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의 유머

by 이은주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귀족 에스테르하지 일가의 악장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프랑스 베루사유궁전을 모방한 별궁을 짓던 귀족은 별궁이 채 완성되지 않아 거처가 비좁음에도 불구하고 관현악 단원들을 불러와 매일 연주를 시켰다. 관현악단원들이나 하인들 방이 부족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몸으로 별궁에서 지내야 했다. 하이든은 집에 가고 싶은 단원들의 마음을 후작에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던 중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하고 교향곡을 작곡했단다.

별궁의 홀에서 연주회가 시작되고 4악장에 이르자 음악에 맞추어 연주자들이 한 명씩 무대 뒤로 사라졌다. 먼저 제1오보에와 제2호른이 퇴장하고, 이어서 바순 주자가 사라지더니 결국에는 바이올린 주자와 지휘자만 남게 연주를 마무리했다.

단원들의 마음을 알게 된 후작은 그후 휴가를 주었다. 교향곡 45번 고별은 이렇게 태어났다고 한다.

가족을 만나러 가고픈 단원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한 하이든의 유머. 지난주부터 시작한 'All That Classic'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다.

3월 한 달 동안 4주간의 클래식 강의를 신청했다.

오늘 그 두 번째 강의에는 100분 수업 중 20분만 들을 수 있었다. 그 20분조차도 들으러 갈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오전에는 동생의 병원 문제로 뛰어다녔고, 오후엔 조카의 학부모회의에 얼굴을 내밀어야했다. 사정없이 바빴지만 나는 두번째 강의를 들으러 가기로 했다. 마침 발트뷔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된 김연준의 悲歌가 연주되고 있었다. 하프소리, 플룻소리가 한없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어쩌면 슬픔, 잠, 꿈, 죽음과 통해있는 것일까. 음악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눈물을 질금거리는 내가 있었다. 아마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나에게 지워진 책임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조금 무거웠다.

오늘 점심을 먹으며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랬다. 어제는 막내조카의 반에서 임원선출이 있었는데 막내조카가 부회장으로 추천되어서 2표 차이로 떨어졌다.

저녁에 아이는 할머니에게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했고, 할머니께서는 그 말이 잊혀지지 않으셨단다.

"할머니, 영주는 공부도 잘 하고 엄마도 있어서 회장이 되었잖아요?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부회장이 되었을 텐데."

국밥을 떠 넣던 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지난주 메쉬 포테이토를 함께 만들면서 했던 말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메쉬 포테이토를 만들면서 막내조카와 큰조카 그리고 막내조카의 친구 종운이에게 "있잖아, 이렇게 요리를 만드는 게 아이들에게 좋대. 너희들은 엄마가 없지만, 고모가 엄마인거야. 이름이 고모인 거지. 너희들 나가서 엄마가 없다고 기죽지마."

"고모, 나는 엄마가 없어서 기죽은적 한번도 없었어요" 막내조카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아이가 좀더 솔직해지길 바랐다. 엄마는 이렇게 큰 나에게도 소중한데... 아이는 고모인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큰소리를 친 것일 것이다.

엄마가 있었다면 부회장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은 어쩌면 솔직하지만,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이걸 어쩌나 속상했겠지만, 나도 엄마 대행 5년차이니 그냥 덤덤해지기로 했다.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주기로... 아들, 엄마가 없는 네가 혼자 힘으로 친구들이 선출하는 임원선거에 뽑힌 것만해도 고모는 자랑스러워.

엄마는 다음엔 종운이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매일 한번씩 종운이는 운다고 한다.

여자아이가 놀려도 울고, 누가 밀어서 넘어져도 우는 종운이는 맘이 아주 여린 아이다. 할머니께서는 종운이에게 그런 종운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종운아 그렇게 아이들이 괴롭혀서 힘들면 고모한테 전화해. 고모는 널 아들로 생각하니까 전화하면 금방 달려올 거야."

그 말을 들은 종운이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다가 마침내는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흐느껴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아이가 평상시에 얼마나 속상한 일이 많았을까 헤아리셨단다.

나는 종운이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나도 어린시절에 그렇게 서럽게 운적이 있다.

울다 지쳐 방바닥에 엎드려 잠든 사이 얼굴이 눈물로 땡겨서 깨어났던.

아이에게는 의외로 장애물이 많다.

캄캄한 밤도, 배고픔도, 친구들과의 싸움도, 공부도 모두 자신의 힘으로는 금방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서럽게 운다. 말로 표현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한다.

고모에게 전화하고 싶었는데 동전이 없다거나,

고모에게 전화해도 고모가 올 때쯤이면 놀리던 친구는 가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고모는 내 고모가 아니잖아 하고 혼자 납득해버렸을 수도 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는 기분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이 질문엔 나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올 댓 클래식 강의를 듣는 것 일수도 있고, 나무를 주워다가 여러 날 물감을 덧칠해서 하나의 쟁반을 만드는 일일 수도 있고, 이렇게 긴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주는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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