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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씨 Oct 26. 2018

7. 연락은 하지 않습니다

어느 방자한 며느리의 이야기

결혼하고 한동안 우리 아빠는 내 얼굴을 보면 항상, 시댁에 자주 연락드리란 소리를 하셨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단호하게 외쳤다. 김서방은 우리 집에 자주 연락해? 왜 나보고 자꾸 연락을 하래! 효도는 셀프거든?!

혹여 귀한 딸이 시댁에 밉보일까 걱정되어하신 말씀이겠다만- 과연 나의 시어머니도 아들에게 같은 소릴 하셨을까. 며느리 밉보일 확률은 높아도 사위 밉보일 확률은 낮은 것이 이 나라의 전통이라면 전통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큰 용무가 없는 한, 안부전화를 하진 않는다. 그것은 자식의 도리이고 그 자식인 내 남편은 알아서 종종 전화를 하는 듯 하니 내가 신경 쓸 영역이 아니다. 신혼 초부터 그래 왔고 계속해서 그럴 예정이었는데...... 나와 시어머니 사이에 내 아들이 생겨버리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나의 시어머니, 춘애 씨에게는 이미 외손주가 있었고 내 아들과 동갑인 둘째 손주가 하나 더 생기신 상황. 그녀는 육아로 바쁜 사람이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덜 아픈 손가락도 있는 법이다. 직접 끼고 키우는 외손주들만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것 또한 친손주니 내 아들이 그 덜 아픈 손가락인 것이다. 옛날에야 시댁 어른 모시고 사는 것이 흔한 일이어서 손주 사랑은 친정보단 시댁의 것이었다지만, 요즘 어디 그러한가. 당장 어머니 본인도 외손주 돌보느냐 바쁘신 만큼 요즘은 외손주 사랑이 대세다. 내 남편은 그 사실이 살짝 섭섭하고 억울한 듯 보였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좀 안심했다. 내게 낯선 이가 출산 후 내 몸상태나 내 아기에게 너무 과한 관심을 보인다면 그건 그것대로 불편하니까. 인간도 동물과 다르지 않다. 낯선 이 가 내 갓난아기를 만지고 주시한다는 사실은 엄마를 곤두서게 만들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어머니는 친정엄마보다 백만 배 이상 낯선 사람이다. 여기저기 찾아보면 출산 후에 시댁과 마찰을 빚는 엄마들이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개나 사람이나 새끼 낳고 나면 건드리지 말고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것이 생태계의 모럴이란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우리 옛 조상 들은 지금의 현대인들보다 더 지혜로운 분들이다. 금줄이란 얼마나 멋진 아이템인지.

이야기가 산으로 갔지만, 어쨌든 나는 주기적으로 양가에 내 아들의 못났지만 앙큼진 사진들을 전송했다. 그 김에 어른들 안부도 여쭤야 했으니- 정신 차려보니 안부 여쭙는 딸이자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워낙에 안부나 서로 챙김을 귀찮아하는 내 성격상 그 일은 별일 아니지만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들 사진 자랑하는걸 낙으로 생각하는 인간이었으면 좀 더 나았을까. 아니, 그래도 귀찮았을 것이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다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흔히 생각을 고쳐 먹는다 하면 지난날 스스로를 반성하고 집안의 어른들께 안부인사 드림에 기꺼워하는 마음을 품자. 나는야 착한 딸 착한 며느리- 라는 식으로 변모하겠지만. 내가 그럴 턱이 있나

나는 내 별그램을 양가에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SNS는 가족과, 특히 시댁과 공유해서는 안 되는 절대 불가의 영역이다. 카톡 사진, 카톡 상태 글, SNS 등은 시댁이 지적질을 할 여지를 주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유부녀들 사이에서 불문율이다. 실제로 연애 때만 해도 남편과 싸우면 카톡 프로필에 나의 분노를 담아 표준어로 욕을 휘갈겨놨던 나는, 춘애 씨가 내 연락처를 알게 되신 후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별그램을 공개하다니. 주변에서 어떻게 그러냐고 말이 많았지만 나는 나의 시어머니를 믿었다. 그리고 오히려 시댁보단 친정을 걱정했다. 엄마 아빠의 잔소리 폭격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리스크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도 귀찮은 것보다야.

