긴 산책을 떠나는 겁니다. 넘실거리는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바람이 만들어낸 힘으로 나뭇잎들이 춤추는 소릴 듣고. 들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을 유심히 보며 자연이 만들어낸 향기를 맡아보는 겁니다. 가끔 열심히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동물 친구들과도 눈을 맞춰 인사를 나누고 긴 호흡을 뱉어 냅시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들은 너무나도 고귀하고 소중하니까. 가능한 오래오래 이 땅 위에 남아서 세상이 만들어낸 모든 기쁨들을 만나러 가야 하니까요.

2.​

좋아하는 중국어 표현 중에 ’心里面像是打翻了五味瓶‘라는 것이 있다. 기분이 아주 나쁘다'는 의미인데, 문장을 그대로 해석해 보면 마음의 모양새가 다섯 가지 맛의 양념이 든 병이 엎질러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나는 이 표현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스럽다'거나 '땅이 꺼지는 것처럼 슬프다'는 비유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다. 상실의 크기가 짐작이 되지 않는.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는 이나정이 어마어마한 일에 비해. 다섯 가지 맛의 양념이 든 병이 엎질러진 것 같은 마음의 상태라니. 그 망연한 좌절감과 복잡한 심정이 너무 잘 이해된다. 나도 잘 알고 있는 기분인 만큼 십분 공감할 수 있다. 너무 끔찍한 괴물과 너무 많은 피가 진정한 공포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처럼, 너무 거대한 이야기와 너무 반짝이는 작품이 좋은 환기의 순간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것이 살짝 어긋나는 지점에서 생기는 두려움은 흥미로운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3.​​

참 아끼고 좋아하는 동생이 있다. 알고 지낸 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때는 내가 열여섯 살이었고, 그녀는 열네 살이었다. 나는 얼굴도 잘 모르는 나보다 두 살 어린 후배였는데, 초면에 의심스러울 만큼 스스럼없이 다가오고 호의를 베풀고 나를 정말 좋아해 주고 따라주길래, 얘는 나를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나를 좋아하고 있는 걸까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두고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흐려질 때마다 불쑥 연락이 와 나의 안부를 물어보고 다시 사라지는 그녀는 언제부턴가 나의 주변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느덧 스물셋이 된 지금 내 삶에는 중학교 시절 인연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데도, 그녀는 열네 살부터 스물한 살이 된 지금까지 내 곁에 존재하며 나를 따른다. 그녀가 나에게 베푸는 것들에 비해 나는 그녀에게 해준 것이 정말 없는데도.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하면서도 중심이 있는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참 나와 많이 닮으면서도 어린 날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늘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본 그녀와 함께 벤치에 앉아 밤공기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는데, 몇 달 전 내가 그녀의 고민을 듣고 흘리듯이 조언을 해줬던 나의 말이 울림이 깊었나 본지, 그녀의 가슴속에 지금까지 오랫동안 남아있었다고 했다.


어떤 관계로부터 많은 고민을 했고, 분명히 상처를 받았을 그녀가 지난날의 나와 겹쳐 보이기도 해서. 무조건 아프지만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물론 너는 그러지만은 않을 테지만. 네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사람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분명 어떤 형식으로든 너의 세계를 넓혀줬기 때문이야.‘

그녀에게 이렇게 조언을 했다는 걸 잊고 있었는데, 다시 그녀가 나에게 말을 해줌으로써 기억할 수 있었다. 어떤 말은 어느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평생을 남는다는데, 내가 그녀의 나이였을 때, 이제 막 삶의 제2장을 시작했을 때 나의 삶을 넓혀준 귀인들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내가 나눠주고자 한 것들이 토대가 됐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몰려온다. 나는 잠시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절망과 두려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밥처럼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을. 나누는 사이로 희망은 어느새 끼어들어 이유를 완성한다. 앞으로 살며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그녀만의 색을 잃지 않고 의연히 살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길을 걷기를. 그리고 지금처럼, 넘어지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을 나에게 나눠주기를. 그리고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4.

