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삶과 죽음 사이는 반짝임 - 딸기

by 꽃반지


새해 첫날 외할머니 묘에 다녀왔다. 한번 가본다 가본다 하던 것이 돌아가신 지 3년이 다 되어서야 다녀오게 되었다. 비석에 새겨진 숫자를 쓸어보았다. 외할머니의 이름 아래 태어난 날, 그 아래 돌아가신 날이 나란히 쓰여있고, 그 밑에는 아들과 딸, 그들의 배우자 이름이 있었다. 내 이름은 쓰여있지 않지만 그녀가 이 땅에서 살아간 75년이라는 시간 중 나의 몫이 꽤나 크다는 걸 안다. 내가 태어나고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가고 또 서울에 취직을 한 뒤로 간간이 얼굴을 빼꼼 내밀던 날들에 그녀가 함께 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손주를 낳는 것도 보고 싶어 하셨다는 것도 안다. 결혼을 하게 될지 하지 않게 될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신부 측 하객 좌석의 맨 앞줄에는 외할머니가 앉아있을 거라는 걸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의심은 사실과 함께 사라져 버렸지만.


엄마가 큰 가방에서 상차림에 필요한 몇 가지를 꺼냈다. 늦은 밤에 엄마와 함께 시장에 들러 산 시루떡과 딸기, 서너 가지의 전과 약과, 초, 콩나물과 무를 넣고 끓인 탕국, 그것들을 담을 납작하고 얇은 스티로폼 접시,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왔다. 각자 음식 한 두 가지를 맡아 접시에 담았다. 엄마는 국과 전을 담고 남동생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초에 불을 붙이고 나는 날이 뭉툭한 과도로 배의 윗부분을 동그랗게 깎아냈다. 제사상에 낼 배를 깎으라고 했더니 예쁘게 8등분 해 접시에 담아낸 어느 며느리의 이야기가 떠올라 잠깐 웃었다. 아버지는 스티로폼 접시에 딸기를 예쁘게 쌓아 올리겠다며 공을 들였다. 정성껏 쌓았지만 접시를 옮기느라 금세 무너진 딸기가 나른한 햇살에 반짝거렸다. 비석 앞에 간단하게 음식을 차린 뒤 함께 나란히 서서 절을 두 번씩 하고 음식을 나눠먹었다. 볕을 잘 받은 땅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손이 가는 대로 집어먹었다. 먹기 좋게 조각낸 배가 입안에서 사각거렸다. 딸기는 혼자서 절반 이상을 먹었다. 엄마는 딸기가 달다며 비싸지만 잘 산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 외할머니도 우리 곁에 앉아서 우리처럼 음식을 먹고 있나. 엄마가 놔드린 쇠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는 한점 한점 맛보고 있나. 딸기 맛은 좀 보셨나. 오래전에도 딸기를 먹으면서 보이지 않는 이들의 안부를 궁금해 한 봄이 있었다.


봄이 오면 엄마는 내게만 딸기를 사준다. 조그만 한 팩에 만원이 훌쩍 넘어 선뜻 집기에 망설이는 엄마 마음을 아는데도, 이른 봄부터 늦은 봄까지 딸기를 몇 번이고 사준다. 흐르는 물에 딸기를 씻어 구멍이 송송 뚫린 채반에 받쳤다가 유리그릇이나 가장자리에 그림이 그려진 접시에 담아 내게 내주었다. 물에 씻은 딸기가 반짝거렸다. 이건 예뻐하는 사람에게 내주는 과일이라는 걸 알아서 먹기도 전에 마음이 다 달았다. 딸기를 먹을 때마다 알았다. 그 해 봄에도 엄마가 내준 딸기 접시를 앞에 놓고 딸기를 하나하나 집어 먹었다. 집어 먹으면서 생각했다. 그들에게도 예쁘게 접시에 담은 딸기를 내주는 사람이 있었겠지. 그들도 누군가가 몹시도 예뻐하는 사람들이었겠지. 물에 씻은 딸기는 이렇게 반짝거리는데 물에 씻은 죽음은 이렇게 슬프다. 많은 이가 바다에 빠져 끝내 나오지 못한 봄이었다. 그 뒤로는 딸기를 먹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안부를 그려보곤 했다. 그려보게 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나를 예뻐하는 마음을 앞에 두고는 누군가 예뻐하던 사람들, 이제는 그리움과 슬픔으로 남은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재간이 없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아빠도 죽으면 할머니 있는 데에 가야 되지 않겠나. 제사는 필요 없다. 미사나 한 대 넣으면 된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삶 다음에는 죽음이 오고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여태껏 살며 지켜본 바로 그랬다. 그러니 봄이면 내게 딸기를 내주며 말없이 나를 몹시 예뻐하던 그 마음이, 나중에는 살면서 나를 아프게 할 것이다. 딸기를 먹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없이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동생은 큰 소리를 냈다. 백 살도 넘게 살 건데 무슨 소리를 하세요. 손주도 보고 증손주도 보고 그래야지 무슨 소리를 해. 그 뒤로는 무슨 말이 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두 아무 말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기도 하다. 집에 가서 뭘 먹냐. 아침에 먹은 떡국이나 데워먹자 같은 말들.


예뻐하는 마음은 받을 때는 잘 모른다. 응당 받던 것이라 익숙하고 무감하다. 단 걸 잔뜩 집어먹으면 단 줄 모르게 되듯 그 마음이 듬뿍 달아서 단 줄 모른다. 추운 계절을 나다가 불현듯 무더운 여름날이 그립고, 무더운 여름을 나다가도 급작스레 어느 겨울밤이 그리운 것처럼, 나를 예뻐하는 그 마음도 그런 식으로 그리웠다. 외할머니가 내게 준 마음도 그랬다. 난데없이 튀어나와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나를 울게 했다. 발등에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걷게 했다. 외할머니 묘에 다녀와서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온 밤에 우연찮게 딸기를 선물 받았다. 같이 나눠 먹으려고 한 것인데 나에게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딸기를 집어 먹었다. 달았다.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사이에 뭔가를 새겨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반짝임일 테고, 물에 씻은 딸기처럼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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