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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하는리타 Oct 10. 2021

내 욕정은 네 잘못이야 : 알렉 더버빌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 속 등장인물

등주이법 시리즈

서두 : 등장인물로 주변 인물 이해하는 법


알아두면 좋은 배경


하나.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보는 시선

성폭력처럼 피해자에게 요구 많은 범죄가 또 있을까 싶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도, 주변 사람도, 가해자에게 법적 처벌을 내리려는 절차 중에 만나는 사람도 티끌 하나 없이 명백한 거절 의사의 존재를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폭행 피해자에게 맞을 짓을 했냐고 묻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사기 피해자에게 멍청해서 사기를 당했다고 말하는 건 심각한 반발을 산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에게 '확실히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는가?'나 '본인의 차림새나 평소 행동에 여지가 있지는 않았는가?'를 의심하고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자주 있는 일이다. 하물며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의 거절 의사를 심각하게 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최근 몇 년 간 이러한 분위기에 변화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상에서 체감할 정도의 진행 속도는 아니다. 오늘의 등장인물을 알아보기 전에 2021년에도 이 모양이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두자.


둘. <더버빌가의 테스>를 집필·연재하던 시절

저자 토마스 하디는 1891년에 <더버빌가의 테스>의 연재를 시작했다. 미완성 원고는 1889년에도 있었으니 집필 시기는 1880년대로 보면 된다. 미래 시점을 상상하고 쓴 소설이 아니므로 작품의 배경과 사회 인식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영국 시골 수준이라고 추측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를 맞아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으로 절정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시대였지만 물밑에서 일어나는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법. 이상적인 사회의 기준과 대중들의 실제 삶은 차이가 있었고, 이런 위선이나 허영을 비판·풍자하는 예술 작품이 쏟아지던 때이기도 하다. 물론 토마스 하디도 이를 비판하고자 <더버빌가의 테스>를 썼다. 연재하면서부터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지만 그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고 오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자, 이제 사전 지식을 잘 붙들고 <더버빌가의 테스> 속 성폭력 가해자 알렉 더버빌을 만나볼 차례다.


거절은 거절한다 : 절대 전달되지 않는 'NO'

모든 거절과 저항을 무효화시키는 사고방식


주인공 테스는 시골 처녀로 듬직하지 못한 부모, 너무 많은 동생, 유달리 예쁜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다. 테스는 궁색한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기 위해 더버빌 가문이 있는 트랜트리지 마을로 떠난다. 서술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테스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예쁜 외모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주변의 눈길과 남성에게 휘둘리며 살게 되는 삶의 이유라도 된다는 듯이(토머스 하디의 의도는 그게 맞다). 더버빌가에는 눈이 보이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더버빌 부인과 그의 아들 알렉 더버빌이 있다. 알렉 더버빌은 테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눈독을 들인 천하의 난봉꾼이자 불한당이다. 열여섯 살이었던 테스는 어리고 순진했지만 끊임없는 이어지는 알렉 더버빌의 성희롱, 선물 공세, 협박을 꿋꿋하게 견뎠다. 그러나 한순간의 욱하는 판단으로 알렉 더버빌에게는 기회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생긴다. 알렉 더버빌은 이를 놓치지 않고 피곤과 잠에 절어있던 테스를 성폭행한다. 얼마 후 남몰래 더버빌 가를 떠나는 테스와 그걸 또 굳이 따라온 알렉 더버빌의 대화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맞아요. 당신이 좋아서 갔거나 내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한 적이 있거나 지금도 사랑한다면, 우유부단했던 내가 이렇게 싫거나 밉지 않을 거예요!…… 그냥 잠깐 눈이 멀었고 그게 전부예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당신의 속셈이 뭔지 알게 되었을 땐 너무 늦었어요."
"여자들은 모두 그렇게 말하지."


더버빌 가를 떠나는 시점이 성폭행 직후가 아닌 것을 보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짧은 기간 동안 테스가 알렉 더버빌의 애인으로 살았음을 암시한다는 의견이 해제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렉을 사랑하지 않고, 앞으로도 사랑할 자신이 없음을 확신한 뒤에야 떠난 것이다. 당시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어떤 이유로든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알렉 더버빌이 제시한 모든 조건을 거절하고 떠나기로 한 테스는 더 단호하게 알렉 더버빌을 거부하지 못한 일을 후회한다. 알렉 더버빌은 끝까지 테스가 밝히는 거절과 부정의 표현을 '여자라면 흔히 하는 말' 정도로 치부하며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후 알렉 더버빌이 보여주는 행동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여성이 보이는 분노, 거절, 혐오 등 자신을 향한 모든 부정적인 의사표현을 모두 튕겨내는 강력한 사고방식이다. 우리 시대의 성범죄자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으로, 성범죄자는 상대방의 거절 표현에서 아무도 부여한 적 없는 승낙의 속뜻을 기어코 찾아낸다. 


