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흑흑..."
올 것이 왔다.
꿈에서 들린다고 생각했던 흐느끼는 여자 울음소리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도 여전히, 아니 꿈에서 멀어질수록 오히려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친구들이 말하던 게 이런 건가. 입시 스트레스 때문인지 친구들이 종종 가위눌린 이야기를 들려주던 참이었다. 자다가 눈을 떠보면 귀신이 내려다보고 있다거나, 머리채를 쥐고 흔든다거나... 문고리에 옷만 걸려도 뒤에서 누가 잡아채는 줄 알고 동네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쫄보 중의 쫄보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피어오르던 마음은 순도 백 퍼센트의 공포만은 아니었다. 눈을 뜰까 말까 고민하다 0.0001퍼센트의 호기심 때문에 결국 참지 못하고 감았던 눈을 슬쩍 떴다. 눈앞에 아무것도 없고 내 머리채도 무사하고... 그런데 울음소리는 계속 들린다. 몇 시 인지도 모를 컴컴한 한밤중, 살며시 몸을 일으켜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주방 쪽이었다.
맙소사.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흐느끼는 여자가 있었다. 엄마였다.
가끔 그날 일을 이야기하면 엄마는 그런 일이 있었냐며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수험생 딸에게 먹이겠다고 모처럼 큰 맘먹고 짐승의 뼈와 고기를 사다 고던 어느 주부가, 자기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냄비를 들여다보니 곰탕이 다 쫄아들어 그 안엔 아무것도 없더라는 그런 이야기다. 쫄아든 곰탕의 부피를 눈물로 대신할 요량이었나. 그깟 곰탕이 뭐라고 그렇게 울어 울기를. 하긴, 곰탕 한 그릇에 인생까지 내건 남자를 떠올리면, 그깟 곰탕이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는 데다 곰탕 쫄아들어 운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싶지만. 곰탕 때문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시간여행을 감내한 남자가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말에서 눈치챘겠지만, 물론 현실의 이야기는 아니고 소설 <곰탕> 이야기다.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현실이 아니라고도 못하겠다.
잊을 수 없는 맛은
맛이란 건 좋은 기억 같은 건가 보다. 잊을 수 없는 맛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인가 보다.
-<곰탕>
모든 가축이 멸종된 미래에는 당연히 곰탕이 없고, 그래서 곰탕이 뭔 줄도 모르는 중년의 남자는 식당에서 일한 지 오래다. 과거에 먹었던 곰탕 맛을 몹시 그리워하는 80대 노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어느 날, 남자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곰탕 끓이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시간 여행선을 타고 과거로 간다. 시간 여행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여행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그 명성에 걸맞게 남자와 함께 떠나온 사람의 대부분이 쇼크로 죽었을 정도로 대단한 강도였다. 용케 살아남은 남자는 도착하자마자 곧장 제일 유명하다는 곰탕집으로 가서 곰탕 한 숟갈을 후루룩 말아 넣었다. 사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맛이라면 어떻게든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였으니. 떠나오기 전의 계획대로 곰탕집에 취직한 남자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곰탕집 사장님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곰탕집 사장님의 유일한, 곰탕에 밥 말듯 싸가지 말아먹은 인성은 기본 옵션이고, 쌈박질하다 툭하면 유치장 끌려가고, 요란한 오토바이나 몰고 다니는 그 고등학생이 자신의 아빠라는 것. 오토바이 뒷좌석에 착 앉아있는 아빠의, 이름은 모르지만 분명 '이시발'임에 틀림없을 낯짝의 여자 친구는 엄마인 거고. 남자는 처음부터 고아였다. 사나 죽으나 매 한 가지라는 덤덤한 마음이라 위험한 여행인 줄 알면서도 두말없이 따랐다. 원래는 곰탕 만드는 기술이나 배워서 미래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빠도 엄마도 할아버지도 만나게 되니, 처음으로 인생에 욕심이 생긴다. 어느 밤엔 열아홉 살인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어 앉아 그 요란한 오토바이 한 대로 거리 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미래로 돌아가기 싫다. 계획에 없던 마음이었다. 남자처럼 과거에 살기 원하는 시간 여행자들은 많았고,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죽이러 온 미래의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의 목숨을 누군가 노린다.
심장에 새겨진다
이 소설을 쓴 김영탁 영화감독은 어머니가 끓여준 곰탕 한 그릇을 먹다가, 곰탕을 좋아했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시간여행이란 게 가능하다면 한 그릇 드시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인생 첫 소설을 쓰게 된다. 소설 속 남자가 처음 곰탕을 맛보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붙드는 맛'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곰탕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가 자꾸 마음을 붙들어 소설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여러 번 추천했다. 소설 <곰탕>을 떠올리며 구병모 작가의 소설인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를 함께 떠올렸다. 문신에 대한 이야기다.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두 이야기에서 길어온 문장을 나란히 놓고 생각한다. 문장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잊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잊을 수 없는 맛보다는 잊어버린 맛이 더 많겠지만, 그래도 끝끝내 잊을 수 없는 맛이라는 게 있다면, 맛이라는 건 결국 심장에 새겨지는 걸 수도 있겠다고. 피부에 새긴 흔적이 심장에도 새겨지는 것처럼, 잊은 것처럼 보이는 그 숱한 맛들은 언제까지고 우리의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다가 심장에 새겨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잊을 수 없는 맛을 떠올리면 가끔 살아있는 게 좋아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감사하고 즐겁다는 기분으로 별안간 부풀어 오르기도 하면서, 다시 찾아올 덤덤한 날들을 수놓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한밤중의 그 사건(?) 이후로 엄마가 뼈와 고기를 사다가 곰탕을 다시 끓였는지, 뭘 어쨌는지는 나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눈물로 퉁퉁 부은 그 밤의 그 얼굴은,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나만 기억하는 얼굴인데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혀끝이 텁텁해지는 것도 같다가 심장 쪽이 지그시 아픈 걸로 봐서, 내 심장에도 곰탕 한 그릇이 새겨졌나 보다 짐작할 뿐이다. 가끔 그날 밤을 떠올리면 혼자 웃다가 글썽인다. 심장에 새겨진 곰탕 때문에 글썽이는 게 나뿐만은 아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