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나는 서울에 있는 한 약학대학의 5학년 과정을 막 마무리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선택을 응원하며 매년 졸업생 멘토링 프로그램을 열어주었는데, 약대를 졸업한 뒤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고 계신 졸업생 선배님들을 재학생과 1대1로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약국과 병원에서 일하는 약사님들부터 제약회사 상무님, 벤쳐캐피탈리스트 선배님 까지... 어쩜 저렇게 다양한 선택지들 속에서 본인에게 딱 맞는 옷을 찾아 입으셨는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마지막 남은 학교에서의 1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1:1 면담시간에 내가 대뜸 던진 질문에, 당시 변호사이시던 멘토선배님은 이렇게 답해주셨다.
“후배님이 졸업하고 나서 온 맘 다해 공부하고 성장하고 싶어지는 일이 뭔지 찾아봐요. 전적대에서 2년, 약대에서 4년 공부했죠?(나는 현재의 6년제가 아닌 2+4년제의 약대를 나와서, 타대학에서 2년을 공부한 뒤 PEET라는 시험을 치고 새롭게 4년간 약대를 다녔다) 당장 내년에 졸업한다고 생각하면 길게 공부한 것 같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이제 시작이예요.”
'앞으로도 성장하고 싶어지는 일'을 찾으라는 당시 선배님의 말은, 대학 졸업하면 인생이 어느정도 정해진다고 생각한 이십대 대학생의 진로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해주셨다. 그 말을 토대로, 나는 내가 평생 공부해도 좋을만한 일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6년 전 고이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찾아내었다.
5년간의 학부생활로 미루어 보아 나는 책상앞에 우직하게 앉아, 정보가 이해될때까지 씹어먹고 소화하는 일 하나는 자신있었다. 내가 약대의 전 과정중에서 특히 사랑했던 학문은 ‘약물치료학’이라는, 각종 질병의 약물치료방법을 장장 1년에 걸쳐 공부하는 과목이었다.
약물치료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면 되겠다! 는 결론을 내렸으나, 나를 고민하게 한건 대학원은 공부 보다는 연구를 하는 기관이라는 말씀을 해주신 다른 선배님의 조언이었다.
게다가 약물치료학을 공부 할수록, 질병전체를 아울러 공부하고 수술, 재활치료와 같은 비약물치료법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신약과 의료기술은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었고, 더 알고 싶은 것들이 넘쳐났다. 이 흐름의 최전방에서 아픈 사람들을 직접 치료할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그럼 의대에 가서 의학을 공부 해볼까?'
내 안의 나에게 농담삼아 건낸 제안은 꽤 오랜시간 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이미 약대에 입학 하기까지 두번의 수험생활을 거쳤다. 매일매일 도서관에 앉아서 문제집에 눈물콧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왼손으로 눈물을 닦고 오른손으로 채점을 해나가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수험생활이 그 누구에게 쉽겠냐만은, 나는 빠른 두뇌회전 보다는 끈질긴 엉덩이 힘으로 승부하는 타입이기에 다시 그 수험생활을 파고들 자신이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그리고, 사실 '의사'라는 직업은 나에게 여우의 신포도 같은 존재 였음을 살포시 고백한다.
어렸을 때 부터 나의 꿈은 변함없이 의사였다. 슬프게도 첫번째 입시에서 미끄러지며 다른 단과대에 진학하였지만, '아픈사람에게 도움이 되고싶다'는 본질에 집중해서 약대에 진학하였고 공부에 120%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다.
다만 놓친 꿈에 대한 뼈아픔은 마음속에 간간히 남아있었다. 종종 '의대에 다시 도전해 볼까?'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지만 남들에 비해 인생이 뒤쳐지는 것은 죽어도 싫었고, 또 다시 긴 동굴같던 대학 입시에 도전할 자신도 없기에 이 악물고 그 소리를 외면해왔다. 혹시나 그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까봐 그렇게 재미있다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한 화도 보지 못했고, 학창시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던 의료 에세이들은 묻어둔지 오래였다.
지금 나의 위치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단순히 공부를 더 하고싶다는 이유로 간신히 묻어두었던 과거의 꿈을 다시 후벼파는게 맞을까? 고민했다. 이번에도 떨어져서 정말 내가 의사의 재목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버린다면 어쩌지? 두려웠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생각의 물결은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안보였다. 무엇보다 이번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내가 너무 후회할 것 같았고, 평생 외면할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부딪혀서 승부를 보자 싶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거진 3개월의 고민기간을 거쳐, 나는 무겁게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렇게 나의 세번째 수험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