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한자로 가릴 선(選)에 가릴 택(擇)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가려내고 가려낸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 정말 잘 가려내고 있을까.
올해 초 장강명 작가님의 <먼저 온 미래>로 독서모임을 했다. 책에 '바둑이 예술인가 스포츠인가'에 대해 다루는 대목이 있었는데, 모임에서 어떤 분은 이 내용보다 AI에 관한 것들을 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셨다. 하지 나는 오히려 이 대목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A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바둑이 예술인지 스포츠인지 모호했다고 생각한다. 모호하다는 걸 다른 관점에서 보면 둘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의 기사 중 한 분이었던 이세돌 사범님은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하실 정도로 바둑의 예술성을 중요시하셨다.
무리를 감수하더라도 흐름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수를 선택하고 싶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해왔다. 실수가 있더라도 흐름을 지키는 쪽을 택했고, 때로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둬야 그림이 이어진다'는 마음으로 수를 놓았다. 냉정한 승부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세계가 있었고 한 판의 대국 결과보다 장기적으로 내 세계가 발전하길 기대했다.
이세돌,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
그러나 어쩌면, 과장해서 다소 과격하게 말하자면, 이는 예술성을 고수해도 충분히 성적이 나왔던 낙천적인 시대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AI의 등장으로 예술성과 스포츠 사이의 공존은 사라졌고, 철학과 성적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먼저 온 미래>는 AI로 인한 충격이 가장 먼저 온 바둑 세계의 이야기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 책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AI로 인해 철학과 성과의 공존이 무너질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며 그날 모임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최근에, 바둑보다도 이 미래가 먼저 온 분야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언론이다.
약 한 달 전 유튜버 슈카월드가 그동안 당한 사이버 불링에 관련하여 영상과 글을 올렸는데,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특정 유튜브 채널이나 개인들이 짜깁기성 영상을 만들고, 없는 것을 만들고 비웃고, 비난하고, 심지어 욕설하는 경우를 많이 겪어 왔습니다. 남을 비난하고 없는 내용을 양산해서 자기 돈을 버는 그들의 방식이니 그러려니 하고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신력 있는 신문에 기사화까지 되니, 참담할 뿐입니다.
기대가 있어야 실망이 있는 법이니, 그는 아직 저널리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반면 나나 내 주위 사람들은 이미 언론은 어그로와 도파민 낚시에 물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저널리즘이 그렇게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뉴스레터 어거스트의 <언론은 왜 돈 얘기만 나오면 작아질까> 덕분에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었다.
위 글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한때 언론은 걱정이 없는 시장이었다. 신문과 방송은 사람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매체였고, 이를 통한 광고 수익은 안정적이었다. 따라서 돈 걱정 없이 저널리즘의 철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치 AI 이전에 예술성을 지켜도 성적이 나오던 바둑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고, 유튜브와 SNS를 비롯한 광고 시장이 넓어지고, 사람들이 시간을 소비하는 콘텐츠도 다양해지면서 언론의 수익은 점점 악화되었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만 해도 조회 수가 당연히 따라오던 황금기는 끝났다. 그리고 사회는 옳은 글일수록 조회 수가 높아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었다. 언론은 저널리즘과 조회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여기서 '그래서 조회수를 선택한 언론'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광고는 생각할수록 놀라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사용자는 아무런 자원을 소비하지 않으면서 콘텐츠나 서비스를 받는다. 사실은 시선과 시간을 지불하긴 하지만 대부분 이를 '무료'라고 착각한다. 이렇게 사용자의 의식에 흘러들어온 광고가 매출을 만들고, 그 매출에서 광고주는 플랫폼에 광고비를 제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시선과 시간'에 대한 인식의 괴리다.
넷플릭스가 자신의 시장이 콘텐츠 시장이 아니라 주목도(attention) 시장이기에, 경쟁사가 디즈니가 아닌 유튜브와 틱톡이라고 할 정도로 사용자의 시선과 시간은 기업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정작 이를 제공하는 사용자들은 이를 무료처럼 가볍게 여기고 무책임하게 남발한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으로 형성되고, 주목도 시장은 철학과 성과가 공존할 수 없는 시장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의 시선과 시간에 책임을 갖고,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 속에서 무엇을 볼지 단순히 가려내는 선택(選擇)이 아니라, 내 시선과 시간이 머무는 곳이 과연 올바른지 가려내는 선택(善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행위에 맞서 보이콧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재작년에는, 이 현상에 100% 동감하지는 않아 관련된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인플루언서에게 구독 취소 등의 보이콧을 하는 '디지털 길로틴'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제는 구매, 구독뿐만 아니라 시선과 시간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善擇)에 다가오는 위협은, 다시 돌고 돌아 AI다.
