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는 5시 50분이 되어야 온다

by 이은주

밤새워 책을 읽고 기침을 콜록이며 곤히 잠든 조카들을 등뒤로 하고 아파트 열쇠를 찾는다.

매주 토요일은 별식을 먹는 날. 카레, 잡채, 함박스테이크, 오뎅, 삼겹살, 핫케잌...

어제는 삼겹살을 먹었다. 이젠 아이들이 커서 삼겹살 2근도 부족하다. 다음엔 3근을 사야겠다.

새벽 4시 50분.

버스를 기다리며 핸펀으로 음악을 듣는다.

새벽 공기는 맑고 차다. 내일까지 한 달 동안 번역한 버전업을 출판사에 보내야 한다. 오늘 교정봐야 할 분량은 A4 40장 분량이다. 출판사에서 근무했을 때 내 하루 업무량이다. 업무일지를 썼으니까 대충 그 정도로 기억한다.

중앙대 국문과 학생이 인터뷰를 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학생 질문의 절반이 번역료에 관한 것이었다. '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엔'을 읽고 감동을 받은 줄 알고 나갔던 나는 그녀와의 대화 중에 교수님이 꼭 알아오라고 하셔서요. 원고지 1장에 얼마를 받나요. 책 1권 번역하면 얼마죠. 묻는 통에 혼났다.

요즘 친구들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꿈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그때의 인터뷰로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꿈을 꿀 때 대단히 로맨틱하게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마음대로 부풀려 생각하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내가 이렇게 박한 번역료를 알았더라면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았을까.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따르는 노동력과 박한 번역료 사이에서 오는 자괴감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글쎄 나는 늘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기 보다는 행동파이니까 결과는 같았겠지...

나는 지금 청량리역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다. 첫차 시간이 5시 50분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어도 좋았다.

조카들이 잠들어 있는 아파트에서 헌수첩에 있는 정보를 2009년 수첩에 옮겨 적거나 했을 것이다.

역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들 대부분이 나이든 분이시다. 일요일 새벽, 가방을 들고 어딘가를 향하시는 노인들의 모습. 그들의 가방은 대부분 낡아 있고 노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전철역 자판기에 300원을 넣고 잠시 혼란스럽다. 나 혼자 마셔도 될까. 결국 한 잔 마시기로 한 나는 100원을 더 넣고서야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청량리 역 자판기에는 300원짜리 커피는 없었다. 100원이 오른 사실에 나는 어쩐지 서글퍼졌다. 오르고 또 오르는 도시의 물가와 일터용 가방 곁에 웅크리고 계신 노인들의 생활이 무관하지 만은 않은 것 같았다.

첫차는 5시 50분이 되어야 온다 (2009.2.1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