어떤 허무맹랑한 나의 생각을 뱉을 때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을 하며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이 놀아도, 때로는 알쓸신잡같이 지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낙관적인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어느 하나 부끄럽지가 않는 사람이다. 당신 한 명만 있어도 온 세상이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은, 내게는 또 하나의 세상 같은 사람. 나는 몰래 당신과 평생을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쑥스러운 나머지 이 마음을 방 한편에 접어두고 살며시 펴보기도 한다.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보고 느끼고 나눌 때마다 나는 가슴 한편이 너무 시리기도 하다. 꼿꼿하고 안정적이게 잘 살아가던 나를 이렇게 불안정하게 만든 당신이 때로는 미웠다.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만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이 느끼게 하는 당신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밉다.


당신이 얼마 전, 불투명한 미래와 숨 막히는 현실로 괴로워했을 때 나도 당신을 생각하며 아팠다.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아프게 하냐는 질문도 못하고, 어떠한 위로의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그저 침묵하며 당신이 얼른 괜찮아져 나에게 괴로운 지난 시기를 보낸 뒤에 건져 올린 사금 같은 명제들을 털어놔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당신의 삶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보듬어주기에는 나는 어렸다.


여전히 당신은 대담하게 오류들을 내던지며 한 발 한 발 좁다란 평균대 위를 나아갔다. 그러나 이제 나는 훌륭히 자랐으며 힘을 갖게 되었다. 이제 혼자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축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저 스스로 계속 묻고 답하는 당신이 얼른 괜찮아져 나에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뒤, 건져 올린 한 줌 사금 같은 명제들을 일기장에 적듯 이야기해 주길 바랐다.


인간의 이타성이란 그것마저도 이기적인 토대 위에 있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홀로 고립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괴로워 재촉하듯 건넸던 응원과 위로의 말들을, 온전히 상대를 위해 한 일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내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참견을 잘 참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그런 행동들이 온전히 상대만을 위한 배려나 위로가 아닌 그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보고 싶은 나의 간절한 부탁이라는 것을 안다. 염치없이 부탁하는 입장이니 아주 최소한의 것들만 바라기로 한다.
이 시를 들어 달라는 것, 그리고 숨을 쉬어 달라는 것.
누군가의 인생을 평생 업고 갈 수 있는 타인은 없다. 하지만 방향이 맞으면 얼마든 함께 걸을 수는 있다. 또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 노래를 불러 줄 수 있다. 내가 음악을 하면서 세상에게 받았던 많은 시들처럼 나도 진심 어린 시들을 부지런히 쓸 것이다.
그렇게 차례대로 서로의 시를 들어주면서, 크고 작은 숨을 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논어 중 종오소호(從吾所好)라는 말이 있다. 의미 있는 삶의 방향, 종오소호(從吾所好). 인생은 단 한 번뿐, 내 것의 소유만큼 내 삶의 의미에 집중하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나의 일방적인 마음은 내게 상처였다. 내가 지켜주고 싶은 당신은 정작 나를 지켜줄 마음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당신의 곁에 머무르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좌절을 하고 슬픔을 흘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내게 확률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부재할 나의 미래가 슬프게 느껴져도, 결국 미래는 실존하지 않으며 영원히 현재를 투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현재 내 옆에 있는 당신에게 온 정성을 다할 것이다.


앞으로 당신에게 무슨 일이 닥쳐도, 내가 당신의 곁에서 묵묵하게 서 있을 것임을 알아주길. 언젠가 그저 당신과 나 사이에 그저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우리가 이별을 해도, 그냥 내가 잠시 당신의 곁에 살았다는 걸 부디 기억해 주길 바란다.



5.

부드럽고 다정한 이야기들, 깨끗이 닦은 손. 청결한 옷. 좋은 관습. 인생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정돈되어 있으려면 그 세계를 향해 있어야만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장의 슬픔에 연연하고 나의 처지를 탓하느라 이것들을 놓친 채도 몰랐다. 늘 연결되어 있는 줄 알았던 나의 세계는 고개 들어 보니 어느새 나와 끊어져있었고 나와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다시 나의 삶을 찾아가려고 기록을 시작했다. 밀린 일기들을 써내면서 지난날들을 다시 되새기고 생각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나의 소중한 일상들은 결코 꺼져서는 안 될 촛불이다. 그러니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는 곳이 옳다. 그것은 누구도 뺏을 수 없다. 온 마음을 담아, 부디 모두가 그런 세계에서 지내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