네가 너무 예쁘잖아 : 나의 욕망은 너의 책임

밑도 끝도 없는 가스라이팅


이후 만나게 된 진정한 사랑 에인절과의 결혼생활이 무너진 테스는 더욱 혹독한 노동환경 속으로 던져진다. 세상에 다시없을 남자인 줄 알았던 에인절은 남녀의 '순결'에 있어서 이중잣대를 당연하게 들이미는, 어쩔 수 없는 그 시대 남자였다. 에인절은 테스를 용서하지 못하고 결혼을 무르지도 못한 채 식민지 개척을 핑계 삼아 혼자 브라질로 떠나버린다. 에인절과 헤어지고 경제적 궁지에 몰린 테스는 대신 시부모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만나보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중심부에서 설교하는 소리를 듣고 무심코 다가간 테스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사람이 알렉 더버빌임을 알아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역시 테스를 알아본 알렉 더버빌은 자랑스럽게 자신이 회개했다고 주장하지만, 테스는 냉소적으로 받아친다. 반응을 보고 울컥하는 순간에도 알렉 더버빌은 테스와 제 성욕을 따로 생각하지 못한다. 테스와의 우연한 만남,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 이야기까지 들은 알렉 더버빌. 그는 억누르던 충동과 욕구를 해방시킬 최고의 이유를 테스에게서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의 말을 덧붙임으로써 그는 침묵을 깼다. "그래, 내가 찾아갈게."
"안 돼요. 근처에도 오지 마요." 그녀가 대답했다.
"생각해볼게. 헤어지기 전에 이리로 와봐." 그는 돌기둥으로 다가갔다. "내가 믿는 교리는 성물과 무관하지만. 이건 옛날에 성십자가였어. 넌 날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만 난 어떤 순간 네가 두렵거든. 그러니까 내 두려움을 덜어주려면 이 돌에 새긴 손에다 손을 얹고 다시는 날 유혹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미모로든 행동으로든."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를 정성 들여 실컷 지껄인 알렉 더버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본인의 발로 테스를 찾아온다.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싶다며 결혼허가증을 가져오지만, 테스는 이미 에인절의 아내였다. 특유의 끈질김으로 테스에게 에인절의 이야기를 캐내어 들은 알렉 더버빌은 자신이 가려던 신앙의 길을 내던지고 테스에게 구애한다. 경제적으로 곤란에 빠져있지만 남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테스의 약점을 파고들고, 남자는 남자가 안다며 에인절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로 테스의 마음을 흔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테스가 에인절과 결혼했다는 걸 알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 일터로 찾아오고, 찾아올 때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너'라는 암시를 반복한다. 성적 욕망, 약속 번복, 의지박약 등 알렉 더버빌은 자신이 보이는 변변치 못한 모든 행위를 테스의 잘못으로 돌린다.


"테스, 내 사랑, 널 다시 보기 전까지는 최소한 사회적 구원의 길을 걷고 있었어." 그는 어린아이를 다루듯 그녀를 잡고 흔들며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왜 날 유혹한 거야? 그 눈과 입술을 다시 보기 전까지는 누구보다도 굳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정말이지 이브 이후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입술은 없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았고, 검은 눈동자에서는 호색적인 교활함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테스, 넌 요부야. 사랑스러운 저주받을 바빌론의 마녀지. 널 다시 만나는 순간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어!"  


예시로 써도 될 만큼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과거부터 이어진 얼굴과 몸을 향한 끈질긴 희롱 탓에 테스는 예전부터 '자연이 그녀에게 선물한 육체라는 거처에서 사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금욕적인 에인절과의 순수한 사랑으로 해소된 줄 알았던 이 생각은 알렉 더버빌을 만나자 기다렸다는 듯 테스에게 달라붙는다. 가스라이팅의 특징은 교묘한 방법으로 상대방의 심리와 상황을 조작하는 것이다. 알렉 더버빌은 모든 조작을 훌륭히 해낸다. 외간 남자의 몸으로 매일 일터로 찾아옴으로써 표면적으로나마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당대 사회의 대중들이 테스를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경제적으로 곤궁을 겪어 일자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인 테스가 제발 일터로 찾아오지 말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애원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나를 유혹했기 때문에 보러 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대답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직관적인 이유로 거절하고 있음에도 '곤궁에 빠진 동생들을 생각하라'며 마치 이기적인 이유로 자신을 거절하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잘못을 찾게 하는 매일, 어떤 거절이라도 없던 일로 만드는 성폭력 가해자, 연락도 닿지 않고 돌아올 희망도 없어 보이는 남편, 당장의 거처를 잃은 대가족, 자신을 보는 주변의 시선. 결국 테스는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던 자존심과 희망을 버린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알렉 더버빌은 성범죄자의 표본 같은 인물이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실시한 2016년 성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의 78%는 아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알렉 더버빌의 사고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많은 성폭력 가해자가 자기만의 특수한 필터로 피해자를 지켜보고 있다가 범죄를 저지른다. 아는 사이라서 더 쉽게 제 의도대로 피해자의 반응을 곡해한다. 알렉 더버빌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한 명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범죄와 호의의 경계도 마구 흩트려놓는다. 호감이 먼저였는지, 성폭력이 먼저였는지, 성폭력의 대가로 이득을 제시했는지, 이득을 제시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성폭력을 묵인해야 하는지.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지럽혀둔 경계 사이에서 나름대로 원인과 결과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피폐해진다.


