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남들이 뭐라건 말건 - 발레

by 꽃반지


우연히 집어 든 잡지에서 발레를 하는 회사원에 대한 토막 기사를 읽었다. 그때의 나는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인턴이었다. 발레를 하면 굳은 목도 펴지고 뻣뻣한 자세도 교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맘에 들었지만, 일단 슈즈를 신고 우아한 포즈를 잡고 있는 사진 속의 그녀가 무척 아름다웠다. 한마디로 끝내줬다. 그렇지만 발레라니.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서 무용 최하점을 받은 나 아닌가. 무용시간마다 고통스러워하던 나를 보며, 니는... 하고 말끝을 흐리던 무용 선생님의 얼굴이 사진 속 발레리나의 얼굴 위에 포개졌다. 잡지를 덮으며 발레에 대해 잠깐 일었던 호기심도 그렇게 덮어두었다. 잦은 야근으로 어깨가 자주 뭉치고 늘 몸이 찌뿌드드했다. 저녁으로 중식을 주로 시켜먹었는데 서비스로 오는 군만두를 얼마나 야무지게 먹었는지 그때의 내 별명은 '만두지현'이었다. 날이 갈수록 얼굴도 배도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던 어느 날, 만두를 잔뜩 먹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내 배를 내려다보다 문득 잡지 속 발레리나가 생각났다. 개미 같은 허리와 성냥개비 같은 다리! 검색해보니 마침 저녁 수업을 하는 학원이 있었다. 잽싸게 퇴근하면 얼추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 내에서 유일한 동갑이라 마음 터놓던 동료에게 은근히 말을 꺼냈다.

-내 발레 배우까?

-뭐?

-발레 배우면 이상하겠나. 오늘 퇴근하고 한번 가볼라고.

-혼자 가기 그러면 같이 가주께.

