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작 마음 같은 것에

엄마표 김밥

by 꽃반지


"굳었으면 프라이팬에 구워서 먹어도 된다."


이른 아침부터 핸드폰으로 날아든 엄마의 메시지에 잠에서 깼다. 반쯤 감긴 눈으로 내용을 확인하니 절로 가벼운 한숨이 따라 나온다. 굳은 밥은 프라이팬에 데워먹으라니... 초등학생도 알법한 기초적인 상식이 자취 9년 차에 빛나는 내 나름의 경력을 사뿐히 지르밟는 순간이다. 다음날 아침에도, 그다음 날 아침에도 9년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엄마의 메시지는 계속 날아왔다.

"전자레인지 있다고 했제? 너무 굳었으면 살짝 돌려서 먹어라."

"딱딱하면 튀김옷을 입혀서 튀겨도 된다."

삼일 연속 날아온 메시지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는 굳은 밥, 정확히는 바로 굳은 김밥이다.



설렘의 시작은 김밥에서부터


내게 '설렘'과 '김밥'은 동의 이음어다. 유치원 소풍이나 초등학교 운동회, 수학여행... 그런 날들의 설렘은, 부엌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동그랗게 등을 말고 김밥을 싸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거니까. 일어나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없어도 절로 눈이 번쩍 떠지던 새벽, 차가운 공기 사이에 스민 달착지근한 냄새에 이불을 걷어차고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가면, 갓 지은 밥의 따끈한 온기와 새벽 어스름이 한데 버무려져 내 입안으로 쏙 들어왔다. 엄마 곁에 착 붙어 앉아 받아먹는 꽁다리의 맛은 또 어떻고! 꽁다리를 받아먹기 위해 엄마 곁에 말없이 앉아 김밥 싸는 손놀림을 지켜보곤 했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김발 위에 네모난 김을 편 뒤, 새큼한 촛물을 섞어 반질반질 빛나는 밥을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두께로 김 위에 솜씨 좋게 펴고, 그 위에 색색깔로 가지런히 준비된 계란, 시금치, 우엉, 단무지, 맛살을 순서대로 올린 뒤 휘리릭 말면 금세 김밥 한 줄이 탄생했다. 엄마가 손이 커서 당신이 만 김밥 굵기가 시중에 파는 김밥의 1.5배는 되는데도, 온갖 소를 꾹꾹 그러안고 있는 김밥이 터지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엄마는 언제부터 이렇게 김밥을 잘 쌌을까? 엄마 손 끝에서 빠른 속도로 김밥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마치 무슨 마술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침부터 꽁다리로 배를 가득 채웠으면서도 점심때 도시락을 열면 줄을 맞춰 예쁘게 담긴 김밥에 또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가 넉넉히 쌌으니 저녁에도 김밥을 먹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소풍이 끝난 후 달랑달랑 빈 도시락 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날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김밥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닌 줄 알면서도 툭하면 김밥을 해달라고 엄마를 졸랐다. 그 추운 수능날에도 도시락으로 기어이 엄마표 김밥을 싸갔고, 중국에서 유학할 때는 김밥을 못 먹어서 죽을 것 같다는 내 전화에 엄마가 항공우편으로 스무 줄을 말아 보낸 적도 있다.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가끔 고향에 내려가 먹는 음식은 말할 것도 없이 김밥이었다. 집에 가면 식탁 위에 산처럼 쌓여있는 김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에서 맛있는 음식 좀 먹었냐는 서울 친구들의 물음에 '내내 김밥만 먹었다'는 대답을 반복하다 보니, 혹시 부모님이 김밥집 하시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산 적도 여러 번이다.



후회의 시작도 김밥에서부터


뭐든 쉬이 쉬어버리는 뜨거운 여름이 슬그머니 물러나고 아침저녁으로 코끝이 쌀쌀해지면, 드디어 김밥의 계절이다. 엄마가 당일택배로 김밥을 보내기 시작한다. 이 계절엔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문 앞에서 김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날이 많았다. 허겁지겁 박스를 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볼이 미어터져라 김밥을 먹으면 비로소 행복감이 몰려왔다. 평소엔 연락도 잘 안 하면서, 김밥 택배를 받은 날엔 엄마에게 핸드폰 메신저로 치켜든 엄지손가락이나 하트 같은걸 보내곤 했다. 답장으로 활짝 웃는 소녀 얼굴을 받았다.


그 날은 여느 때보다 추운 월요일이었다. 엄마는 새벽부터 부리나케 김밥을 말아 당일배송이 되는 우체국을 향해 뛰었다. 접수시간을 놓치면 김밥을 그날 저녁에 받아볼 수 없기 때문에, 우체국이 집에서 꽤나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추위를 뚫고서 양손에 김밥과 밑반찬을 들고 열심히 뛰었을 거다. 그렇지만 설 연휴 기간 택배량 증가로 인해 하필 그날부터 당일배송이 불가해 엄마는 하는 수없이 일반 택배에 김밥을 보냈고, 다음날인 화요일 늦은 저녁에야 택배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원래도 굵은 엄마표 김밥이지만, 꼬박 이틀 가까이 지난 김밥은 밥알이 불어 더 굵어진 데다 추위 때문에 딱딱하게 얼어있었다. 잘 장전된 총처럼 시커먼 김밥이 택배 박스에 그득했다. 뭘 이렇게 많이 보냈느냐고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했지만 고작 열 줄이라는 답이 돌아온 게 전부. 겨울이긴 하지만 시간이 제법 지나 속에 든 재료도 곧 상할 것 같은 시큼한 냄새를 뿜었다. 도시락이라도 싸 볼까 싶어 칼을 대봤지만, 딱딱하게 굳은 밥알은 칼날이 닿자마자 금세 으스러졌다. 이걸 대체 어떻게 처리하나 싶어 짜증이 왈칵 솟았다. 버리자니 엄마가 어떤 수고로 보냈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보냈는지 뻔히 알면서 짜증 내는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화가 나서 그만 엄마에게 "앞으로 이런 거 보내지 마세요!"하고 말했다. 날카로운 말을 뱉으면서 후회했다. 후회하면서도,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내 말에 밥알처럼 내 마음도 으스러졌다.


혼자 책을 한번 써보겠다고 잘 다니던 회사까지 내려놓고 낑낑대고 있던 무렵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 위 노트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서도, 겨울의 차가운 칼바람이 내 마음을 에워 늘 춥고 외롭던 시간이었다. 내가 책을 쓴다고 하니 엄마가 이렇게 말도 없이 김밥을 보낸 것이다. 김밥을 보내 놓고는 행여 굳을까 봐, 굳어서 맛이 없을까 봐, 굳어서 못 먹을까 당신 혼자 염려해 이런저런 메시지를 나에게 계속 보낸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 고작 마음 같은 것을 보내보겠다고 엄마는 아침부터 왜 그렇게 바쁘고 서두르고 아쉬워하고 미안해했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작 마음 같은 것만 받으면 되지 상한 김밥이 뭐 그리 대수라고 그렇게 짜증을 내었나,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작 마음 같은 것에 어쩌자고 우리는 이렇게 평생을 휘둘리는 것일까.


아마도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누군가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하고 염려하는 것, 그 염려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평생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누르는 것, 염려의 무게를 응당 내 것이라 여기며 사는 것. 장차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겠다는 마음이 쉬이 나지 않는 것도 아마 평생 내 마음을 누를 그 무게 때문이겠지. 문득 엄마가 소를 그득 넣어 꾹꾹 눌러 만 김밥이 먹고 싶다. 엄마의 마음이 그득한 그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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