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推敲) -/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by 어진아빠





소설가 김훈의 장편 소설 『칼의 노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합니다.

작가는 소설 첫 문장에서 ‘꽃이’로 할지 ‘꽃은’으로 할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고 합니다.

'꽃은 피었다'라고 하면 주관적인 내면의 세계가 되는 것이고,

'꽃이 피었다'라고 하면 객관적인 사물을 지칭하는 세계가 되는 것이기에

조사의 사용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문장을 언급하며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퇴고(推敲 : 밀 퇴, 두드릴 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밀고 두드린다’는 뜻으로 시문을 지을 때 글자나 구를 정성껏 다듬고 고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당시기사(唐詩紀事)』 「가도(賈島)」 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가도(賈島)가 어느 날 노새를 타고 길을 가는 중에 ‘새는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라는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구에서 ‘두드린다(敲)’는 말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민다(推)’는 표현이 나은 것 같기도 하여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켜라! 무례하게 어느 안전이라고 길을 막느냐?” 가도가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보니 당시 최고의 문장가이면서 유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경윤(京尹) 벼슬의 한유(韓愈)가 행차하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가도는 자신이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설명했습니다. 한유는 말을 세워놓고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가도에게 ‘敲’ 자가 좋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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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장가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글을 지으면 벽에 걸어놓고 틈나는 대로 고쳐 썼다고 합니다. 어떤 글은 수많은 퇴고의 과정을 거쳐 초고에서 쓴 글자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 ~ 1961)는 “모든 초고(草稿 : 거칠 초, 원고 고)는 쓰레기다”라는 말로 고쳐 쓰기를 역설했습니다. 그는 노벨상 수상작인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고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는 지루하고 고통스런 퇴고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온몸으로 밀어낸 글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그리고 제목 앞에 졸고(拙稿 : 못날 졸, 원고 고)라는 말을 붙입니다. 졸고는 자신의 작품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인데 졸저(拙著 : 지을 저)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허균의 문집 이름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인데 성소(惺所)는 허균의 호이고, ‘覆’는 ‘덮다’, ‘瓿’는 ‘항아리’, ‘단지’를 의미하며, ‘藁’는 원고라는 뜻입니다. ‘항아리를 덮는 데나 쓰는 원고’라는 의미로 자신의 글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입니다.





손가락을 자른다고?


photo-1493851449704-07ee5725d916.jpg?type=w1 © johanneswre, 출처 Unsplash


생활기록부를 쓰고 있습니다. 초점 어린 눈으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 손가락 움직임이 없습니다. 이럴 때면 이른 나이에 문명(文名)을 날렸던 당나라의 왕발(王勃, 650-676)이 떠오릅니다. 「등왕각서(滕王閣序)」와 같은 그의 대표작은 지금까지 명작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글을 지을 때 처음부터 억지로 시상을 짜내지도 않고, 그저 먹을 갈아 놓고 종이와 붓을 갖춰 놓은 다음 술을 몇 모금 마시기도 하고, 드러누워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면 즉시 침상에서 내려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단숨에 글을 써내려갔는데, 그렇게 써 놓은 글은 한 자도 고칠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마치 배 속에 원고를 담고 무르익게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서 유래하여 복고(腹稿 : 배 복, 원고 고) 또는 묵고(默稿 : 침묵할 묵)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생기부 점검하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옛날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책을 찍어낼 때 실수로 글자를 잘못 판각하면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유래한 표현이 수교(讎校) : 원수 수) 또는 구교(仇校 : 원수 구)입니다. 校(교)는 ‘학교’ 외에 ‘바로잡다’라는 뜻이 있는데, 교정을 볼 때 원수를 찾듯 원고를 대조하여 바로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원수 찾듯 보다 보니 곳곳에 원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목과 작가를 바꿔쓰기 한 것들도 보입니다. 예전 가수 김흥국씨가 한 방송에서 MC로 활약할 때 ‘거미’라는 가수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를 소개하려고 하다가 “‘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라는 식으로 말해서 웃음을 준 일화가 떠오릅니다. 점검해야 할 수십 명의 생기부들을 보니 지금 웃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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