덥석 등록할 수 없어 학원에 문의를 했더니 저녁 수업을 참관할 수 있다고 했다. 어둑한 저녁 공기를 뚫고 학원에 도착하니 남자는 수강 목적이 아니면 참관할 수 없다고 해서 키 19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의 동료는 학원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나는 쭈뼛거리는 마음으로 홀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소파에 앉았다. 가녀린 몸에 하늘하늘한 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쭉쭉 찢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봤다.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 조금 지켜보다 심란한 기분으로 학원을 나왔고 나를 기다리던 동료가 물었다. 어떻드노? 내랑은 좀 아인거 긋다. 처음 만난 순간, 분명히 나랑은 안 맞다고 생각했던 발레를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 문을 두드렸다. 처음으로 슈즈를 사고, 스타킹을 사고, 레오타드를 사고, 스커트를 구입했다. 엄마와 목욕탕도 함께 가지 않을 정도로 남들 앞에 몸을 드러내는 걸 쑥스러워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 좁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게 무척 힘들었다. 속옷을 입고 입는 것인지 벗고 입는 것인지도 알 수 없어서 옆의 사람들을 곁눈질했다. 어깨를 바르게 펴고 배에 힘을 주고 엉덩이는 두쪽을 딱 붙여 납작하게 만들고 허벅지는 바깥쪽으로 돌리고 양발은 사이를 벌려 새끼손가락까지 고르게 바닥에 닿게 하는 게 기본자세였다(돈 주고 자괴감을 느끼기엔 발레만한 게 없다). 이렇게 서 있는 것도 힘든데 팔 자세도 따로 있었다. 팔꿈치가 바닥을 향해선 안되고 항상 바깥쪽을 향해야 하며 몸과 팔 사이에는 계란 한 알 크기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팔과 손은 부드럽게 한 선으로 이어져야 하며 손가락은 바르게 붙이고 엄지는 바깥으로 튀어나와서는 안됐다. 남들은 곧잘 따라 하는데 나만 혼자 버벅거렸다. 백조 사이에 낀 미운 오리 새끼가 따로 없었다. 내 몸에 달린 건데도 걸핏하면 오른쪽 왼쪽을 틀렸고, 뇌에서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몸은 나무인형처럼 삐걱삐걱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발레고 뭐고 집에 돌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유일하게 흥미를 붙인 동작이 있었다. 발레 동작이 아니고 발레 시작 전 몸을 푸는 스트레칭이었다. 스트레칭을 하며 다리를 찢었는데 내 몸이 유연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몸을 쓸 줄 모르는 것뿐이지 유연함이 없는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발레 실력은 고만고만했지만 다리가 점점 더 잘 찢어져서(집에서 찢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날마다 조금씩 뭔가가 되어간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어제보다 다리가 고작 1cm 정도 더 찢어진다는, 그런 류의 작은 성취감도 참 절박했다. 이런 거 하려고 회사에 온 거 아닌데 싶을 정도로 많고 많은 잡다한 일들이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사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체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늘 혼란했고, 혼란함 속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다 보면 슬퍼졌다. 발레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뭐라도 붙들고 싶어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6개월 인턴 후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던 회사는 인턴 기간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인턴으로 일할 것을 요구했고, 이럴 바엔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며 작은 잡지사 몇 군데를 전전하다 어느 날 우연히 뒤적거린 메일함에서 대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출판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어떻게든 나의 사회적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던 나는 입사지원서를 내고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본지 일주일 뒤에 합격 전화를 받았고(나중에 알고 보니 합격자가 하루 만에 퇴사해버려 나를 뽑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아무 예고도 없이 캐리어 하나를 끌고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생활은 혹독했다. 뭘 알아보고 준비하고 온 게 아니었다. 일이 서툰 건 물론, 관계를 맺는 것도 처세에도 서툴렀다. 낮은 자존감을 감추려 늘 끙끙 애를 썼다(그때의 나를 넉넉한 품으로 받아준 그 무렵의 회사 사람들이 참 고맙다. 뒤늦게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퇴근을 하면 작은 방에 가방을 부려놓고 집 근처 놀이터 시소 위에 앉아 울었다. 나는 여기 왜 왔지? 나는 뭘 하고 있지?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거지? 퇴근을 하던 어느 날 발레 학원을 봤다. 회사 근처에 발레 학원이 있었나? 조심스럽게 계단참을 올라 학원 문을 열었더니 그 당시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 하나가 다니고 있다는 홍보 문구가 걸려있었다. 쫄았다. 학원비가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도 꽤 비싼 편이었는데,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뭐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으로 비싸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덥석 등록했다. 서울에서의 발레는 대구와는 달랐다. 사람들이 더 잘한다거나 기술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는데, 일단 제멋대로였다. 대구에서는 늘 사람들이 스타킹에 레오타드를 입고 스커트를 둘렀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그렇게 입었다(내가 다닌 학원의 분위기였을 수도 있다. 지역색을 말하려는 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복장이 다들 자유분방했다. 스타킹 위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도 있었고,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정식 복장이 아닌데도 다들 멋있었고 나는 그게 좀 충격이었다. 그리고 남자들이 있었다. TV에서 보는 것처럼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예쁜 남자들도 있었지만, 등산복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우람한 종아리 근육을 자랑하는 아저씨와 청년들이 간혹 섞였다. 처음에는 내 몸을 가리느라, 또 내 눈을 어디에 둬야 될지 몰라 민망해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금방 적응됐다. 출판사 선배가 내게 했던 말을 아주 조금 이해했다. 기껏해야 이십 대 중반이면서 내 인생은 끝난 것 같다고,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고, 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걸핏하면 토로하던 내게 선배는 이런 말을 해줬다. "넌 홍대를 다녔어야 돼. 애들이 얼마나 막 나가는지 네가 겪어 봐야 그런 말을 안 하는 건데" (선배는 홍대 학생회장을 지냈던 사람이었다). 엄격한 집안 분위기와 내가 속한 세계의 보수적인 공기에서 나는 분명 실패자였다. 유학을 갔다 와서 조기졸업을 하고 전공을 살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목표였지만, 심한 우울증에 걸린 데다 집안 사정으로 취업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낙인찍어버렸다. 내 약한 마음이 다 망친 거라고, 오로지 내가 못나서 이렇게 된 거라고. 이제 남은 인생은 실패를 수리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고. 발레복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생각들로부터 나를 조금 자유롭게 해 줬다. 내게 없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기가 그곳의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그들과 같은 공간에 머물며 그들 주위를 머무는 공기를 잠깐 빌려 썼다. 감기 몸살에도 턴을 하러 갈 정도로 열을 올렸다. 시간이 흘러 수강생들을 모아 공연을 올린다는 공고를 봤을 때, 공연비며 무대 의상비가 비싸다는 핑계로 다음에 참가하겠다며 빠졌다. 그렇지만 무대에 올라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까 봐, 혹여나 실수할까 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까 봐 두려워서 뒷걸음쳤을 뿐이다. 나보다 훨씬 늦게 발레를 시작한 사람들이 공연을 위해 홀 한구석에 모여 동작을 맞추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나는 발레를 그만뒀다.


