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반지 Sep 10. 2019

#9. 익으면 투명해진다


몹시 추웠던 지난 1월 어느 밤, 발목까지 내려오는 시커먼 패딩잠바를 하나 걸치고는 집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뭐가 그리도 서러웠는지 몇 걸음 채 걷기도 전에 눈물샘이 터지는 바람에, 사연 있는 여자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걸었다. (그 꼴이 참 볼만했을 텐데...) 한겨울의 찬바람이 눈물을 닦아주려는 건지, 정신 차리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의도로 내 두 뺨을 마구 휘갈겼다. 얼굴에 부딪는 세찬 바람이 아파 눈물이 더 나왔다. 하필 발걸음이 향한 곳도 유흥업소와 단란주점과 모텔 같은 것들이 마구 뒤엉킨 번잡하고 요란한 동네였기에, 걸으면 좀 차분해질 줄 알았던 마음이 눈앞의 풍경처럼 한층 더 번잡하고 요란해졌다. 춥고 서럽고 짜증 나고 분했다. 발단은 이러했다.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겼다. 반년 전부터 말이 있었지만, 자신 없어 몇 번이나 손사래를 쳤던 일이다.

"저한테 책 작업을 맡기신다고요?"

"자네 글 쓰는 사람이라며."

"그래도 제가 쓴 글 정도는 보고 나서 결정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괜찮아, 괜찮아. 진행하지. 자네라면 내 믿어봄세."

"그래도 그게... 그게 아닌 거 같은데."


12월 31일까지 일하고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제안이었지만, 휴직까지 하며 수락한 이유는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어서였다. 내 안에 정말로 책 한 권을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이 있는지,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 새해부터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책상 앞에 앉았다. 어떻게 얻은 시간인데 싶어 모니터를 켜고 결연한 자세로 앉아  화면을 노려봤지만, 한 글자도 못 쓰는 날이 많았다. 괜히 머리만 북북 긁었다. 누군가가 나를 믿는다. 그것도 덜컥 믿는다. 근거 없는 믿음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마음이 타들어갔다. 유흥업소와 단란주점과 모텔을 지나 눈물이 마른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못하겠다. 나는 안 되겠다.



맛있는 죽의 비결


"죽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스님이 주걱으로 냄비를 휘휘 저으면서 물었다. 다들 고요했다.

"오래 젓는 거예요. 죽은 오래 저어줘야 합니다. 얼마나 저었으냐에 따라서 맛이 천지차이예요."


가끔 죽이 먹고 싶을 때가 있지만, 밖에서 사 먹기보단 집에서 이런저런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나도 죽을 직접 쑤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생각만 해도 귀찮다. 불 앞에 서서 팔 빠지게 냄비를 휘젓고 있을 시간에, 집 앞에 있는 죽집에서 한 그릇 후루룩 마시고 오는 게 나았다. 하염없이 죽을 젓는 스님의 손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스님, 이거 언제까지 저어야 해요?"

"쌀알이 투명해질 때까지. 익으면 투명해집니다."

스님이 잠깐 나를 보고 말을 이었다.

"뭐든 천천히 해야 나 자신을 놓치지 않지요."


자리로 돌아와 스님이 일러준 대로 불린 쌀과 물을 냄비에 넣고 한 방향으로 휘휘 저었다. 천천히 해야 나 자신을 놓치지 않는다는 그 말이 냄비 안에서 쌀알과 함께 맴돌았다. 오래 젓기보다는 빨리 결과를 내고 싶었다. 내가 이만한 실력이 있다는 걸 나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생각만큼 이야기가 술술 풀리지 않았고 글이 쭉쭉 써지지 않았다. 마음이 급했다. 나 자신을 완전히 놓쳤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밤, 그렇게나 눈물이 났던 거다.



반드시 투명해진다


휴직계를 낸 삼 개월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자주 한숨을 쉬었고, 가끔 웃었다. 책상 앞에서 겨울을 오롯이 다 보내고 봄을 맞았다.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만우절 아침, 거짓말처럼 회사로 다시 출근했다. 책 한 권 분량의 초고를 다 썼다.


그 초고를 가지고 출판사 두어 곳과 미팅을 했다. 출판사에 몸담고 있을 무렵, 마음속으로 늘 부러워했던 그 자리에 내가 앉아있었다. 바로 책이 나왔다면 더 좋았지만, 그땐 그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우두커니 책상 앞에 앉아 만들어낸 이야기에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나를 만나보기를 원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있었다.

 

늘 가지고 다니는 노트 한 귀퉁이에 이런 메모가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쓸 것, 꾸준할 것.' 알량한 사람이라 이 말을 지키지 못하는 때가 많지만, 지키려는 흉내를 낸다. 겨우내 작업했던 그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바깥의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침 초침도 아랑곳하지 않고 글을 쓴다. 가끔 눈을 들어 눈 앞의 창을 바라보면 내다 보이는 건 회색 담벼락뿐이다. 글이 막힐 때면 생각한다. 이걸 왜 하고 있지?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어쩌면 늦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내 또래의 소설가는 이미 대단한 문학상을 몇 차례나 받았고, 멋진 책을 몇 권씩 펴낸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나는 과연 단 한 권이나 제대로 가져볼 수 있을까. 세상에 이렇게 멋진 이야기가 많은데 내가 하는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기다리고 사랑해줄 사람들이 있을까.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지만, 세상 좀 살아본 나는 이제 안다. 시간과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세상 일에는 시간과 노력뿐 아니라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고, 내가 근처에 가본 적도 없는 것들을 어떤 이는 참 손쉽게 얻곤 한다는 걸. 그럴 때마다 애써 태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죽은 그런 면에서 참 정직하다. 시간과 노력의 집약체다.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태연히 삼키지 않는다. 약한 불에서 오래 저어야 하고, 익으면 마침내 투명해진다. 투명하다는 것,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의심하지 않고 믿을만하다는 사실은 몹시 부러운 것이다. 죽을 휘저을 때마다 가끔 생각한다. 나도 때가 되면 투명해졌으면 좋겠다고, 더 이상 나를 의심하지 않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누가 좀 일러줬으면 좋겠다고.


죽을 휘젓듯 하루하루를 휘젓는다. 죽을 휘젓는 일처럼 작고 사소한 일에 내 시간과 마음을 쏟아붓고 가만히 휘저으면서 투명해지기를 기다린다. 익으면 투명해진다, 반드시 투명해진다, 중얼거리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7. 냉정과 열정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