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대단한 것들이 그렇듯이, 또한 많은 사소한 것들이 그렇듯이 나의 여행도 아주 작은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2년 전쯤이었나, 혼자 TV를 보며 저녁을 먹다가 아름다운 곳을 보았다. 운남성이라고 했다. 다시 시간이 지나 어느 책에서 우연히 구름이 드리운 운남성의 사진 한 장을 보았을 때 언젠가 여기를 가야겠다, 하고 마음에 적어 두었다. 꼬박 잊지 않고 있다가 내가 일을 해서 번 돈과, 일을 해서 얻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데리고 운남성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돌아와서 많은 것들이 금세 휘발되었지만 끝까지 마음에 붙어 있었던, 호수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 이해의 낮
운남성의 따리에는 아주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이해’라는, 얼굴만큼이나 이름도 무척 아름다운 호수다. 리장에서 버스를 타고 따리에 도착한 건 정오. 숙소에 짐을 푸는데 열 살짜리 남자아이가 대뜸 나를 옥상으로 잡아끌었다.
“누나, 이해가 왜 이해인 줄 알아?”
“글쎄?”
“잘 봐. 귀 모양처럼 생겨서 이해라고 하는 거야.”
“여기서 멀어?”
“아니, 금세 갈 수 있어. 어제 엄마랑 아빠랑 가봤어.”
옥상에서 내다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아른거리는 호수가 참 예뻤다. 그래, 저기를 가봐야겠구나. 목적도, 계획도 없는 여행이다. 숙소 맞은편의 작은 카페에서 밥을 먹고 알록달록한 성조기가 그려진 스쿠터를 하나 빌렸다. 중국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이 ‘청춘 남녀 만남의 장’ 이라고 했다. 다들 마음에 부푼 하트 하나쯤은 안고 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차림에 신경을 쓴 여자들이 유난했고, 거리는 알록달록한 스쿠터로 빽빽했다. TV에서 본 고즈넉한 정취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쨌거나 나도 ‘청춘 남녀 스쿠터족’에 합류했다.
꼬마아이의 말대로 이해는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호수가 남북으로 길쭉하게 드리워져 있는데, 호숫가를 따라 달리는 풍경이 제법 근사하다. 운남성답게 사방에는 새하얗고 풍성한 구름이 어깨를 지그시 누를 정도로 낮게 깔려있고, 그 덕분에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온다. 분명 100미터 앞은 해가 반짝 빛나는데 내 머리위에는 비가 퍼붓는 것이다. 이해는 정말 예뻤다. 스쿠터가 많은 커플들을 맺어줬는지, 이해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신랑 신부도 많았다. 풍경들을 구경하며 호숫가를 따라 신나게 달리는데 또 문득 비가 온다. 이번엔 큰 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있는 길가의 작은 노점에서 비를 피했다. 할아버지는 작은 라디오로 ‘쭈아아아아앙~ 쭈아쭈아’ 정도로 들리는, 알 수 없는 노래를 줄곧 듣고 있었고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비만 피하기 머쓱해서 할머니가 늘어놓은 작은 물건들을 구경했다. 복숭아씨로 만든 작은 팔찌와 때가 새까맣게 탄 천 가방, 태국에서도 분명히 보았던 코끼리 모양의 열쇠고리 따위가 있었다. 물건들 앞에 열심히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짜오 짜오!”
할아버지를 한번 쳐다보고, 곧 이어 할아버지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있었다. 그것도 두 개나. 와아. 무지개를 본 감흥보다는 아주아주 오랜 시간동안 무지개를 잊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주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나는 한동안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복숭아씨로 만든 팔찌를 샀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니 무지개가 없어졌다. 나는 다시 할아버지를 한번 쳐다보았고,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했다. 짜오 짜오. 유치하지만 복숭아씨로 만든 팔찌 안에 무지개가 들어왔다고 믿는다.
* 이해의 밤
운남성에서 유명하다는 국수를 한 그릇 먹고, 오렌지색의 해가 뚝뚝 떨어지는 호숫가를 달리는 기분은 얼마나 상쾌할까. 그러나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쿠터가 멈췄다. 분명히 빌릴 때는 ‘만땅!’ 이라고 했거늘, 충전식 스쿠터라 배터리가 다 된 것이다. 맙소사. 오렌지색의 나의 낭만이 하늘과 함께 잿빛으로 변했다. 금세 밤이 되었다. 중국, 밤, 그것도 운남성의 밤은 확실히 무서웠다. 나와 얼마간을 함께 했던 ‘청춘 남녀 스쿠터족’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고, 나는 작은 도로 위에서 스쿠터와 함께 멈춰있었다. 스쿠터를 빌려준 가게에 ‘데리러 와 달라’는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을 했으나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얼마 줄껀데?’ 인명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던가! 처음에는 화를 냈으나 나중에는 흥정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금액이 영 마뜩찮았던지 수화기 너머에서는 ‘이미 밤이 늦었으니 난 좀 피곤하다’라는 말로 흥정을 끝내버렸다. 시커먼 와중에 불이 켜진 작은 가게가 있어 얼마간이라도 충전을 할 수 있을까싶어 스쿠터를 질질 끌고 갔다. 가게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아저씨와 아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테이블에 완두콩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까고 있었고, 아가씨는 나에게 따뜻한 차를 내줬다. 충전을 하는 동안 아저씨는 한편으론 열심히 콩을 까면서, 한편으론 열심히 나에게 질문을 했다.
“중국 교육의 문제가 뭔 줄 아느냐?”
“한국 경제가 왜 그렇게 발전한줄 아느냐?”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몹시 죄송하지만, 나는 스쿠터를 빌려준 여자를 박살내겠다는 증오와 더불어 영원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범벅된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의 교육과 한국의 경제에 대해서 도무지 대답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원래부터 나의 대답은 필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차만 연거푸 마시는 내게 답을 다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를 못 믿겠네. 이걸 내가 다 까다니!” 아저씨가 콩을 다 까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충전이 마뜩찮아서 나는 결국 시커먼 도로 위의 신세가 되었다. 스쿠터 가게 주인은 전화를 더는 받지 않았다. 이미 밤 열두시가 넘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그 때 달리 믿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늘의 별을 보면서 기도를 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히치하이킹을, 중국 운남성 깡촌에서 정말 온몸을 바쳐 열심히 했다. 가끔 나를 조롱하는 젊은 청년들이 ‘이히히힝’ 흡사 말 같은 소리를 내면서 쌩 지나갔다. 나는 차가 지나갈 때마다 춤을 추고,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는 추위와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하늘에 그 많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뒤, 나를 쌩 지나치던 트럭 한 대가 다시 뒤로 와서 나를 태웠다. 뻔히 보고 있는 나도 믿을 수 없었다. 그날 밤은 별이 너무 많이 쏟아져서 분명히 어깨가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