그 뒤로 몇 년이나 시간이 흐르고 때론 자의로, 때론 타의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 나는 다시 발레 학원을 기웃거리게 됐다. 분명히 다시 자괴감에 빠질 걸 아는데 발레를 하고 싶었다. 음악에 맞춰서 발을 뻗고 턴을 하는 춤추는 나를 보고 싶었다. 퇴근 후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발레를 하고 싶단 마음을 먹고도 일이년을 흘려보내고, 마침내 잠깐 회사를 쉬게 되는 기간이 오면서 짬이 났다. 아침 열 시 반, 슈즈를 신고 다시 거울 앞에 섰다. 발레를 다시 시작한다는 사실 자체도 좋았지만 환갑이 넘은 아주머니, 머리에 두건을 두른 아저씨와 함께 맞는 아침 공기가 좋았다. 스커트 위로는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오고 거듭 연습해도 동작이 몸에 익지 않아 끙끙 애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내가 좋았다. 하루를 발레로 열 수 있던 귀한 시간은 아침처럼 금세 사라졌고, 나는 다시 출근길에 올랐다. 그 뒤로 또 일 년이 훌쩍 흘러서야 퇴근 후에 다시 발레 학원을 기웃거릴 수 있게 됐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알아보기가 힘들 텐데도 선생님이 "오랜만에 오셨네요"하고 웃어주셨다. 옷 갈아입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바지 안에 살구색 스타킹을 입고 달려간 학원 입구에는 나처럼 퇴근 후에 달려와 급하게 벗어놓은 사람들의 신발이 소복하다. 그들이 춤추는 모습도 물론 멋있지만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을 볼 때마다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과 잠깐이라도 같은 공간에 머물 수 있어서 다행스럽고 한없이 기쁘다. 나의 목표는 꾸준히 배워서 공연에 오르는 것이다. 아직도 기초반이지만 못하면 못하는 대로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춤추고 싶다. 이제는 뒷걸음질 치지 않고 싶다. 처음 발레 학원을 등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다리가 쭉쭉 찢어진다는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끼던 때였다.

-내 발레 배우까?
-발레에? 그런 건 나이 어릴 때나 하는 거지 니는 몸 다 굳어서 안된다

-맞다 니 말이 맞지

나는 겉으로는 동생의 말에 수긍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생각했다. 아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상관없구나. 지금도 여전히 남의 말을 품에 안고 살지만 그때마다 스커트를 예쁘게 차려입은 환갑 넘은 아주머니, 몸에 쫙 달라붙는 무용복을 입고 멋지게 턴을 도는 아저씨를 떠올린다. 남들이 뭐 라건 뭐. 살아가는데 아무 필요도 없는 아라베스크, 바뜨망, 파드샤, 샤세를 좀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어깨를 바로 펴고 배에 힘을 주고 허벅지를 바깥으로 돌리고 양발을 부채꼴로 편다. 거울 속의 나는 좀 멋있어 보인다. 지현 씨, 발 틀렸어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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