테스는 처음에 알렉 더버빌이 가족에게 베푸는 물질적인 도움을 호의로 받아들였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도망치지 못했던 이유도 이미 도움을 받아버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는 사이로서 다양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진 후에 점차 시작되는 성폭력은 피해자의 판단과 결단을 흐리게 만든다. 특히 도움을 받았다면 가해자의 요구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기 쉽다. '받을 거 받아놓고 이제 와서 싫다는 거냐'라는 가해자의 말은 피해자가 거절의 표현을 주저하게 만든다. 대가가 필요하지 않다며 호의로 건넨다고 해놓고도 '네가 민망할까 봐 그렇게 말해줬지'라거나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멍청한 거지'며 손바닥 뒤집듯 쉽게 피해자를 몰고 가는 게 가해자들이니까. 요구한 적 없는 호의를 퍼부은 다음 이제 내 욕망을 채워달라며 뻔뻔하게 요구하는 꼴은 소설에서 봐도, 현실에서 봐도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어이없는 건 알렉 더버빌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테스에게 서운해하는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테스를 괴롭히고 망쳐놓겠다는 악한 의도는 없었다. 예쁜 여자를 탐하는 단순한 욕망이 시작이었을지라도, 자신이 신세를 망쳐놓은 여자를 책임지고 싶다는 마지막 마음은 진심이었다. 이제 성폭력 가해자들이 자신이 사는 세계를 어떤 사고방식으로 구축하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지? 그들의 사고방식은 천하무적이다. 타인의 거절은 거절이 아니고, 나는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을 하고 있고, 내가 나쁜 행동을 했다면 그건 나를 그렇게 만든 너의 탓이다. 그렇다.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가끔 대중 앞에 서는 가해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적의 논리가 여기에 있다. 제 세계 안에서 그들은 무결하고, 심지어 깨지지 않는 논리로 사고를 전개한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아무도 설득시킬 수 없다.


소설의 현실 적용법


사례마다 적용 방법에 차이가 있지만 등장인물로 주변 인물을 이해하는 법이란 크게 보면 결국 하나다. 소설을 읽고 나서 소설 속 상황과 인물을 내 주변의 상황과 사람에 대입해 생각해보는 것. <더버빌가의 테스>에서 나오는 알렉 더버빌의 사례는 정확히 말하면 이해보다 파악의 영역이다. 성폭력 가해자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필요가 없으니까. 성폭력 범죄자를 보면 화병이 난다고 해서 사고방식을 이해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나와 주변의 안전과 쓸데없는 소모전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사고에 가까이 다가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니 일단 머리로만 한 번 이해해보자. '개소리지만 네 안에서만 유효한 어떤 논리로 그런 소리를 한다는 사실은 알겠어' 정도만 되어도 유용하다. 이렇게 이해해두면 혹시라도 주변을 괴롭게 만드는 성폭력(직장 내 성희롱, 스토킹, 데이트 폭력 등) 가해자가 있을 때 빠르게 알아보고, 못된 혀에 휘둘리기 전에 즉시 법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성범죄 가해자를 보면 피해자가 무얼 더 할 수 있겠나 싶은, 절망에 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최소한 위험 시그널을 알아채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알렉 더버빌의 사례를 주변 인물에게 확장시켜보자. 알렉 더버빌의 보여준 사고방식과 패턴은 제 행동을 전혀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이지 않는 대다수 성폭력 가해자에게 통용되므로 시대 보정이 필요 없다.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알렉 더버빌처럼 교묘히 상황을 몰아가고, 어떤 말로도 설득이 불가능하며, 논리 정연한 척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남을 탓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없었는가? 있다면 가능한 한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한다. 맞서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다. 마음을 바꿔먹거나 행위를 중단하도록 설득해봐도 피해자의 언어는 가닿지 않는다. 반면에 떠오르는 사례가 없다면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자.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완전무결한 결백을 요구하는 질문을 하지는 않았는지. 슬프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성별도, 나이도 상관없다. 무차별적인 범죄의 피해자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여기까지 고민해보고 돌아봤다면 토머스 하디가 <더버빌가의 테스>에 녹인 지혜와 경험은 어느 정도 나의 일부가 되었다고 봐도 된다. 앞으로 이어질 다른 사례로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가 소설이라는 내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직장 상사라서, 폭력적인 보복을 해서 등의 이유로 적극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혹시라도 부족한 표현 탓에 상처 입지 않으셨길 바란다. 내가 예로 경우는 교묘해서 미처 피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의심하는 분들에게 적절하다. 그분들께 전적으로 가해자의 잘못이니 대처의 방향을 대신 상대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디 괜한 기우 탓에 붙은 사족이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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