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쓸개를 핥고, 누군가는 고름을 핥다.

by 어진아빠

복수혈전은 이경규가 기획, 각본은 물론 주연에 연출까지 맡아 화제가 되었던 액션 영화입니다. 당시 이경규는 쿵후 4단의 상당한 무술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지만, 개그맨으로서의 강한 이미지는 영화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방해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극 중 동생이 죽는 장면에서 이경규가 오열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가장 비극적인 장면에서조차 웃기는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관중들이 폭소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결국 복수혈전은 망한 영화가 되었고 이후 개그소재로 사용되면서 이경규의 최대 흑역사로 남게 됩니다.


오늘은 복수와 관련된 어휘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와신상담(臥薪嘗膽 : 누울 와, 섶나무 신, 맛볼 상, 쓸개 담)입니다. 직역하면 땔나무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보다는 뜻인데, ‘큰 뜻을 이루고자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 낸다’라는 속뜻이 담겨 있습니다.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춘추시대 말기 오나라 왕 합려와 월나라 왕 구천이 크게 싸움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크게 다친 오나라 왕 합려는 아들 부차에게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게 됩니다. 왕의 자리에 오른 부차는 복수를 맹세하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편한 잠자리 대신 딱딱한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잤으며 궁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아버지의 유언을 크게 외치도록 했습니다. 부차가 복수를 위해 군사들을 훈련시킨 지 3년 만에 때가 왔는데 이러한 계획을 안 구천은 먼저 공격하였다가 오히려 크게 패했고 결국 회계산에서 포위당한 후 부차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이때 중신 오자서가 구천을 죽여 후환을 남기지 말라고 부차에게 진언하지만, 부차는 월나라로부터 뇌물을 받은 백비의 의견대로 구천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합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구천은 치욕을 씻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스스로 몸을 고단하게 합니다. 그리고 항상 쓸개를 곁에 매달아 두고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맛을 보며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은밀하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눈치챈 오나라의 오자서는 부차에게 구천을 경계하도록 간언 했으나 부차는 구천의 일은 잊은 채 오로지 중원(中原)으로 진출하는 데만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오자서는 부차가 제나라로 출병하는 것을 끝까지 만류하다가 결국 명을 받고 자살하게 됩니다. 오자서는 죽으면서 자신의 눈을 오나라의 동쪽 문에 매달아 놓아 월나라 군사가 쳐들어 오는 것을 지켜보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회계의 치욕을 잊지 않았던 구천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쳐들어갔고 이십여 년 만에 오나라 도읍을 점령하고 부차를 굴복시켰습니다. 부차는 용동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제의를 거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사랑의 복수


복수는 피를 튀길 만큼 생사를 가리지 아니하는 맹렬한 싸움입니다. 그래서 혈전(血戰 : 피 혈, 싸울 전)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혈전이 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게 되고 그 복수는 또 다른 아픔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그런 복수를 복수가 아닌 용서로 용서를 넘어 사랑으로 되돌려준 이가 있습니다. 바로 손양원(1902-1950) 목사입니다.

손양원 목사는 1938년 평양 신학교를 졸업한 뒤 전도사가 된 후 전남 여수에 있는 애양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치료-수용 시설이기도 했던)에서 사역과 봉사를 하면서 중증 나환자를 돌보게 되는데, 이때 상처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낼 정도로 헌신했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는 나환자를 대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병으로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얼굴이 무섭게 변해 있으니 대하기가 힘듭니다. 무섭지 않게 하시옵소서.’, ‘환자들의 살이 썩으니 냄새가 심합니다. 냄새를 못 느끼게 하시옵소서’, ‘처음 나병 환자들을 위한 목회를 시작했으니 나병 환자들을 위한 목회로 끝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손양원.jpeg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 사진



그러던 중 1948년 여순사건 때 좌익청년들에 의해 두 아들을 잃게 되는 큰 아픔을 겪게 됩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된 후 두 아들을 죽인 좌익 청년은 잡히게 되고 재판에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손목사는 오히려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위해 구명운동을 벌입니다. 손목사의 노력 끝에 청년은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고 손목사는 그를 데려와 손재선이라는 이름으로 양아들로 삼습니다. 당시 손목사는 분노하는 어린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동희야(딸)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아라.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사랑을 하라 했으니 아들을 삼아야 되지 않겠느냐?’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주변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를 위해 배를 준비하고, 피난을 떠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만류하는 주변 사람들을 뿌리치고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하다 결국 공산군에 의해 처형되어 순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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