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진짜 대학생같아(3)

by 이은주


엄마의 도산으로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나는 솔직해졌다. 유학은 떠나왔지만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사실 나의 내면은 간절히 대학 졸업을 바라고 있었다. 입학 전에 밑줄을 그으면 듣고 싶었던 전공과목을 이제야 듣게 되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빚을 갚으라고만 가르쳤지 빚과 함께 사는 방법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중압감은 삶을 마감해야겠다는 결론으로 가기 쉬웠다. ‘도망쳐. 살아남아야지. 남은 가족들을 보호해야 해.’ 그러나 서두르다보면 신경쇠약에 걸린다고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과 산문을 통해 알게된 선경험은 문학이 내게 준 자원이었다. 테루의 아버지는 테루와 어머니에게 빚만 남기고 돌아가셨다. 사채업자들이 남은 가족을 위협하며 빚독촉을 하자 테루는 창문으로 도망치면서 거듭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살아남아야 해. 도망쳐.’
나는 도망치기로 했다. 어떻게든 빚은 나중에 갚고 지금 내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동생의 가족과 낙엽이 지듯 모든 성인병과 암에 노출된 엄마를 지키자. 그렇게 간신히 가족을 돌보다 허리를 펴고 숨을 돌리니 기다렸다는 듯이 제2금융권으로 넘어가 있던 빚독촉장이 날아왔다. 신기한 일이다. 그들은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걸까. 그것도 내 통장에 세 권의 번역료가 들어 온 시점과 일치했다. 마침내 나는 십여 년 전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며 서명했던 자신의 글씨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고생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자 눈물이 났다. 빚독촉자는 티브이 깡패와는 다르게 내 감정이 정리되는 동안 위로까지 하면서 세련되게 기다려주었다. 삭감된 원금과 이자를 갚은 후 쓰레기가 된 대출서류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로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

1990년대 도쿄에 체류한 6년 동안 나는 ‘유학생이었을까 이주노동자였을까’고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일본의 대학생들 보다 태국, 미얀마, 중국에서 온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었다. 그들 중에는 불법체류자도 있어서 같은 일을 해도 유학생인 나와 다른 시급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차별이었다. 게다가 나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10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네다섯 시간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간 것뿐이었다. 오치아이 방 나무침대에 걸터앉으면 발바닥에서는 전류가 흘렀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도 나는 쉬는 날이면 이노우에 선생님께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프리 스쿨을 방문했다. 한국어 수업료는 책 한 권이 다였지만, 선생님은 그 이상의 것을 주셨다. 겨울바람이 쌩쌩 불던 날 선생님은 안성기 주연의 오구리 코헤이 감독 영화 『잠자는 남자』를 보여주셨다. 도쿄에서 『서편제』를 보고 느꼈던 역동적인 감동과는 전혀 다른 무위의 감동, 감동 아닌 진동, 알 수 없는 여운이 오래간 영화였다. 이야기가 도무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끝나버린 이상한 영화였다. 타국에서 자국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건 특별했다. 포스터에는 만월를 배경으로 안성기가 이불 속에 누워있고 ‘사람은 큰가, 작은가’라는 카피가 적혀있다. 나는 『잠자는 남자』를 다시 한번 보았다. 그리고 학교 프로그램인 편집연습에서 1년에 한번 발행하는 잡지 ‘감독 인터뷰’를 기획해서 제출했다. 여름 내내 감독에게 인터뷰 요청 엽서를 보냈다. 진행 상황은 프리스쿨을 방문할 때마다 이노우에 선생님께 전했다. 마침내 오구리 코헤이 감독으로부터 ‘몬트리올 영화제에 참석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짧은 엽서를 받았을 때는 나와 함께 기뻐해주셨다. 인터뷰 요청 엽서에는 ‘기시다 리오(극작가) 선생님 초대로 '바람의 노래' 리허설을 보면서 바람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콘트라베이스로 연주에 맞추어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순서가 없고, 늘 여름 바람이 계속되거나, 겨울 바람이었다가 가을 바람이 반복되기도 한다는 걸 생각했습니다.’라고 썼다. 엽서에 빼곡히 담은 사연이 오구리 감독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감독의 답장이 도착한 날부터 그의 책 <애절함과 통절함>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인생은 애절함과 통절함으로 버무린 비빔밥 같았다. ‘이상은 진짜 대학생같아’ 이노우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불법체류자가 되어 서울에 있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보낼 욕심에 학업을 중단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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