실제로 내가 뭔가 올려서 거슬리거나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하거나 잘못됐다고 느껴져 연락을 해오신 쪽은 친정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글세, 그냥 본인 손주의 일상을 보았다는 사실에 대한 피드백만 있을 뿐 별 지적이나 조언을 빙자한 명령 따위는 없으신 분이다. 그리고 난 그럴 줄 알고 있었고.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그 또한 걱정하지 않는다. 뱉지 않은 말을 걱정하고 살기에 이미 나는 원래도 걱정인형 같은 인간이라서, 눈치가 없는 척 무심하게 구는 것 또한 내 생존전략이니까.


오히려 춘애 씨 입장에서는 이전보다도 더 우리가 어딜 놀러 가는지 어떻게 사는지 더 잘 보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설사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 하더라도 딱히 양가에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다. 해외여행급이 아닌 이상에야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낄뿐더러 갑작스러운 1박 여행을 자주 떠나는 우리 부부 특성상 매번 보고하기도 힘든 일이었고. 그만큼 나는 시댁에 있어 자유롭다. 혹자는 그런 시어머니를 만난 것을 너의 복이라 생각하라 했지만- 어림없는 소리. 그런 시어머니를 선택한 것은, 바로 나였다.

오만방자한 소리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사실은 사실. 이 남자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시어머니였고 그 사실을 내 남편도 잘 알고 있다. 이 남자와 내가 천년의 사랑도 아니었거니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시댁이 껄끄럽고 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면 결혼 따윈 하지 않았다. 그냥 천년 동안 연애만 하다 죽었겠지.

조건이란 표현을 어찌 감히 쓰느냐 묻는다면, 조건이 있어야 마땅한 것이 결혼이라고 답하련다. 기본적으로 비혼 주의자에 가까웠던 내게는 남편과 시댁에 대한 절대적 조건들이 몇 가지 있었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은 가정과는 결합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마침 이십 대 후반 그런 조건이 대충 맞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고 그 남자가 우리 엄마 쿨해- 라는, 모든 대한민국 아들들이 하는 헛소리를 뱉으며 청계천을 걸었을 때도 사랑이란 늪에 빠져 어머 그래 너네 엄마 쿨하구나- 하고 웃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내가 이런 시어머니를 만난 비법이다. 나의 절대적 노력과 판단력에 기준해 만난 사람이 나의 춘애 씨란 이야기다. 고작 시댁복의 유무로 앞으로 창창한 내 미래를 좀먹을 수는 없는데, 왜 운수 따위에 기대 결혼을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실제 내가 만나 지금까지 지켜본 바, 춘애씨는 쿨한 성격은 절대 아니시다. 내 기준에서 쿨함은 좀 더 강인한 느낌인데- 여장부 스타일과는 거리가 매우 먼 분이다. 그냥 아들이 한 가정을 이루어 독립했음을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아들의 인생과 선택을 지켜보시는 권장할만한 태도의 부모일 뿐이다. 역시 아들의 우리 엄마 쿨해-는 다 헛소리다. 혹시 내 동생 놈도 올케에게 같은 소릴 하지 않았을까. 나의 엄마 영자 씨는 절대 쿨하지 않다.


오늘도 별그램에 아들 사진과 오늘 해먹은 음식과 기타 등등 우리 가족의 생활을 올린다. 부모님들 보시는 것이라 생각하니 살짝 포장해 올리는 감도 없지 않아 있는데, 나의 사진 촬영기술과 글빨을 양가가 달갑게 보심에 가정이 평화로우니 좋은 게 좋은 거다.

우리가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의 안부를 궁금해함에 있지 않다. 어차피 부모란 어지간한 탈은 자식에게 내비치지 않는 철혈의 존재가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그 전화를 통해 내가 잘 살고 있음을, 우리가 매우 무탈함을 알리는 일에 있다. 그게 진짜 용건이다.

그래서 나는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다. 우린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별그램이 그 사실을 내 대신 잘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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