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시작은 남들 다 하는 걸로 - 피아노

by 꽃반지


남자아이는 태권도, 여자아이는 피아노로 양분되던 시절이 있었다. 여자 색은 분홍이라는 암묵적인 룰 때문에 남자가 선뜻 분홍색을 못 입는 시절이기도 했다. 여섯 살 여자아이였던 나는 피아노에 대한 애호와는 관계없이 다짜고짜 엄마 손에 붙들려 피아노 학원에 갔다. 처음에 다닌 학원은 집 근처의 시온 피아노였는데, 생머리에 이마를 훤히 드러낸 선생님과 단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셔츠가 잘 어울렸던 선생님 한 명이 같이 운하던 곳이었다. 선생님들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내 나이쯤 됐겠거니 싶은 앳된 얼굴인데, 그때는 선생님 두 명이 음악의 신처럼 여겨졌다. 선생님과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서 선생님이 한번 치면 그걸 보고 따라 치고, 선생님이 내 연주의 틀린 곳을 지적해주면 다시 쳤다. "열 번 연습해."하고 포도의 신, 아니 음악의 신이 악보 빈 공간에 알이 딱 열개 달린 포도 한 송이 그려주고 다른 아이들에게 포도를 나눠주러 떠나면, 열개 포도알을 채우기 위해 쉬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다급하게 악보를 연주했다. 하얀 포도알 열개가 새카맣게 다 칠해져야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포도알을 색칠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지루한 반복 끝에 체르니 40번 교재를 겨우 마쳤다. 그 무렵 가까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는데 또다시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엄마의 등쌀 때문인지, 여자라면 으레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발맞추기 위한 꿋꿋한 의지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도레미 피아노에서는 교회를 다니던 원장님 덕분에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교회 반주곡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몇 년을 배웠는데도 여전히 하기 싫다는 마음이 강해 피아노에 맘을 붙이지 못했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피아노와 멀어졌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도레미 피아노 학원을 찾았지만, 역시 한번 떠난 맘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 두 달을 못 다니고 그만두었다.


내가 다시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남자 친구 때문이었다. 사귀던 남자 친구가 피아노를 3년째 배우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멋있었다(대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남자 선배 한 명도 취미가 피아노여서 괜히 더 멋져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기억했다가 피아노로 연주한 동영상을 보내줄 때는 감동에 벅차 눈물이 절로 나왔고(선배도 피아노 연주 영상을 보내주곤 했다), 남자 친구가 피아노 학원에 가야 한다고 데이트를 미룰 때면 섭섭하지도 않았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피아노라는데! 가끔 그가 내게 연주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할 때면 '그러니까 악기는 조기교육이지.' 하고 속으로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 가기 싫다는 내 등을 후드러패며 피아노 학원에 보낸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도 뜨거운 김처럼 덩달아 훅 올라왔다. 그때만 해도 나는 조기교육의 수혜자이니 내 앞에 건반만 갖다 주면 간단한 곡쯤이야 열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여 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그래도 한번 떠난 피아노 곁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 나의 곁으로 피아노가 왔다. 정확히는 피아노 학원이 내 곁으로 왔다. 출퇴근 때문에 장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 같은 생소한 동네에 안착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딱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은 대문 바로 옆에 붙어있는 피아노 학원이었다. 피아노나 다시 시작해볼까? 그렇지만 그 학원은 아이들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어 평일에만 문을 열었고, 원장님이 나와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해버리니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도통 배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학원을 알아볼 만큼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지극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그렇게 내 곁으로 온 피아노는 건반 한번 울릴 일 없이 이년을 꼬박 얌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한 어느 날 아침, 상사가 회의실로 나를 불렀고 테이블에는 내가 작성한 적 없는 사직서가 놓여있었다. 회사의 경영악화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정 붙일 곳 없는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늘 닫혀 있던 피아노 학원이 부릅뜬 눈처럼 훤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마음이 인 것도 아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며, "등록하러 왔는데요"하고 (작게) 외쳐버렸다. 몇몇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다 말고 나를 봤다. 선생님 나를 맞았다.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집 구하러 다닐 때마다 부동산 업자들에게 주야장천 귀 따갑게 듣던 저 질문이 그날처럼 달게 들릴 수가 없었다. 제가 말이죠, 음 그러니까 체르니도 좀 알고 소나티네도 좀 알고... 그때 마침 귓가를 휘감는 웅장한 멜로디.

"저... 캐논 치고 싶은데요."

선생님은 어릴 때 좀 쳤다는 나의 말과 어릴 때 실력이 아직 남아있을 거라는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캐논을 치고 싶다는 나의 확고한 의지를 종합해, 마침 편곡된 캐논 악보가 있다며 내게 건네주셨다.

"이 정도는 괜찮으시죠?"

악보를 받아 들고 정신없이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보며 선생님이 말없이 내 품에 안겨준 미취학 아동용 체르니 100번 교재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낮에 체르니 100번을 이불 위에 내팽개쳐놓고 벌렁 누워있으니 인생의 미취학자가 된 느낌이 잠시 들었다.


피아노를 다시 배우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악보를 볼 줄 모른다는 거였다. 악보 보는 법을 잊은 게 아니라 악보를 볼 줄 몰랐다. 악보를 못 보는데 어떻게 몇 년이나 피아노를 쳤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들 중에는 악보를 볼 줄 몰라 귀로 음을 외워 부른다거나, 기타 코드를 모르고 음을 외워 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피아노는 아니잖은가. 음 하나하나를 건반으로 짚진 못하는데, 어릴 때 쳤던 악보가 나오면 그걸 그대로 손가락이 쳤다.'도'는 모르지만 '도솔 미솔 도라 파라'는 곧잘 쳤다. 내 손가락이 이 어려운 걸 해냅니다... 가 아니라 완전 잘 못 배운 거였다. 포도송이를 다 채우고 집에 빨리 가기 위해 음이 아니라 형태를 외워버린 거였다. 건반 위의 내 손가락을 보고 피아노 선생님이 여백을 섞어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서 어릴 때 제대로 배워야 하는 거예요." 몇 년 동안 포도송이 빨리 색칠하기만 배워놓고 이제 와서 제대로 배우려니 좀이 쑤셨다. 선생님이 첫날 내게 건네준 캐논 악보가 체르니 100번 사이에 꽂혀있었다. 피아노 학원 안 간다고 날아오는 엄마의 매운맛 등짝 스매싱도 없고, 나의 리사이틀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들도 없는데, 왜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 악보를 제대로 보려니 손가락에 좀이 쑤시는 것 같고 어려웠다. 선생님이 "한 번에 되는 건 절대 없어요. 눈으로 악보 많이 보고 귀로도 많이 들으세요. 그게 다 공부예요."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결국 몇 달 버티지 못하고 몇 달간 해외여행을 간다는 거짓말을 하며 다시 피아노 곁을 떠났다. 동네에서 선생님을 마주칠까 봐 괜히 심장을 졸이면서. 흔히 배움에는 때가 있다고 하고, 특히 악기는 어릴 때 배울수록 좋다고 하는데 글쎄다. 억지로 배웠던 피아노가 하나도 좋지 않은 걸 보면 배움에는 때보다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어릴 때 그 마음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배울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아노 앞에 앉아 그거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 포도송이가 아무리 탐스럽게 열려도, 악보에 구멍이 날 정도로 까맣게 익어가도 무언가를 좋아하는마음은 억지로 칠할 수 없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마음은 이불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플란다스의 개>를 읽다 펑펑 쏟던 눈물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내겐 피아노에 나눠줄 마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