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바에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내가 듣는 인터넷 강의는 학원의 현장강의를 촬영한 것으로, 촬영 다음날 업로드 되었다.
인터넷강의로 허겁지겁 문제풀이 강좌를 완주한 시점,
이미 학원의 현장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그 다음 과정인 '파이널 모의고사'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었다.
총 5회의 모의고사 전부에 대한 해설강의가 올라온 것을 보니 말이다.
학교에서 바로 스터디카페로 향했고,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실제 시험지 크기에 맞춰 제작된 커다란 모의고사 시험지를 꺼냈다.
그동안 꾸역꾸역 달려온 몇달간의 공부 결과를 점검한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확 몰려왔다.
한시간 반 가까이 붙들었던 모의고사의 채점 결과는 좋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클릭한 해설강의는
“문제가 쉬웠는지 다들 성적이 좋다~”는 강사님의 밝은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문제 해설을 필기하면서도, 문득 늦은 진도에 대한 위기감과 함께 불합격 할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늦은 수험생활을 시작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위안의 말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불안감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어느덧 12시가 넘어 날이 바뀌었다.
별 수 없이 짐을 싸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길, 밤샘영업하는 식당들의 간판으로 환하던 길거리는 곧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운 골목길로 이어졌다. 다리가 유난히 무거웠고, 먼지구덩이속에서 잔뜩 뒹군듯 한 텁텁함과 지침이 느껴졌다.
벽을 맞대고 붙어있는 빌라들은 어느 하나 불 켜진 곳 없이 깜깜히 서있었다. 골목길은 고요했지만, 입을 꼭 다문 듯이 닫혀있는 출입문 사이로 누가 갑자기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겁많은 나는 평소 같았으면 바로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누군가가 나를 데려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일을 또 살아갈 힘이 나지 않아서 차라리 저항없이 따라가고 싶기까지 했다.
한참 그런 생각에 빠져 타박타박 걷다가 문득, 내가 뭘 위해 공부하고 있는지 떠올렸다.
공부를 하고 있는 건 결국 나를 위해서 인데,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정도로 몰두하는게 과연 맞는 일일까?
어느 순간부터 합격 자체에 꽂혀 나를 몰아세우며 살았다.
벼랑끝에 서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할일을 해치우기에 급급할 바에는, 그러면서 합격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내지도 못할 바에는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동안 '성공한 나'만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환상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는데,
정작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일상을 충실히 느끼면서 또박또박 살아가는 내가 아니었을까?
발걸음을 빨리해서 집으로 들어와, 나를 스스로 꼭 껴안아주며 생각했다.
'합격한 나'만이 소중한 게 아니다. 지금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나'도, 혹여나 그 끝에서 결실을 얻지 못한 '나' 일지라도 모두 내가 지켜내야할 소중한 나 자신이다.
다신 이런 생각이 들때까지 나를 몰아세우고 다그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