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 편지

by 이은주

미국에서 온 편지.

은주 어머니!
전 은주 친구에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예요.

은주와는 글로 얘기할 수 있지만 엄마에겐 직접 편지를 써야 하니까요.근데 저는 편지쓰기를 좋아해서 이렇게 카드를 그리고 꾸미는 시간이 행복해요. 받는 사람에게도 내 기쁨이 전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모란의 꽃말이 '부귀영화'라네요.
옛날부터 새해에 집집마다 이름없는 환쟁이들이 그린 모란도를 많이 걸었다네요.

새해에는 조금만 아프고,
조금만 속상하고,
기쁜 일은 많아지기를 기도할게요.
20.12.28 써니가

* * *

겹겹이 싼 봉투를 열고 카드 안의 받는 사람이 나의 엄마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편지를 써내려간 손길에는 먼 나라에서 사는 사람의 고향생각이 묻어났고, 고국에 두고 온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있었고, 나는 영매처럼 그런 그녀의 영혼을 따라 편지를 타고 접속하며 심장이 끊어지는 아픔, 을 느꼈다.

나는 그녀가 최근의 내 글에 단 댓글을 다시 읽었다. 이메일을 주고 받은 내용을 다시 읽었다. 봉투에는 그녀의 전화번호나 주소가 없었다. 그녀가 나의 엄마한테 쓴 편지는 거친 껍질 안의 부드러운 과즙처럼 나를 일깨우는 것이었다. 사랑할 시간에 아직 늦지 않았음을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가 생활고로 거칠어진 나를 일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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