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하나가 퍼트린 불

도서 기증 활성화 조례안에 관한 실무자의 주절주절

by 윤슬

얼마 전 인스타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출판 관련협의회에서 올린 성명문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은 경기도교육청 소속 도서관이다.

경기도 전역에 11개 밖에 되지 않고, 규모도 작은 도서관이 많다.

다른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사서들도 잘 몰라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줘야 한다.

경기도 전체 시군구에 있는 도서관이 워낙 잘 되어 있기에(흔히 말하는 시립도서관) 관심을 받아본 적도 거의 없다. 그러한 내가 속한 조직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언급이 되었다. 경기도의회 도의원이 올린 [경기도교육청 도서관 도서 기증 활성화 조례안]때문이었다.




나도 근무 중 이 조례안을 보긴 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폐기도서'를 많이 아까워하니, 이런 조례가 한 번쯤 나올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도서폐기가 뭔지 설명하자면 "도서관에서 더 이상 자료로써 이용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도서관 도서대장에서 삭제된 책을 실제로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도서관법에 따르면 매년 전체 장서수의 7% 이내에서 폐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외가 없을 수는 없다.

우리 도서관도 리모델링을 하면서 전체 장서수의 30%에 가까운 3만 권을 폐기했다. 6단 서가 한 연에 250권이 들어간다고 치면 6단 4 연서가 30개만큼 폐기를 한 것이다. 도서관에서 이렇게까지 책을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좁은 평수의 집에 살림살이가 많다고 좋은 게 아닌 것처럼 새로운 도서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오래되거나 효용가치가 떨어진 책은 버릴 수밖에 없다.

폐기되는 도서를 살펴보면 이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오래된 순서대로 책을 버리기도 하고, 학습만화는 워낙 많은 이용자가 보니 낡아서 버리니 폐기도서에서 책을 골라간다는 건 고수들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이렇게 폐기된 책들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냥 폐휴지 업체에 매각된다.

이마저도 중국에서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면서 각 도서관은 업체에 애걸복걸하여 매각을 한다.

매각업체도 본인들이 버는 수입보다 책을 나르는 인건비나 너클크렌인 같이 장비를 빌리는 돈이 더 많이 든다고 난색을 표현한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더욱 유년 시절 어렵게 공부하신 어른들은 "이런 책을 막 버린다고? 나 어렸을 때는 책 살 돈도 없었는데?" "그럼 시민들한테 주면 되잖아?"

"네. 그건 선거법에 걸려 무상으로는 배부가 안됩니다."

"그래? 그럼 내가 의원 발의할게"

이런 의도에서 발의된 조례가 아닐까 추측만 해본다.


실제로 폐기된 도서를 선순환하여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 도서관에서 폐기된 3만 권은 해외동포들의 한글공부를 위해 기증되었다.

인근의 학교도서관에서는 폐기된 책을 지역 다문화센터에 기증했다고 한다.

기증받은 곳 모두 폐기된 도서의 상태를 보고 흔쾌히 가져간 경우다.

그렇다면 폐기된 도서가 학교로 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학교도서관은 개교한 지 얼마 안 되어 장서가 없더라도, 헌책을 받는 건 꺼려한다.

학부모들이 싫어하고, 학생들도 새책과 헌책이 섞여있으면 아무래도 새책에 손이 가기 때문이다.

교육청 소속 도서관이 11개 밖에 되지 않고, 7% 이내로 폐기를 한다면 6만 권~ 8만 권 정도가 된다.

경기도에는 4,680개의 학교(출처: 2026년 경기교육기본계획)가 있으며, 폐기 도서를 8만 권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한 학교당 17권을 기증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도 장서수가 넘쳐나기에 기증을 받지 않을 것이다. 즉, 학부모들이 염려하는 헌책이 우리 학교도서관에 올 확률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그럼에도 출판사와 학부모 사이에 이 내용이 잠시라도 이슈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출판사에는 도서구입비 총액이 줄어드면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학교당 십만 원만 줄여도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속이 쓰릴 것이다.

또한 "기증"이라는 조례가 생겼으니, 그 부분을 기증도서로 채우는 것을 염려하는 건 당연한 이치일 듯하다.


학교 입장도 살펴보자.

보통의 학교도서관은 교실 2칸~3칸 규모가 가장 흔하다. 그중 일부는 교과연계수업을 위해 한 학급이 들어갈 수 있는 책상이 배치되어 있다. 일 년 장서구입비 예산이 천만 원 정도라고 하고 도서 단가를 13,000원이라고 할 때 한 해에 살 수 있는 책의 권 수는 약 770권이 된다. 6단 서가 한 연에 들어갈 수 있는 책의 수는 약 250권 정도. 해마다 학교도서관은 서가 3연 정도의 책을 사야 한다. 초등학교 도서관은 서가의 단도 낮으니 서가도 더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이나 서가를 더 구입하거나 도서관 공간을 확장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중, 고등학교로 갈수록 학교도서관 이용률은 떨어지기 마련인데, 도서구입비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공간도 부족함에도 책을 매 해 3%까지 사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잘 읽어주면 예산이 아깝지 않지만, 일부 학교 사서선생님들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들이 학교도서관에 많다"라는 말씀도 하니, 예산의 효율적 측면에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장의 의견들이 반영되어 경기도교육청 학교도서관 운영 및 독서교육 진흥 조례'가 일부 개정된 게 아닐까 싶다. 개정의 골지는 학교 기본운영비의 3%를 기준으로 책정하던 자료구입비를 학교 규모별 표준교육비로 한정해 총액을 낮춘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 있지 않는 나로서는 조례가 바뀌면서 학교마다 어느 정도 감액이 될지 짐작하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다시 「경기도교육청 도서관 도서 기증 활성화 조례안」으로 돌아가보자.

아휴 다른 입법예고 조례보다 30배는 많은 조회수와 댓글이 달려있다.

(심장 쫄리는데 나 이 내용으로 브런치에 글 올려도 되는 걸까?)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나는 아랫부분에 고민을 했었다.

"개인에게도 기증할 수 있다면, 이거 어떻게 해야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을까?"

(이용자끼리 싸움 나는 거 아니야, 우리 폐기할 때만 기다리는 거 아닐까?)

"양호한 도서의 기준은 어떻게 세워?"

"신착도서 둘 자리도 없는데, 귀중자료는 기증받아 어디다 모셔야 하는 거지? "

등등 실무자의 입장에서 고민을 했었다.


어떤 의도로 발의했든 간에 관계자와 소통이 되지 않은 입법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 같다.

특히 요즘같이 불황기에 자료구입비 축소와 맞물려 도서 기증 활성화 조례까지 나오니 출판계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나, 행정사무감사에서 '스콜라'며, '상호대차'며 도서관 관련 업무를 가장 많이 아는 의원이 낸 발의이기에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믿고 싶다. 이 입법예고의 끝이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N년차 관람자가 본 서울국제도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