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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15. 2016

텅 빈 거리에서

2016년 9월 14일 





서울이 텅 비었다. 가려던 식당도, 좋아하는 까페도 문을 닫았다. 상수역 인근을 어슬렁 거리다가 문을 연 작은 까페가 있어 들어가보니 헌책과 커피를 함께 판단다. 볼만한 책은 썩 없었지만 빼곡히 꽂힌 헌책이 왠지 기분 좋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헌책방' 다운 느낌이랄까. 헌책방의 많은 지분을 번듯하고 깔끔한 중고서점이 차지하면서 - 그것도 전국구로! - 본래의 헌책방도 자취를 감춘지 오래이다. 헌책방에서 파는 책과 중고서점에서 파는 책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걸까. 깔끔한 진열대? 훌륭한 검색엔진? 차곡차곡 쌓이는 포인트? 

 

헌 

[관형사] 오래되어 성하지 아니하고 낡은. 


국어사전에서 '헌'을 찾아보면 '오래되어 성하지 아니하고 낡은' 이라는 뜻을 가진다. 과연 '중고'와는 다르다. 모 온라인 서점에서 전국구로 운영하는 중고서점에선 '헌'책은 받아주지 않는다. '오래되어 성하지 아니하고 낡은' 등급에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말씀. 중고서점에 진열되기 위한 여러가지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들을 하나둘 통과하노라면 분명히 헌책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머릿속에 희미하던 예의 헌책방들은 이제 '책병원' 정도로 이름을 바꿔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오래되고 성하지 않고 낡아빠진, 한눈에 척 보기에도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 그런 책들의 무덤일 뿐일테니까. (그래도 무덤은 필요하다. 모든 것들에게. 심지어 후회와 안타까움에게도.)


낮은 천장을 머리에 이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맞은편과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면서 텅 빈 오후를 흘려보냈다. 갸날픈 까페 주인이 서비스로 커피를 내줬다. 마실 줄 모르지만 받아들고 고맙다고 말하며 '명절인데 영업하시냐' 하고 물었더니, 딱히 어디 갈데가 없다는 대답. 딱히 어디 갈데가 없는 이들의 많은 발걸음이 까페 문을 딸랑 디밀었다가 또 흩어진다. 어쩌면 '헌' 사람들이 무언가를 피해 작은 까페에 모여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옹기종기 비를 피하는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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