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밥상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추억

by 한수정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적적하게 시골에 홀로 계신 할머니가 걱정된 아버지는 방학이 시작하기 무섭게 나를 할머니 댁으로 보내셨다.

남들처럼 공부도 해야 하고, 놀러도 가야 할 곳도 많은 사춘기 소녀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할머니와 둘이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도 났던 것 같다. 보충수업을 해야 한단 핑계로 가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난 할머니와의 여름방학을 보내게 되었다.

엄마가 해주시는 맛깔스러운 반찬 대신 투박스럽기 그지없는 퉁퉁한 보리밥과 몇 번을 끓였는지 국물이 졸아서 없어진 짭짤한 된장찌개와 벌건 열무김치에 늘 집 앞밭에서 따온 채소들.. 매번 밥상 앞에서 차라리 라면을 먹겠다며 반찬 투정을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손녀딸의 투정에 끓여 온 큼직한 양은 냄비 속 라면은 싱거운 김칫 국물에 면발은 퍼질 대로 퍼져 쿰쿰한 특유의 냄새를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라면은 모두 유통기한이 지났으리라 싶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는 게 익숙지 않은 할머니의 라면 레시피가 아니었을까 한다.

도통 잘 먹질 않는 손녀딸이 걱정됐는지 꼬부랑 할머니는 옆집에서 갓 구운 고등어며 제육볶음이며 한 번씩 가져오시기도 하셨다.

매일 같이 무더위 뙤약볕 아래 할머니는 시큼한 땀 냄새를 내며 늘 밭에서 부지런히 일하셨고, 매 끼니때가 되면 시원하게 방 안에서 베짱이처럼 누워있는 손녀딸의 밥상을 그렇게 내오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아침부터 서두르며 쪽 찐 머리를 동백기름을 발라 가지런히 빚어 넘기고, 촌스러운 몸뻬 바지 대신 평소에 입지 않던 새하얀 모시 한복을 입으셨다. 그날은 읍내에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방앗간에 들러 떡도 뽑으시고, 치맛자락 어디선가 꼬깃꼬깃 지폐를 꺼내어 손녀딸이 좋아할 만한 닭 한 마리도 사셨다.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손녀딸", "기찬이(아버지) 딸"이라며 나를 인사시키고, 장을 보는 내내 내 손을 잡고 다니며 즐거워하셨다.

무더운 여름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이것저것 양손 가득 들고 허허벌판 버스정류장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 온 버스를 타고 흙먼지 날리는 도로를 지나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은 큼직한 닭백숙을 푹 삶아내어 살코기를 발라 내 밥 위에 올려주시기 바쁘셨던 것 같다.




그런 나의 할머니는 내가 사회 초년생이 된 그 해,

손녀딸의 월급으로 맛있는 음식 한번 대접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땐 그토록 가기 싫었던 시골이었고, 할머니와 보낸 여름방학이 아깝기만 했던 철없던 그때의 나였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나의 할머니와의 가장 큰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투박스러운 할머니의 밥을 맛있게 먹을텐데,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게 될 거란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한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