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고 번역을 하기 전에 옷장을 열었다. 실내복이 아닌 작업용 옷을 차려입으려고.
싸구려 합판으로 만든 흰 옷장을 나는 좋아한다. 곧 있으면 흰 껍질이 벗겨지며 합판이 드러날 것이다. 그땐 아크릴 물감으로 멋진 색을 칠해 줄 것이다. 옷장의 서랍은 벌써 흰색 아크릴로 두 번 도색을 했다.
작업용으로 고무줄 청치마와 흰티셔츠를 골랐다.
옷장 안은 대체로 입고 싶은 옷들로 정리되었고 이웃사람들이 준 옷은 이제 버렸다. 스타일도 언어니까. 나의 색깔도 아니고, 나의 이미지도 아닌 옷들을 물려 입는 건 이제 안 하려고 버렸다. 복장도 언어라면 일주일을 같은 옷을 입더라도 내가 고른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므로 푸른색 청치마와 낡았지만 정이 든 청색 코트. 검정 상하의와 흰 와이셔츠와 흰 티가 전부인 나의 옷장 앞에서 출근 준비를 한다. 물론 10평 임대아파트지만 출근은 출근이다. 번역 모드.
저녁까지 ら행을 마치면 <전몰인명사전> 한국어 번역이 끝난다. 나에겐 모험이었다. 육아와 돌봄 일과 글쓰기와 번역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또한 자신의 질문에도 답해야했다. <전몰인명사전> 작업하는 게 돈 때문인지. 이제와서 왜 개정판 작업을 필요로 하는지. 내면으로부터 오는 질문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왜 이 사전 번역을 맡았을까? 중일 전쟁,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동원되어 죽은 일본의 젊은이들을 기록하는 작업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이런 질문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 것은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이라는 책과 전몰화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 이름이 무언관인데 <無言館>의 뜻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불리워질 거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것이다. 전자의 책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 반전 평화 운동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고. 오늘 내가 하는 번역은 미술관의 이름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불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왜 번역하는지에 답하기 보다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