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트럭에서 토종사과를 샀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렸던 정물화는 늘 사과였다. 정물화의 로망은 피아노 위의 모과였다. 그러나 이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손가락 관절, 손목, 팔꿈치 관절을 아껴야 한다. 내가 관절을 아끼지 않을 때는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할 때이다. 오늘은 마요네즈로 버무린 삶은 달걀과 사과, 그리고 적색 양파를 올려 오픈 토스트를 만들었다. 이모에게 하나 가져다 드렸더니 어제 빵을 드셨다며 좋아하지 않는다.
2.
빵을 좋아하는 이모였는데 당뇨 때문에 더 이상 빵이 좋을 수는 없다. 그래도 가끔 조카의 배반이 입맛을 자극하지는 않을까? 너무 당뇨식만 먹다보면 입맛도 떨어지고 욕망도 떨어지고 삶이 무기력해질까 두렵다.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나이든 분들은 자주 찾아뵙지 않으면 취향과 기호가 변해가는 걸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좋았던 것을 찾지 않게 되고, 예전에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린다.
3.
노인만 그럴까?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사춘기에 접어 들면 좋았던 습관이 사라지고, 새롭게 변신을 거듭한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어쩌면 서로를 배신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성장하고, 때로는 퇴보하고, 또 때로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알던 사람과 새롭게 사귀는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