최근 금융권에 큰 충격을 준, 시트리니 리서치의 <2028 세계 지능 위기>라는 보고서가 있었다. 이 보고서는 AI Agent 기술이 발전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가상 시나리오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로, 저자도 하나의 시나리오일 뿐 예측이 아니며 AI의 left tail risks(번역하자면 하위 구간의 부정적 위험성?)에 대비하고자 하는 글이라는 걸 명시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준 충격은 적지 않았다. 이 보고서에서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찰이 사라진 세계(When Friction Went to Zero) 부분이었다.
Over the past fifty years, the U.S. economy built a giant rent-extraction layer on top of human limitations: things take time, patience runs out, brand familiarity substitutes for diligence, and most people are willing to accept a bad price to avoid more clicks. Trillions of dollars of enterprise value depended on those constraints persisting.
It started out simple enough. Agents removed friction.
Subscriptions and memberships that passively renewed despite months of disuse. Introductory pricing that sneakily doubled after the trial period. Each one was rebranded as a hostage situation that agents could negotiate. The average customer lifetime value, the metric the entire subscription economy was built on, distinctly declined.
Consumer agents began to change how nearly all consumer transactions worked.
Humans don’t really have the time to price-match across five competing platforms before buying a box of protein bars. Machines do.
Travel booking platforms were an early casualty, because they were the simplest. By Q4 2026, our agents could assemble a complete itinerary (flights, hotels, ground transport, loyalty optimization, budget constraints, refunds) faster and cheaper than any platform.
Insurance renewals, where the entire renewal model depended on policyholder inertia, were reformed. Agents that re-shop your coverage annually dismantled the 15-20% of premiums that insurers earned from passive renewals.
Financial advice. Tax prep. Routine legal work. Any category where the service provider’s value proposition was ultimately “I will navigate complexity that you find tedious” was disrupted, as the agents found nothing tedious.
Even places we thought insulated by the value of human relationships proved fragile. Real estate, where buyers had tolerated 5-6% commissions for decades because of information asymmetry between agent and consumer, crumbled once AI agents equipped with MLS access and decades of transaction data could replicate the knowledge base instantly. A sell-side piece from March 2027 titled it “agent on agent violence”. The median buy-side commission in major metros had compressed from 2.5-3% to under 1%, and a growing share of transactions were closing with no human agent on the buy side at all.
We had overestimated the value of “human relationships”. Turns out that a lot of what people called relationships was simply friction with a friendly face.
That was just the start of the disruption for the intermediation layer. Successful companies had spent billions to effectively exploit quirks of consumer behavior and human psychology that didn’t matter anymore.
Machines optimizing for price and fit do not care about your favorite app or the websites you’ve been habitually opening for the last four years, nor feel the pull of a well-designed checkout experience. They don’t get tired and accept the easiest option or default to “I always just order from here”.
That destroyed a particular kind of moat: habitual intermediation.
지난 50년간 미국 경제는 인간의 한계를 기반으로 거대한 지대 추출 레이어를 구축해왔다. 일에는 시간이 걸리고, 인내심은 바닥나며, 브랜드 친숙성은 성실한 비교를 대체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릭을 더 하기 싫어서 나쁜 가격을 감수한다. 수조 달러의 기업가치가 이런 제약이 지속된다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다. 에이전트가 마찰을 제거했다.
몇 달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자동 갱신되던 구독과 멤버십. 체험 기간이 끝난 뒤 슬그머니 두 배로 오르는 도입 가격. 이제 이런 것들은 에이전트가 협상할 수 있는 ‘인질 상황’으로 재정의되었다. 구독 경제 전체가 의존하던 핵심 지표인 평균 고객 생애 가치(LTV)는 뚜렷하게 하락했다.
소비자 에이전트는 거의 모든 소비자 거래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사람은 단백질 바 한 상자를 사기 전에 다섯 개 경쟁 플랫폼에서 가격을 일일이 비교할 시간이 없다. 기계는 있다.
여행 예약 플랫폼은 초기 희생자였다. 가장 단순했기 때문이다. 2026년 4분기에는 우리의 에이전트가 항공권, 호텔, 지상 교통, 로열티 최적화, 예산 제약, 환불까지 포함한 전체 일정표를 어떤 플랫폼보다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구성할 수 있었다.
보험 갱신도 재편되었다. 보험사의 수익 중 15~20%가 계약자의 관성적 갱신에서 나왔는데, 매년 자동으로 더 나은 조건을 재검색하는 에이전트가 이 구조를 무너뜨렸다.
