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동안 살던 오치아이의 주인 아줌마와 통화를 했다. 서면 인터뷰에 쓸 사진 허락을 받기 위해서..
"이번에 제 세 번째 책이 나오는데요. 오치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인터뷰에서 오치아이의 마당에서 아줌마 아저씨와 찍은 봄꽃이 활짝 핀 사진을 쓰려고 하는데요."
"어머 기뻐라."
(너무 기뻐하며 아줌마는 초발랄 수다를 이어가셨다. 너무 오래간만에 듣는 수다, 아침이면 아이스크림 도매상을 하기에 집앞에 늘어놓은 아이스박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옮기며 집근처 출근하는 지인들이나 이웃과 부지런히 정담을 나누던 아줌마의 수다를 6년 내내 들으며 잠에서 깼다. 누가 일본여성을 조용하다고 했는가 아줌마는 씩씩하고 유머넘치는 화제로 주변의 시든 꽃을 활짝 꽃피우게 하는 마법사였다.)
"있잖아 이상. 지난번에 내가 집을 새로 짓는다고 했잖아. 3층으로 지어서 2층은 사무실로 쓰고 3층에서 혼자 살아. 위 수술로 옛날처럼 뚱뚱하지도 않아. 45kg이야. 있잖아 이상 의사선생님이 이젠 자기가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 먹으라고 했지만 조금씩 밖에 먹을 수 없어.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니까 건강히 살다 죽어야지. 매일 수영을 하고 있어. 300미터에서 500미터 왕복을 한다니까."
"에 대단하군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전 한국나이로 54살이 되었어요."
"뭐! 54살. 난 80살."
토요일 저녁 8시. 아줌마는 티브이도 켜놓지 않으시고 무슨 일을 하다 전화를 받으신걸까..
"한국에는 꼭 한번 와주세요.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오 그래. 나 진짜 가려고 했다니까. 딸이랑 갈 참이었는데 딱 코로나가 시작된거라구. 이상도 우리집 3층으로 지은 것 보러 와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꼭이야. 눈물이 난다. 반가워서."
그랬다.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렇게 아저씨랑 부지런히 일했던 아줌마였다. 사람좋은 아저씨가 보증을 서서 그 빚을 갚느라 허덕허덕 살아왔던 세월이었다. 이제 3층으로 새집도 지었는데 아줌마는 혼자.
"외롭지 않으세요?"
"외롭다면야 외롭지. 그래도 할 수 없지."국제전화를 시내 통화처럼 푸짐하게 걸고 잠시 아줌마를 안아드리고 오고 싶었다. 아줌마 저도 눈물이 나요. 반가워서 실은 조금 울었어요. 마당에서 딴 가지를 주셨잖아요. 가지를 버터에 구워서 맛있게 잘 먹었어요. 제가 설날 손자손녀에게 500엔을 주자 몹시 고마워하셨지요. 그 손녀가 엄마가 되어서 증조할머니가 되셨다니 대단하네요. 더 자주 연락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