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서 다시 '우리'가 되던 순간의 기록
나 방금 후레쉬맨이랑 바이오맨 최신 편 빌렸는데,
볼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비디오테이프의 각진 실루엣이 빤히 보이는 검은 봉지를 대롱대롱 들고서 나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내 손 끝으로 향했다.
방금 동생과 단골 비디오가게에서 따끈따끈한 신간 비디오 두 개를 빌려 오는 길이다. 출시된 지 6개월이 지난 비디오테이프는 개당 700원에 대여할 수 있지만 신간은 무려 1000원이다.
하지만 나는 회원 할인으로 따끈따끈한 최신 편 두 개를 1800원에 빌렸고, 비디오 위에 붙은 스티커는 손때하나 묻지 않은 채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내가 내민 엄지 위로 몇 개의 손가락이 둥글게 말리며 터키 아이스크림처럼 높다란 탑을 쌓았다.
여러 번 본 얼굴과 처음 본 얼굴이 뒤섞여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탑들을 끌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향했다.
잠그지도 않고 나갔던 현관문이 바로 열렸고, 아이들은 고함을 지르며 좁다란 거실에 오밀조밀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모두의 얼굴 위로 기대감이 물들었고, 나는 경건한 자세로 비디오 플레이어의 구멍 안에 첫 번째 비디오를 살짝 밀어 넣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비디오물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무시무시한 경고 영상이 지나간 후 그토록 기다리던 영상이 플레이된다.
거실에 둘러앉은 예닐곱명의 아이들은 저마다 후레쉬맨과 바이오맨이 되어 악당을 물리치며 하나가 되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아파트는 5층짜리 주공아파트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단지였다. 세 자리의 동 이름 앞에 1이 붙어 있으면 100단지, 3이 있으면 300단지였다.
우리 집은 308동이라 300단지에 속해 있었고, 총 8개의 라인에 40개의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대충 세어도 반 이상의 집들의 사정은 읊을 수 있을 만큼 알고 있었다. 숟가락 숫자까지는 몰라도 그 집 아빠의 직업부터 자식이 몇 명인지,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 집 엄마의 음식 솜씨까지도.
현관문 한가운데 초인종이 있었지만 집배원이나 방문판매업자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현관문을 두드리며 찾는 친구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곧이어 현관문이 열리면 어른들께 꾸벅 인사를 하고는 누가 쫓아올세라 신발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처음부터 같은 식구인 양 그 집 한편을 차지하고서는 까무룩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앞 집에 살고 있던 진아 엄마는 수시로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진아는 나보다 한 살 어렸던 영진이의 뒷글자만 따서 불렀던 경상도식 애칭이다.
진아엄마가 카레를 하는 날은 우리 집 메뉴 역시 카레였다. 커다란 솥단지 한가득 카레를 해서 늘 절반은 덜어서 우리 집으로 보냈다. 진아엄마는 키가 크면 싱겁다는 옛말과는 달리 잘 웃고 정이 많은 분이셨다. 엄마와 동갑이라 두 분은 허물없이 지냈고, 서로의 집을 제 집 드나들듯 가족과 다름없이 지냈다.
그런 진아엄마가 울면서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릴 때가 있었는데 바로 진아아빠와 싸웠을 때다.
그럴 때면 엄마는 검은색 타이어 두 개 위에 동그란 유리가 포개진 티테이블에 델몬트 주스병을 꺼내오셨다. 불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만만치 않은 무게를 자랑하는 델몬트 주스는 손님이 오실 때만 내어오는 엄마만의 비밀병기였다.
투명한 유리잔에 샛노란색 주스가 가득 담기고 나면 엄마는 진아엄마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러면 진아엄마는 델몬트 주스병 속 주스처럼 마음속에 담겨 있던 말들을 엄마에게 콸콸 쏟아냈다.
사실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진아엄마의 소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진아아빠가 화를 내며 옆에 보이는 화분을 던져서 깨뜨렸다는 이야기.
어떤 날은 집 안의 티브이를, 또 어떤 날은 벽에 걸려있던 액자를 던져 손에 상처가 났다는 그런 뻔한 이야기였다.
엄마의 토닥임 몇 번에 진아엄마는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저 특별할 것 없었던 일상의 단면이었다.
'나'보다 '우리'로 사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혼자에서 여럿이 되는 일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다.
402호였던 우리 집을 나서 1층으로 내려가는 와중에도 반가운 인사가 현관문틈 사이로 쏟아졌고, 아랫집 아저씨가 러닝 셔츠 바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는 일쯤은 예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관문은 제 역할을 다하기 시작했다. 깜빡하고 열쇠를 가져가지 않았던 날이면 이웃집에 가서 놀다가 저녁밥까지 푸짐하게 얻어먹고 돌아올 수 있었던 시절은 추억 안에 굳게 갇혀 버렸다.
주공아파트를 떠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신축 아파트 14층으로 이사했던 순간부 터였나 보다. 우리가 문단속을 열심히 하기 시작한 게.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당연히 궁금하지 않고, 층간소음 문제로 칼부림이 나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굳게 닫힌 자기만의 공간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에서 '나'로 바뀌는 삶은 실로 한순간이었다.
어느 겨울밤 '나'를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던 이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에도 외투를 껴입고서 같은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눈빛은 비장했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발걸음은 당당했다.
시린 바람에 꺼질세라 가슴마다 촛불을 소중히 안고서.
가슴에 타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가라앉힐 수가 없어서.
수많은 희생을 딛고서 얻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까만 밤하늘 아래 넘실대는 촛불은 은하수처럼 물결을 만들었고, 하나로 모여 외치는 목소리는 선율이 되어 거리거리로 퍼져나갔다.
각자 흩어져 있던 까만 철가루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자석으로 인해 같은 곳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석 가까이 있던 철가루는 옆에 있던 다른 철가루를 끌어당겼고 한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했다.
자석이 등장한 순간부터 철가루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자석의 일정한 반경에서부터 회오리치듯 모여들었고, 자석이 꼼짝할 수 없도록 서로를 더 끌어당기며 붙어 있었다. 자석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 움직이며 서로를 더 끌어안았다.
그저 점처럼 흩어져 있던 작은 철가루들은 자석을 확인한 순간 제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각성했다. 그리고 서로가 응집하며 거대한 자성을 만들었다.
'나'에서 다시 '우리'가 된 순간이었다.
현관문을 열어두고 서로의 집을 제 집 드나들듯 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저 누구도 배곯지 않기를 바랐고, 힘들 때 서로 돕고 살고픈 마음이 전부였다.
'나'만 등 따시고 배부르다 해서 마음 편치 않았고, '우리'가 함께 행복하기를 바랐던 그런 대수롭지 않았던 날들.
그날 밤의 촛불은 굳게 닫힌 현관문의 틈을 밝히며 여전히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