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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당신의 호박범벅

by 꽃반지
팥알을 넣은 호박범벅


좋아하는 한편, 좋아하지 않는 엄마의 특징이 있다. 엄마는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은 절대 만들지 않았다. '주부'라는 포지션 자체가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개인의 호불호는 빈번히 묵살되기 일쑤인데 적어도 음식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부분에서 엄마의 호불호는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음식에서나마 엄마가 '주부'가 아닌 호불호가 뚜렷한 개인임을 엿볼 수 있어 다행이고 고마웠다. 좀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사과를 깎으면 가장 좋은 부분을 자식인 내게 건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몫으로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물론 엄마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아쉽고 섭섭했던 이유는 엄마와 나의 입맛이 거울을 마주 보는 것처럼 결코 포개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매운 걸 좋아하고 잘 먹었는데, 나는 진라면 순한 맛도 매워서 헥헥 댔다. 엄마는 두유를 싫어해서 내게 단 한 번도 사주지 않았지만, 나는 두유를 몹시 좋아했다. 엄마가 곧잘 굽던 부추전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 중 하나였고(나는 어떤 전이든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밖에 여러 부분에서 모녀의 입맛은 평행선을 달렸지만 제일 슬펐던 것은,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호박범벅을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는 사실이었다. 두유야 엄마가 안 사줘도 밖에서 사 먹으면 그만이지만, 호박범벅만큼은 집에서 만든 것이 제맛이 났다. 그렇지만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나를 위해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긴 싫었기 때문에, 호박범벅이 먹고 싶으면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외할머니 집으로 갔다.



신비의 호박범벅

엄마가 호박범벅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이유는 외할머니 때문이다. 호박범벅은 아무런 죄가 없다. 다만 주야장천 호박범벅만 만들어댄 외할머니 때문에, 엄마의 유년은 당연히 호박범벅으로 범벅이 되었다(같은 의미에서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도 절대 입에 대지 않는 것이 감자다). 외할머니가 줄곧 호박범벅만 만들었던 이유는 별 다른 게 아니다. 요리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요리에 취미도, 재능도, 잘해보고 싶은 의지도 없었던 외할머니가 그나마 자신 있었던 요리가 호박범벅이었던 것. 그녀의 호박범벅은 다른 의미에서 자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겠다는 일념 때문인지 어쩐지 결혼을 하며 요리왕으로 다시 태어났고, 엄마의 남동생인 외삼촌은 어떤 음식이든 너그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입맛의 소유자가 되었다. 한 번은 외숙모가 신혼 때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뭘 만들든 너무 맛있다는 거야. 자꾸 맛있다고 하니까 그 말이 나중엔 의심되더라고"하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참고로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엄마가 김장을 외숙모에게 보내는데, 사촌동생들이 나에게 이런 카톡을 보낸다. "올해도 우리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해줘..." 사촌동생들의 표현을 빌리면, 외숙모가 만든 음식으로 실험을 당하는 느낌이라나...)


어쨌든 간에 외할머니의 호박범벅은, 외손녀인 내가 접한 인생 최초의 호박범벅이자 최고의 호박범벅이었다. 겨울이 되면 늘 외할머니가 해주는 호박범벅이 먹고 싶었다. 색은 누렇고 콩과 팥이 씹히고, 그밖에는 뭐가 들어갔는지 잘 알 수 없지만 달착지근한 맛이 혀끝에 닿았다가 목구멍으로 쑥 넘어가는, 들뜬 마음으로 표면에 숟가락을 푹 찔러 넣으면 끈적하게 달라붙는 그 호박범벅! 어른이 되어 외할머니를 보지 못할 일이 많았고, 추운 계절이면 괜히 호박범벅 파는 곳을 기웃거렸지만, 호박범벅을 파는 곳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겨우 찾아도 그 맛이 안 났다. 그야말로 누렇고 끈적하고 목구멍으로 쑥 넘어가는 미끄덩한 맛은 외할머니만 낼 수 있는 거였으니까.



무엇이었을까

호박 요리가 상에 많이 오르는 계절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호박범벅도 얼굴을 빼꼼 내민다. 엄마가 절대 해줄 리 없으니, 앞으로 호박범벅이 먹고 싶으면 내가 만들어야 한다. 물을 조금 잡고 호박을 푹푹 삶은 뒤, 팥과 콩 따위를 넣고 찹쌀가루를 풀어 되직하게 만들면 끝이다. 맛있다. 맛있는데 그 맛은 없다. 냄비 앞에 서서는, 내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호박범벅은 없어진 지 오래라고 가만히 인정할 뿐.


외할머니가 워낙 요리를 못했으니, 그녀가 해준 음식에 대한 기억을 곱씹게 될 거라곤 미처 생각 못했다. 명절에는 두께 1cm는 족히 넘는 고구마가 튀김옷과 결별한 채 입안에서 서걱거렸고, 가끔 외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어디에 젓가락을 가져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전기밥솥에서 갓 꺼낸 강된장과, 고춧가루를 잔뜩 뿌린 계란찜과 희한한 빵 같은 게 있었다. 그걸 좋아했다. 오래된 전기밥솥에서 엄청나게 부풀었다가 순식간에 쪼그라드는 계란찜을 보며, 같이 웃었던 작은 순간이 있다. 그녀의 독보적인 레시피로 만든 희한한 빵을 먹으며 "이건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하고 궁금해서 좁은 주방을 기웃거렸던 순간이 있다. 그녀가 싼 남편의 도시락을 구경하며 눈 내린 들판처럼 드넓게 펼쳐진 흰쌀밥 위에 붉은 우메보시가 정중앙에 딱 한알 박힌 것을 보고, 웃지도 못하고 아연실색한 적도 있다.


문득 궁금하다. 외할머니의 삶에는 호가 많았을까, 불호가 많았을까. 즐겨 만들던 호박범벅은 그녀가 좋아하던 것이었을까, 싫어하던 것이었을까. 한 남자의 아내이자 삼 남매의 엄마이자 호박범벅을 유난히 좋아하던 어떤 여자아이의 외할머니 말고, 그녀가 온전히 당신 자신이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호박범벅이 주부로서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다면, 어쩌면 그녀 자신도 꼴도 보기 싫을 음식이었다면, 호박범벅으로 그녀를 추억하는 나는 어쩐지 좀 미안할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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