재무 자문. 세무 신고. 일상적 법률 업무. 서비스 제공자의 가치 제안이 결국 “당신이 번거롭게 느끼는 복잡성을 대신 처리해 주겠다”였던 모든 분야가 붕괴되었다. 에이전트에게는 번거로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적 관계의 가치로 보호받을 것이라 여겼던 분야조차 취약했다. 수십 년간 매수자들이 정보 비대칭 때문에 5~6%의 수수료를 용인해온 부동산 시장은, MLS 접근권과 수십 년간의 거래 데이터를 갖춘 AI 에이전트가 그 지식 기반을 즉시 재현하자 무너졌다. 2027년 3월 한 매도 리서치 보고서는 이를 “에이전트 대 에이전트의 폭력”이라 불렀다. 주요 대도시의 매수자 측 중위 수수료는 2.5~3%에서 1% 이하로 압축되었고, 점점 더 많은 거래가 매수 측에 인간 중개인 없이 체결되었다.
우리는 ‘인간적 관계’의 가치를 과대평가했다. 사람들이 관계라고 불렀던 것 중 상당수는, 사실은 친절한 얼굴을 한 마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중개 레이어 붕괴의 시작에 불과했다. 성공한 기업들은 소비자 행동과 인간 심리의 특성을 활용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왔지만, 이제 그것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가격과 적합성을 최적화하는 기계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앱이나 지난 4년간 습관적으로 열어온 웹사이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잘 설계된 결제 경험에 끌리지도 않는다. 피곤해져서 가장 쉬운 선택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난 항상 여기서 주문해”라고 기본값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그것은 특정 유형의 해자(moat)를 파괴했다. 바로 습관적 중개였다.
<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https://www.citriniresearch.com/p/2028gic, ChatGPT 번역
이러한 시나리오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선택의 과정을 불필요한 '마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찰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모든 선택을 AI Agent에게 위임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과연 선택(選擇)을 할까 선택(善擇)을 할까. 바둑의 세계에서 봤듯이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들은 철학보다 성적, 성과를 택할 것이다.
<먼저 온 미래>로 했던 독서모임에서 다양한 정의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건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가치란 무엇인가. AI 시대에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내가 책과 이 모임을 통해 느낀 것은 위의 모든 질문이 결국 '과정'이라는 것으로 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의 결과물보다는 예술을 이뤄나가는 과정이 중요하고, 일의 결과보다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사랑을 통해 얻은 것보단 사랑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가 가치다'라며 약간은 모순 같은 답을 했다.
꾸준하게 노력해 봐야 보상이 따라올 보장도 없는 시대이다 보니 이해는 된다. 다만 그것을 영상 작품에서까지 추구해야 하느냐다. 아니,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영상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대신 ‘콘텐츠’라는 말을 사용한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작품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 오락을 ‘콘텐츠’라고 총칭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제는 “작품을 감상한다”보다 “콘텐츠를 소비한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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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빨리 감기로 보는 데는 거부감을 느끼면서 뉴스나 정보 프로그램은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도 많다. 전자를 '예술 감상', 후자를 '정보 수집'이라고 구분 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나다 도요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선택 또한 '그래서 무엇을 골랐는가'만큼 선택을 하는 과정에도 가치를 느끼고,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이 과정이 마찰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와야 AI Agent가 모든 선택(善擇)을 없애버리는 사태를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사러 갈 때 가능하면 인터넷 주문보다는 직접 서점에 가서 사려고 한다. 사려고 정해둔 책이 있어도, 간 김에 요즘 나온 책이 뭐가 있는지, 어떤 게 사람들에게 유행하고 있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며칠 전 애인과 오랜만에 마트에 갔는데, 사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게 아닌 코너도 예전에 몰랐던 상품들의 출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크롬과 엣지가 등장하기 전, 윈도우의 기본 브라우저였던 IE의 풀네임은 Internet Explorer, 말 그대로 ‘인터넷 탐험가’다. 그 시절 인터넷은 정말 '탐험'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직접 검색하고, 링크를 타고, 길을 잃으며 돌아다니는 세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쏟아지는 추천 속에서 주체적인 탐색은 점점 사라지고, 추천 알고리즘은 철학이 아니라 선택의 성공률로 작동한다. 우리는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고르고, 마약처럼 도파민을 너무 쉽게 얻고, 그만큼 스스로 찾아 나서는 탐험은 점점 더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선택의 과정은 더 이상 즐거운 여정이 아니라, 괜히 돌아가는 귀찮은 마찰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필요한 건 의지나 다짐보다는 재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재활에 성공해 도파민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탐험을 할 수 있게 되어야 비로소 선택(善擇)의 길도 걸을 수 있을 것이다.