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만난 나의 구원자

금발의 강태공이 던진 낚싯대

by 익은벼

심해가 흥미로운 것은 그 바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 또한 가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갈망과 호기심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의 내면은 과연 어떨까.


호기롭게 시작했던 글쓰기가 겨우 두어 달만에 꼬리를 내린 이유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심해나 미지의 세계는 나와 분리된 영역이라 탐험에 대한 결정권 또한 주도적이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나'의 세계는 달랐다. 반드시 내가 주체가 되어 직접 해야 하는 일이었다.

더 이상 투명하지 않은 그 밑바닥에 무엇이 있을지,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없을까 봐 겁이 났다. 빛 한 줌 소리 한 가닥조차 없이 텅 비어 있을까 봐 나는 그것을 들여다보기를 망설였다.





얼마 전 산책을 하다 드넓은 잔디밭에 동그마니 자리한 연못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소년을 보았다.

강이나 호수도 아닌 웅덩이 같은 연못 앞에서 맨발로 찌를 드리우고 있던 소년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이질적이었다.

유유히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을 병품 삼아 내게는 그저 흙탕물로 보이는 연못 앞에서 강태공이 된 소년의 모습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물고기가 잡힐 거라는 생각으로 낚싯대를 잡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재미로 줄을 던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년은 그 작고 탁한 웅덩이에 자신의 낚싯줄을 던졌다는 것이다.




나는 대체 무엇을 주저하고 있었을까.


깊을지 얕을지 알 수 없는 나의 내면에 자신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깊을 줄 알고 살아왔는데 너무나 얕고 보잘것없는 나의 내면을 직접 조우할까 봐 겁이 나서였을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나는 실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세상은 여전히 차갑게 흘러갔고, 그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이들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진작 사회를 벗어나 가정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나름의 안정을 찾고 역할을 다하며 살았지만 훌쩍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 내게 남은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함이었다.

쓸모를 잃어버린 자리에 남아 있는 여백은 그 형체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여백의 덩어리가 커지고 커져 나를 짓누를 때면 나는 그것을 외면한 채 도망쳤다.

가늠할 수 없는 부피의 견고함이 지나간 자리에는 한없이 초라한 껍데기만 남았다.


살기 위해 나는 껍데기로 남아있기를 선택했다. 포장지를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마주해야 할 진짜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어떤 모습이라도 받아들이고 품어줄 용기 또한 나지 않았다.

보잘것없고 빈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도망치고 외면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피비린내를 견딜 수 없을 때쯤 잡은 지푸라기는 결국 '나'였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얕으면 얕은 대로, 속을 들키지 않으려 휘황 찬란 덮여 있던 포장지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별 볼일 없는 나일지라도 나를 구원하는 존재는 결국 '나'인 것을.


두려움이 할퀴고 간 자리에 남아있던 허무함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정신없이 도망치고 피하기는 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내가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남아 있었다. 작고 초라해 보여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나의 진심이 스며 있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너덜너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일지라도 얼기설기 엮어온 나의 시간들이 만들어낸 소중한 결과물이니까.


이제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내면의 바다에 낚싯줄을 던져보아야겠다.

무엇이 잡히던 잡히지 않던, 누군가 이해하던 이해하지 못하던 망설임 없었던 그때 그 소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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